유연하고 다채로운 비닐 패션의 세계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것은 있다. 가방 안에 자질구레하게 늘어진 사적인 물건들, 오늘 아침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급하게 주워 입은 추레한 속옷, 구멍 난 양말이나 눌러쓴 모자 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쉽사리 누구에게 보이기 어려운, 조금은 비밀스러운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여과 없이 보여주어도 괜찮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물건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비닐이라고 하면 마켓에서 물건을 담아 주는 50원짜리 비닐봉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비닐우산이라든지.


어쩌면 패션과 비닐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관련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패션에 정답이 없다고 해도 비닐까지 입는다고?' 하며 코웃음을 칠 수도 있으나 섣부른 판단은 금하도록 하자. 


이토록 유연하고 다채로운 비닐 소재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매년 여름이면 무심코 찾았던 PVC 소재의 가방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비닐 제품들이 런웨이는 물론 리얼웨이까지 점령했으니.


이 종잡을 수 없는 유행의 흐름은 그 어느 시기보다 분방하고 자유로웠던 1960년대를 풍미했던 플라스틱 트렌드의 회귀로부터 시작된다. 


플라스틱 트렌드는 진보와 혁신의 롤링 식스티즈라는 말처럼 마치 혁명과도 같았던 1960년대의 전위적인 패션의 한 축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마리 퀀트는 1960년대를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우리는 사회적 혁명의 한 중심에 놓여 있었다. 갑자기 경기가 호황을 타고 있었으며, 우리는 이러한 호황기의 첫 세대로 젊지만 돈이 있었고 따라서 자신을 위한 문화를 창조할 자유가 있었다. " 

그리고 "패션은 하찮은 것이 아닌, 살아 있다는 것의 일부다." 라고.


그녀는 PVC 소재를 최초로 적용한 디자이너로, 레인코트가 젖어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PVC 소재를 사용하여 디자인하였다. 


본격적인 산업화와 동시에 패션업계에 퍼진 기능주의와 실용주의는 PVC, 나일론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한 기술적인 뒷받침이 되었고, 이는 곧 젊은이들의 반란으로 유행처럼 번져갔다. 


1966년 이브 생 로랑이 선보인 강렬한 색상의 코트부터 60년대의 스타일 아이콘 트위기가 입은 검은색 미니 드레스, 허리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간결한 드레스까지 모두 투명하게 반짝인다.


2018 Spring-Sumer Collection Plastic Piece


이토록 과감한 비닐 아이템의 귀환은 이미 절대적인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넬, 셀린느, 버버리, 발망 등 럭셔리 패션 하우스 대다수가 비닐이라는 아주 강력한 무기를 들고나선지 오래다.



2018 S/S Chanel


생기 있는 자연 앞의 플라스틱 코트를 상상이나 한 적 있을까. 샤넬 하우스의 모델들은 거대한 절벽과 쏟아지는 폭포수를 뒤로하고 투명한 비닐 부츠를 신었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투명한 모자를 쓴 채로 투명한 케이프도 걸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란 듯이 든 가방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속 깊은 곳까지 명료하게 보인다.


2018 S/S Céline


이제는 셀린느를 떠난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 컬렉션. 무심하게 들린 비닐 가방은 얼핏 보면 흔한 비닐 봉투에 불과하지만, 정갈하게 로고가 적혀있다. '아기와 어린이들의 질식 위험이 있으니 가방과 아이를 멀리 떨어뜨려 놓을 것' 이라는 경고 문구와 함께. 이제는 예쁜 비닐봉투를 들고 밖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주 쿨해 보일지도.

2018 S/S Helmut Lang


셀린느의 비닐 가방이 금세 찢어지진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여기 아주 튼튼한 플라스틱 백이 있다. 셰인 올리버가 선보인 첫 번째 헬무트 랭 컬렉션. 견고한 직사각형 형태의 아크릴 케이스는 꼭 서류 가방을 보는 것 같다.


2018 S/S Balmain


여느 때처럼 발맹은 과감하다. 어김없이 강인한 전사가 연상된다. 반짝이는 플라스틱 광택을 등에 업고 등장한 팬츠, 코트, 탑을 아우르는 아이템의 향연은 되려 섬세해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발맹 로고 그래픽 패턴이 가미된 길고 폭이 좁은 스커트와 재킷은 간결한 바디 수트와 완연한 조화를 이룬다.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은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다.


2018 S/S Balenciaga menswear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도 대세의 반열에 합류했다. 옷을 세탁소에 맡겼다가 찾아온 그대로 입은 것 같기도 하다. 유로파(Europa!)가 새겨진 옷 위에 판초나 비닐을 덧입은 것을 보면 말이다. 혹시라도 숲속으로 소풍을 갔다가 무언가 묻어 돌아올 염려는 덜어도 되겠다. 가볍게 툭 털어내면 사라질 테니.


2017 F/W Burberry


버버리의 트렌치코트가 비닐과 만났다. 투명한 소재를 시작으로 반투명한 소재까지 다양하다. 그뿐인가. 클래식한 버버리 플레이드부터 네온 컬러에 이르기까지 폭도 넓다. 비 오는 날 입고 싶다. 반듯하게 겹쳐 입은 니트와 함께라면 꼭 비가 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Topshop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게 다가온다. 누군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영국의 패스트패션 업체인 탑샵이 내놓은 이 비닐 바지를 본다면, 박진영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일지도 모른다. 온전한 바지의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허릿단부터 발목까지 온통 투명하다. 100% 폴리우레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이 바지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미 사이트의 모든 사이즈가 품절된 상태라는 것이다.


어떤가. 도전 정신이 생기지 않는가?

끝으로 아쿠아 렌 니스트뢰름이 부른 Barbie girl이 생각난다.

life in plastic, it's fantastic! 플라스틱 삶은 너무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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