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로 생긴 숙취는 우울로 해장하세요


CARTOON  <혐규만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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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 보존의 법칙은 없는 걸까. ‘내 청춘은 시험 같은 것에 목매지 않는다!’던 패기는 한 시간 만에 탈탈 삥 뜯겨 시험 후엔 패색만이 완연했다. 낭만에 살고 싶었는데 학점은 왜 이리 현실일까. 나는 청춘과 낭만의 멱살을 잡고 전공 책으로 뚜드리고 싶은 심정이 됐다.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이 “시험은 잘 봤냐” 물으셨다. 거실 TV에선 타이밍 좋게 ‘청년 실업(너 포함) 50만 시대’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날 엿 먹이려고 작동하는 IOT인가. 몹시 착잡했다. 아늑한 방구석에 구겨져 어떻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생각했다.


‘당신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 같은 위로의 문구도 읽어보지만 뒤틀린 무의식이 ‘별로 가치 있고 싶지 않은데’라고 차갑게 답해 별 소용이 없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 우울을 잊고자 페이스북을 봤다. 내가 그리는 게 더 정성스럽겠다 싶은 만화가 눈에 띄었다.


‘스스로의 약점을 파악하고 / 인정한 후 / 받아들여라 / 왜냐면 그곳이 앞으로 집중적으로 처 맞을 곳이기 때문이다’. 이야… 팩트 묵직한 거 보소. 갑작스레 처맞은 멘탈을 붙잡고 만화가 올라온 페이지에 들어갔다. 어쩜 페이지 이름도 ‘혐규만화’였다. 혐규만화는 네 컷 짜리 만화로 회화과 출신인 작가의 자전적 내용이 많다.


우울과 자괴가 주된 소재. ‘내 재능은 애매해’, ‘나도 어디 써먹을 데가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할 만하다. 보다 보면 꿈과 희망, 삶의 아름다움 같은 게 싹 가신다. ‘인공지능시대, 살아남을 확률 높은 직업은? / 1위 화가 및 조각가 / 왜냐면 그땐 이미 거의 다 굶어 죽오보료갖구 죽을 사람이 없기 때문ㅠ’ 같은 제 살을 깎아 웃음으로 승화시킨 만화들을 볼 수 있다.


‘우울한데 또 우울한 얘기를 보라고? 원래의 우울을 더 큰 우울로 후려치라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울을 무조건 피하고 본다. ‘우울해….’라는 생각이 들면 억지로 떨치려 한다. 단걸 먹든지 웃긴 걸 보든지 아무튼 빨리 벗어나 보자! 라는 이상한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치운 우울은 덜 싼 똥처럼 찝찝하게 남는다. 싸다 말고 “아 난 다 쌌어! 다들 걱정 마^^” 하고 어기적 화장실을 나서는 기분. 혐규만화는 있는 우울을 없는 척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고난의 스토리 끝에 결국 다 잘 될 거야! 행복해! 라고 어거지 해피엔딩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우울을 희화화해 별거 없는 실체를 보여준다.


해학과 풍자의 민족답게 이렇게 그려보고 저렇게 장난쳐서 좀 더 가벼운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처음 볼 땐 웃기다. “그래 나 우울하다!”고 털어놓는 것 같아 속 시원한 맛도 있다. 계속 읽다 보면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우울했나?’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가벼워진다. 우울을 없앨 수도 없고 극복하기도 힘들다면 혐규만화로 유쾌하게 직면해보는 건 어떨까.


<해리포터>에 ‘보거트’라고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변하는 괴물이 나온다. 얘를 물리치려면 두려워하는 것의 가장 웃긴 모습을 상상하고 “리디큘러쓰!!”를 외치면 된다. 혐규만화가 누군가에겐 리디큘러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For deeper depression +


MUSIC <Sinking Down With You>

<고등래퍼2>에 나온 이병재의 믹스테이프 ‘병풍’에 수록된 곡. 외롭고 싶지 않아 자신의 우울 속으로 누군가를 끌어들였을 때의 기분을 가사로 적었다. 듣다 보면 정말 어디론가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음원으로 발매되진 않았고 ‘SoundCloud’에서 들을 수 있다. “혼자보단 둘이 우울하니 좋네 그래 난 또 다시 sinking down with you”



POEM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의 대표 시집. 우울 장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시로 우울을 표현했다. 유년의 경험과 도시에서 받은 인상이 주된 소재. 세상 우울한 사람일 것 같지만 지인들은 생전의 그를 밝고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절망을 아름다운 무언가로 승화시키면서 스스로는 절망에 매몰되지 않는 법을 터득한 게 아닐까.


MOVIE <멜랑콜리아>

‘우울한 영화’라고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 반드시 뜨는 영화다. 자기 안의 우울이 너무 큰 여자와 바깥에서 오는 우울에 잠식당하는 여자의 이야기. ‘우울증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와 같을 것’이라는 리뷰가 영화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감독의 섬세한 감성과 상상력이 만나니 사람들은 기피하던 것에도 박수를 보내더라.

[849호 – Culture Guide]

WRITER 빵떡씨 www.instagram.com/choihj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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