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체첸


러시아가 시리아에 개입한 이유는 다양하게 있겠지만 시리아에 파견된 러시아 중 단연 존재감을 보이는 곳이 두둥, 체첸이었다! 갑자기 체첸이 왜 나오는지 궁금해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라크 전쟁 때도 그렇고(참조 1), 체첸은 언제나 중동 분쟁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체첸 정부가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이 다르겠다.



당연히 감이 잘 안 오실 텐데(참조 2), 체첸이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독립 선언을 했을 때 일어났던 전쟁은 기억하실 것이다. 당시 체첸은 몰락해버린 러시아를 상대로 잘 싸워서 독립을 지켰다. 그러나 대러 항쟁을 하던 군벌들 사이에서 반목이 생겼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와하비즘이 세력을 확대시켜 나아가자,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군(참조 3)의 수장이었던 아흐메트 카디로프는 러시아 편으로 붙었다.



이게 정말 요새 (영어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정치 용어로 굉장한 "유-턴"이었다. 카디로프는 당시 떠오른 실세, 블라디미르 푸틴과 손을 잡고, 러시아군과 합세하여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던 이슬람주의 체첸 반군을 패배시켰고, 이것이 바로 제2차 체첸 전쟁이었다. 여기서 쫓겨난 반군들이 대거 중동으로 전출(?)되어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도 등장해주셨고 말이다.



다만 반군 잔당이 체첸 내에 없진 않아서, 카디로프에 대한 암살 시도는 꾸준히 있었고, 실제로 아흐메트 카디로프는 테러로 인해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실제로는 좀 나중에) 아들인 람잔 카디로프(1976년생)가 대통령을 이어받았다(구소련 계열 대선 투표라는 것이...).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16살 때부터 전투부대를 이끌고 러시아와 싸웠던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는 아버지의 정책을 물려 받아 푸틴 제1의 친구가 되었고 조지아 전쟁 때는 정예, 카디롭츼(체첸인들도 전투 종족이다)도 파병시켰었다(당시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실세 부총리였다). 덕분에 체첸은 한 해에 막 25%씩 경제성장을 하고 있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푸틴과 혈맹이다. 시리아 내전이 터지자? 당연히 푸틴과 같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체첸은 이슬람 국가다. "선량한" 무슬림들을 저 ISIS나 알카이다와 같은 "불량한" 무슬림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러시아로서는 체첸만한 수단이 없다.



그래서 알레포 탈환 이후로는 치안 시스템을 체첸이 구축했고, ISIS나 알-카이다 등 시리아 반군에 소속된 체첸인들을 찾아 도륙(!)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카디로프는 푸틴을 설득, 체첸 안 자기 사저 근처에 스페츠나츠(그냥 특수부대라는 의미다) 훈련소도 지어 놓았다. 강사들은 모두 알파나 빔펠, ГРУ 출신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체첸은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 역할로 관여를 확대한다. 체첸은 아흐메트 카디로프 재단(참조 4)을 통해 알레포와 홈스에 모스크를 짓기로 했고, 올해 1월부터는 인도적 지원도 시작했다. 시리아 무슬림만이 그 대상이라는 지적도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시리아는 순니이든 시아이든 약간의 크리스트교 빼고는 모두 무슬림들이다.



즉, 무슬림 체첸이라는 성격을 활용, 러시아 중동 외교의 앞에 체첸이 있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가령 2016년 억류된 러시아 선원들의 석방을 위해 체첸은 리비아에 사절단을 보내서 해결했던 사례도 있었다. 게다가 람잔의 아버지인 아흐메트 카디로프는 요르단에서 유학했던 경험도 있다. 아랍의 순니파 무슬림들이 체첸을 마냥 미워할 수는 없다. 구소련 출신 지하디스트 송환 등, 러시아가 직접 못 나설 일들도 체첸이 나설 수 있는 기반이다.



이렇게 중동 지방에 착실히, 푸틴의 비호 하에 터를 닦아 놓는 카디로프의 머리 속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아마 푸틴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아닐까? 푸틴 이후는 거의 스탈린 사후 만큼 투쟁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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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책,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보면 서양인 반군과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체첸에서 온 이슬람 전사들을 묘사한 것이다. (친구들이 이 책을 번역했기 때문에 영업 한 번 뛰겠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barcode=9788997094585 )


2. 학부 다니던 시절, 외교사 시간에서 체첸의 위치를 바로 짚어서 학점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데헷.


3. 자신을 따르던 독립군을 카디로프는 자신의 경호단인 카디롭츼(Кадыровцы)로 편성했다. 정규군 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체첸의 내무부에 속해 있다. (쿠데타 시도를 막기 위해) 군 체제가 국방부와 내무부 2중 체제로 되어 있는 나라는 적지 않지만, 카디롭츼는 일종의 카디로프 사병 집단으로서 행동하고 있다. 자신은 물론 푸틴을 위해 어지간한 더러운(?!) 일은 모두 이들이 처리하며 정예병들이다.


4. 이 재단은 체첸인들 월급에서 일률적(10-30%)으로 공제되는 자금으로 충당된다.


5. 전체 참조, « Le kadyrovisme : un rigorisme islamique au service du système Poutine ? »(2017년 3월): https://www.ifri.org/fr/publications/notes-de-lifri/russieneivisions/kadyrovisme-un-rigorisme-islamique-service-systeme 이 정도의 분석 논문/보고서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먼 산). 상당히 좋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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