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불량세자 수안과, 꽃 도령 민혁(2)

채희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칼, 꿈속에서 보았던 그 금빛용이 그려져 있던 검. 순간 채희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수차례 꿈속에서 자신을 내려쳤던 그 검이, 지금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까닭에 금방이라도 이 검이 자신의 가슴을 베고 스칠 것 같단 생각에 숨통이 죄어 오는 듯했다. “흐읍….” “정체를 밝혀라!” 채희가 겁에 질려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하고 가쁜 숨만 내뱉으며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때, 그런 사내 뒤로 휘적휘적 걸어 나오는 한 도령. “놔두거라.” “…하지만.” 부채를 활짝 펴, 얼굴을 가린 채 채희 앞에 우뚝 선 도령. 채희는 장옷을 꾹 쥔 채 갑작스레 등장한 도령을 올려다보았다. 훤칠한 키에 고운 비단 도포를 입은, 코와 입을 가린 채였지만 한 눈에 봐도 수려한 외모가 돋보이는 듯한, 사대부가의 자제인 듯 했다. 채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붉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안하오. 내 잠시 그쪽에게 볼일이 있어.”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사내에게 볼일이 있어, 본의 아니게 뒤를 따르게 된 채희였기에 채희는 정중히 도령의 호위무사 쯤으로 되어 보이는 사내에게 미안하다, 말을 건넸다. 그런데, “허허허허.” “……?” “그리 미안할 것은 없소. 한 두 번 겪는 일은 아니니.” 왜 그 옆의 도령이 대신 채희의 말에 대꾸를 하는 것인지, 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도령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령은 펼쳤던 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더니 이내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채희를 응시했다. 억, 소리 나게 경탄스런 미공자였다. 뽀얀 피부며, 날카로운 턱선, 매섭지만 길고 시원스레 뻗은 눈. 게다가 사내인대도 풍성한 속눈썹까지. 사내이지만 요염한 색까지 지닌 듯 했다. 채희는 가만히 도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도 저자에 내 외모를 두고 옥골선풍이라 칭하여 반가의 규수들이 그저 내게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볼까, 이리 졸졸 따라오는 것이.” “…….” “어디 어제 오늘 일이더냐.” 도령의 말에 채희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가만히 도령을 바라보았다. 자아도취 해, 자기 칭찬도 마다않고 하는 도령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령은 가만히 채희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 차가운 미소마저 거둔, 싸늘한 얼굴로 채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서, 누구에게서 그런 소문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 “내 성격은 불량스럽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한단, 그런 소문은 듣지 못하였소?” “네?” 채희는 갑작스런 도령의 질문에 흠칫 놀라며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은 놀란 기색의 채희를 바라보던 도령은 피식, 차가운 그러나 속된 말로 ‘네 가지’없는 실소를 흘렸다. 채희의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다. “뭐 나와 어찌 해보려 내 뒤를 밟은 것이면. 헛짓을 한 것이지.” “헛…짓.” “그리고 대부분 그런 것들을 헛수작이라고들 하지.” “…….” “그래보았자 내 눈엔 다…돌덩이에 불과하거늘.” 그 말에 채희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풉….” “……?” “그러하군요. 예. 자기도취하실 만한 인물이십니다.” “뭐…라?” “그런데 송구하게도 제가 볼일이 있어 따라온 것은 도령이 아니라 이쪽 무사인데. 어쩌지요.” 채희는 딱딱한 어투로 그리 말하며 용의 검을 지닌 무사를 바라보았다. 도령은 뜻밖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한 듯, 물끄러미 채희만 바라보고 섰다. 그때, 저 멀리서 휘영이 번개처럼 날아와 채희를 겨누고 있던 칼을 매섭게 처냈다. 덕분에 용의 검은 저 멀리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감히 뉘 안전이라고!”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가씨란 말에 도령은 채희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허름한 무명 치마저고리에, 다 낡은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이, 이런 호위무사의 호위를 받을 만한 반가의 규수라니. 도령은 채희를 위아래 훑었다. 그런 도령의 시선을 느낀 채희는 더더욱 장옷을 여미며 무사와 도령을 바라보았다. “되었다, 휘영아. 미안하게 되었소. 내 경솔한 행동거지에 일이 시끄럽게 되었습니다.” “…….” “내 이 무사가 든 검이 낯이 익어, 출처를 묻고자 이리 뒤를 쫓게 되었습니다. 무례하였다면 사과하겠소이다.” 한없이 차갑고 딱딱한 어투였다. 다정함이라곤 티끌도 찾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도령은 정말 채희가 자신에게 말을 붙이고자 뒤쫓아 왔음이 아니란 것을 알고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다시금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무, 무…례까지야. 흠, 흠.” “그런데. 무례는 그쪽 도련님도 만만찮으신 것 같은데.” “무엇…이라?” 한 ‘네가지’없기로 소문난 도령이었다면 채희 역시 소문만 나지 않았다 뿐이지 만만찮은 성깔을 지닌 인물이었으니. 채희는 지지 않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도령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미색이 뛰어난 것은 알겠사오나.” “…….” “그렇다고…아무 여인네에게나…그리 오해를 하시고…섣불리 언행을 행하신다니요.” “…….” “그런 소문은 내 듣지 못했으나, 소문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미색은 뛰어나나 성격이 불량스럽다.” “뭐라?!” “도련님의 미색만 보고 뒤쫓은 여인네들의 행실이 참으로 헛수고이겠습니다. 한양의 규수들은 사내보는 눈이 그리 없다니, 자처해서 돌덩이들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군요.” “……?” “그럼, 이만. 가자, 휘영아.” “예. 아가씨.” “저…저!” 그러곤 도령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곤 여지도 두지 않고 홱, 돌아서서 가버리는 채희였다. “저렇게…보내도…되겠습니까, 저하. 저하를 헤아려는 무리에서 보낸 자일 수도 있습니다.” 도령은, 아니 세자 ‘수안’은 민망함에 얼굴마저 발그레 해진 채, 멀어져가는 채희의 뒷모습을 보았다. “허참! 어느 댁 규수이기에…나를 보고도 저리 쌀쌀맞게 구는 것일까.” “…….” “나를 노린 것이 아니고 참으로 너의 검 때문에 뒤를 따른 것 같으니. 그냥 두어도 되지 싶다만 이것 참…웃을 수도…울 수도 없는 상황이구나.” 그리고 그런 모퉁이에서 세자 ‘수안’과 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다른 도령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는 채희를 말없이 응시했다. 곁눈도 주지 않고 곧장 앞만 보고 걷는 채희. 그런 채희를 바라며 또 다른 도령은 자신의 옷깃을 만지작였다. 여전히 자신의 옷깃에서 채희의 온기가 묻어 있는 듯했다. “저…”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려 했지만 너무도 재빠르게 지나치는 탓에 도령은 채희를 미처 잡지 못했다. 도령은 가만히 멀어지는 채희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좀 전의 상황을 다시금 상기하며 도령은 팔짱을 꼈다. ‘정말…꿈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웬 여인이 자신의 도포자락을 쥐었다. 도령, 민혁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바라보았는데 웬 허름한 차림의 여인이 자신의 도포자락을 쥐고 있었다. 민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여인의 손을 빼내기 위해 팔을 올렸는데, 하도 도포를 당기는 힘이 세, 민혁은 이리저리 여인에게 끌려 다니고 말았다. ‘보통 무사들이 쓰는 검은 아닌 듯 보였다. 몇 번이고…내 꿈에 나와 나를 베는 것이…우연한 꿈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 ‘어찌…이리도 똑같은 검이 나타날 수가…’ 여인이 왜 검에 관심을 가지나, 민혁은 까치발을 들고 서서는 이리저리 살피는 여인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그리 보고 있는 것인지…. “…….” 민혁은 가만히 장옷 사이로 보이는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장옷에 절반 넘게 가려져 그 얼굴이 확실히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언뜻언뜻 보이는 여인의 외모는 보통 미모는 아닌 듯하였다. 봉긋 솟은 이마와 오똑선 콧날, 그리고 굳게 다문 앵두 같은 입술이 장옷에 채 가려지지 않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혁은 넋을 놓고 여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 나 잠시만, 저 검을 어디서 구했는 지 만 물어보고 올게!’ 그러더니 곧, 여인은 자신의 도포자락을 휙 놓더니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민혁은 바람처럼 자신에게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그 여인이 못내 궁금했다. 누구와 착각을 해, 자신을 이리 끌고 온 것인지, 정신을 놓을 만한 해이한 여인은 아닌 듯 했는데. 민혁은 몇 번이고 머뭇거리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여인이 사라진 곳으로 따라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 곳엔! “하…” 세자 수안과 그 여인이 맞닥뜨리고 있었다! 민혁은 흠칫 놀라며 수안의 호위무사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그 여인을 곤경에서 도와주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그 여인의 호위 무사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나 여인을 감쌌다. 도대체…정체가 무엇일까, 민혁은 허름한 차림이었지만 목소리에서나 자태에서나 뿜어져 나오는 당당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느꼈다. “그런데. 무례는 그쪽 도련님도 만만찮으신 것 같은데.” 한 성질 한다는 세자에게도 지지 않고 할 말을 다 내뱉고서야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에, 괜히 민혁은 피식 웃음이 났다. 세자에게 한바탕 면을 주고 매몰차게 돌아서서 지나치는 여인이 연신 궁금한 민혁이었다. 달려가 여인을 붙잡고 이름이나 물어볼까 했지만, “…어, 민혁.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수안이 어느덧 민혁 곁에 와 섰다. 민혁은 멀어져가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수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잠깐 길을 잃어서…그러는 저하께선 잠행 중이십니까.” “나야 뭐, 늘 그런 것 아니겠나. 그런데 길을…잃어?” 수안과 민혁은 어릴 때부터 절친하던 벗이었다. 동갑내기이자 함께 무예와 도술, 그리고 학문을 익히며 자라온 학술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수안도 수안이었지만 민혁 역시 수려하고 훤칠한 풍채였기에 도성의 반가 규수들은 죄다 수안과 민혁의 얼굴 한 번 보고자 줄을 섰더랬다. 민혁의 가문 역시, 세자에 견줄 것은 못되었지만 그 기상은 대단하였다. 민혁의 친부는 한양 최고 실세인 우의정이었고 그의 누이는 세자빈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최고의 가문이었기에. 두 도령이 나란히 서서 한양을 걷는 날엔, 혼기 찬 규수들은 물론이거니와 규수들을 모시는 여종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둘의 자태를 감상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안은 길을 잃었단 민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민혁의 눈길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았다. “네.” “……?” “무언가에 홀린 듯, 예까지 왔습니다.” “…홀리다니? 자네가 무엇에 홀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것이 꼭 바람과도 같이 나타났다 사라졌기에.” “…….” “온기조차 남지 않았는데.” “…….” “마음 한편이 연신 울렁입니다.” “허허, 자네. 연심을 품은 여인네라도 있는 것인가?” 연심이란 세자의 말에 민혁은 피식 웃으며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연심이라뇨. 한양에서 눈 높기로 소문난 제가 연심은…가당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는 말 아닌가. 마음 한편인 연신 울렁이고, 홀리듯 예까지 당도했다는 것이 꼭 연심을 품은 여인네 뒤를 쫓다 길을 잃은 모습과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세자의 말에 민혁은 어느덧 흔적조차 없어진 채희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곤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봄 날에, 스쳐지나간 바람이라 일러두지요. 훗, 다시 내 곁을 스친다 해도 알아보지도 못할 바람이니.” * * *

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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