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낭자, 이름이 무엇이오. (1)

“참으로 어여쁘다.” 다음 날, 채랑이 손수 준비해 놓았던 옷을 곱게 차려입은 채희가 경대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썩 분칠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 “내가 한 번 해주어 볼게.” 채랑은 자신이 더 들떠, 뽀얀 채희의 얼굴에 분을 톡톡 두드렸다. 채희는 양 볼이 발그레 상기된 채, 낯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샛노란 저고리에, 자줏빛 치마. 고운 색감의 배씨댕기 까지. 한 번도 치장해본 적 없던 채희라, 영 낯설기만 했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와…너무도 곱다. 양귀비가 따로 없어.” “언니두 참…” “이리 꾸며놓고 보니…나와 조금, 다른 것 같기두 하구?” 채랑은 그리 말하며 호호호, 웃었다. 밖에선 좌상과 정경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듣고 있었다. “얘, 채랑아. 들어가도 되겠느냐.” “예? 예, 어머님.” 좌상과 정경이 채랑의 방으로 들었다. 곱게 옷을 입고 한껏 꾸민 채 경대 앞에 앉아 있던 채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좌상과 정경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쩜…이리도 고울 수가 있느냐.” 좌상과 정경 역시 처음 보는 채희의 어여쁜 모습에 감탄해 마지않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쑥스러운 듯 채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냥 장옷을 뒤집어쓰고 책방만 서둘러 다녀오면 되는데…언니가 이리 아침부터 꾸며 놓아서…” “그래두 이리 입혀 놓으니 참으로 곱지 않아요? 나랑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그렇죠, 어머님 아버님?” “그러게? 우리 채희가 채랑이보다 훨씬 더 어여뻤구나? 하하하!” 모처럼 만에 핀 웃음꽃이었다. 언제나 채희를 산 속 깊은 곳에 홀로 지내게 해두어 마음 편한 날 없던 정경과 좌상이었다. 채희는 곧 고운 비단 장옷을 채랑에게 건네받곤 방을 나섰다. 채랑은 채희가 저잣거리를 다녀올 때까지 이 방에서 꼼짝 않고 자수나 놓고 있겠다 했다. 혹여, 채랑이 방 밖을 나서 돌아다니다 노비들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채랑 아가씨가 둘이라는 소문이 날 게 뻔 하였으니. “그럼…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모처럼, 아니 처음으로. 채희는 장옷을 뒤집어쓰지 않고서 방 밖으로 나섰다. 마루 아래서 채희를 기다리고 있던 휘영은 처음 보는 채희의 어여쁜 모습에, 눈이 동그래져 흠칫 놀랐다. 채희는 그런 휘영의 놀라는 모습에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게…많이 어색한가.” “…아, 아닙니다, 아가씨.” 꼭,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 했다. 휘영은 괜히 자기가 쑥스러워져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한 손에 비단 장옷을 꼭 쥔 채, 사뿐사뿐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서는 채희. 그리고 마당에서 옹기종기 비질을 하고 있던 노비들은 채희의 모습에 저들끼리 모여 숙덕댔다. “채랑 아가씨, 간밤에 좋은 꿈이라도 꾸었나 보오.” “그러게. 안색이 훨씬 더 좋아지셨다?” “오랜 벗이라는 그 무녀가 와서 그런가?” “아, 어제 그 허름한 차림의 여인이 무녀인가?” “그런 소문이 있던데. 확실치는 않어. 무녀란 말도 있고, 오랜 벗이란 말도 있고.” 채희의 정체를 두고 노비들은 왈가왈부하다, 이내 꾸민 채희의 모습이 너무 곱다며, 채랑 아가씨가 혼례를 치룰 때가 다되어 미모에 물이 오른 것이라 저들끼리 감탄했다. * * * “내 모습이…언니와 흡사하지 않은가…?” 채희는 연신 길을 지나며 자신을 보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였다. 휘영은 그런 채희의 뒤를 따르다 숙덕대는 사람들을 보곤 옅게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채랑 아가씨와 같사옵니다.” “그런데…어찌 사람들이 저리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는 것인지.” “이상한 눈초리가 아니라, 아가씨가 고와서 그러는 것일 겁니다.” 휘영의 말에 채희는 걷던 걸음을 멈추곤 휘영을 돌아보았다. 휘영의 곱다는 말에 양 볼이, 그만 발그레해졌다. 채희는 흠흠, 헛기침을 하곤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늘 숨어 지내는 것이 익숙한 터라 사람들의 평범한 시선들도 불편하신가 봅니다.” “…그런 것인가. 그냥 장옷을 뒤집어써야겠다.” 채희는 곧 비단 장옷을 뒤집어썼다. 한결, 편안해졌다. 채희는 처음으로 편안한 걸음걸이로 여유 있게 주위의 풍경들을 둘러보며 저잣거리로 향했다. 언제나 꽁꽁 싸맨 채, 행여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든 채 바삐 걸음을 움직여야만 했다. 이리도 바람도 부드럽고, 햇살도 따사롭고, 꽃 냄새도 향기로운 지 채희는 그간 알지 못했다. “아름다운…봄날이구나.” 채희는 그렇게 읊조리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뒤에서 그런 채희를 바라보던 휘영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와 달리 조금 들떠 보이기까지 하는 채희. 그러던 그때, “하하하! 술이라도 한 잔 따르라니까!” “이거 놓아주셔요!” “어허! 어느 안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야” 웬 으리으리한 기방 앞에서 삿갓을 비뚤어지게 쓴 도령이 가채를 높게 올린 기생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고 있었다. 채희는 걷던 걸음을 멈추곤 둘의 실랑이를 바라보았다. “보는 눈이 많사옵니다. 도련님. 제발, 제발 놓아주셔요.” “네깟 년이 술을 따르라면 따를 것이지! 웬 말이 많아!” “그러니 안으로 드시라니까 왜 쇤네의 손을 잡아끌고 나오신답니까!” “집으로 가자! 내 오늘 네 년이 말만 잘 들으면 내 첩이라도 삼아 줄 터이니, 하하하!” 그러곤 재미있다는 듯, 삿갓을 비뚤어지게 쓴 도령 무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도령의 손에 질질 이끌려 기방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곱게 생긴 기생. 채희는 장옷을 꾹 쥔 채, 저벅저벅 그들을 향해 걸었다. 그러자 그런 채희의 앞을 휘영이 가로막고 섰다. “그냥 모른 체 하고 가시지요, 아가씨.” “비켜라.” “그러다 곤혹이라도 치루시면…” “치러도 내가 치른다. 너에게도, 그리고 언니에게도, 아버님에게도 누가 될 행동은 하지 않을 터이니 비켜라.” “하지만. 채랑 아가씨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차라리 관아에 가서 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런 무례한 짓거리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버님께 누가 되는 행동이다. 비키라 하지 않았느냐.” 그때, 그런 휘영과 채희 뒤로 우의정 장자인 민혁과 부인, 유정이 지나다 이내 걸음을 멈추곤 채희와 휘영을 바라보았다. 일전의 면이 있던 휘영을 유정은 빤히 바라보곤 이내 장옷을 뒤집어 쓴 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혁 역시, 유정을 따라 민혁과 채희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관아에 간들 달라질 것이 무엇 있느냐.” “…….” “관아에서 저 도령에게 곤장이라도 칠 것이냐?” 당돌한 채희의 말에 유정은 눈이 동그래져 채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민혁 역시 그런 채희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 저 여인을 지켜줄 이는 관아엔 없다. 그러니 비키거라.” 하고 채희는 휘적휘적 휘영을 지나쳐 무례하게 기생을 질질 끌고 가는 도령 앞에 우두커니 섰다. 도령의 가까이에 가니 술내가 진동을 했다. 채희는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미 창피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기생은 갑작스런 채희의 등장에 흠칫 놀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손 놓아주시지요.” 채희는 장옷을 뒤집어쓴 채, 도령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술이 거나하게 취한 도령은 피식, 웃으며 채희를 한 손으로 거뜬히 밀어재꼈다. “상관할 바 아니잖아? 비켜!” 두어 걸음 물러난 채희는 다시금 도령 앞에 멈추어 서서는 도령과 그의 무리들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 당돌한 채희의 모습에 유정은 눈이 동그래져 고개를 갸우뚱했다. “좌상대감 여식 채랑 규수가 아니더냐?” “……” “일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듯한데.” 늘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조곤조곤 말하던 얌전한 채랑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채희의 모습에 유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옆에서 그런 채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민혁은, 낯익은 목소리에, 그리고 장옷 새로 보이는 낯익은 모습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 했다. “어…혹시…그때…?” 채희는 뒤집어썼던 장옷을 벗으며 무례하게 구는 도령들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자 채희의 얼굴을 보곤 흠칫 했다. “좌상댁…채랑…아가씨 아닌가?” “그러한 듯한데.” 기생은 좌상댁의 채랑 아가씨라며 수군대는 무리들의 말을 듣곤 눈물을 훔치며 채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같은 여자가 보아도 한 눈에 반할만한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 손. 놓아 주시라 했습니다.” “아가씨가 참견할 일이 아니오. 가던 길이나 가시오!” 이번에도 채희를 손으로 밀치려 그 도령이 오른 손을 뻗었는데, 채희는 그 손을 잡아 채 아프게 홱, 꺾었다. “아! 아아! 아아아!” “놓으라, 했습니다.” 화가 많이 난 듯, 채희는 그 말을 딱딱하게 내뱉으며 술에 취한 도령의 오른 손을 아프게 꺾었다. 그러자 도령은 팔짝팔짝 뛰며 기생을 쥐었던 손을 잽싸게 놓곤 채희에게 놓아 달라 사정했다. “이거, 이거 놓아 주시지요! 놓았소! 놓았소!” 기생의 손을 놓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채희는 꺾었던 도령의 손을 놓았다. 당돌한 채희의 행동에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기생은 물론이거니와, 그걸 바라보고 서 있던 유정은 물론, 옆에 있던 민혁까지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이내 민혁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코끝을 매만졌다. 유정은 그런 채희의 행동에 입을 떡하니 벌린 채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어디 반가의 규수가 사내의 손을 저리 함부로 꺾어. 채랑 규수에게 저런 면이 다 있었나 봅니다.” “왜요, 어머님. 씩씩하고 정의로운 모습이 보기 좋은데요.” “아드님! 그런 말은 함부로 마세요! 이 어미는 보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하며 유정은 이마를 짚으며 슬쩍 민혁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어찌! 이런단 말이오!”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도령은 채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채희는 피식, 차갑게 미소 짓더니 이내 기생의 빨갛게 부운 손목을 쥐어 도령 앞에 보여 주었다. “그러는 도련님은 어찌, 연약한 여인네에게 이러신단 말입니까?” “흠…흠흠! 그것은 내 술이라도 한 잔!” “술을 기방에서 드실 것이지 어찌 기방에 있는 여인을 무례하게 잡아끌고 나와 이런 행패를 부리신단 말입니까?” “행, 행패…? 행패라니?!” “학문을 배우고 행하시는 공자님들이 이런 추악스런 행동을 하는 것이 행패지, 행패가 달리 행패겠습니까.” “…뭐?” “더는 부친의 존함에 누를 끼치지 말고 공자님답게 행동들 하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채희는 생긋,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이리도 고운 여인이 이리도 고운 미소를 지으니, 도령들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흠, 흠 마른기침만 내뱉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하나같이 옳은 말이었기에 채희에게 더 말대꾸도 못한 채, 서로 눈치만 보던 도령들은 이내 헐레벌떡 도망치듯 사라졌다. 채희는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는 도령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까?” “괜, 괜찮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아가씨. 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기생은 채희에게 고개를 푹 숙여 보이며 수치의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채희는 자신의 소매 폭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채희에게 건넸다. “은혜는 무슨. 괜찮다면 되었습니다. 창피해서라도 앞으론 그대를 저들이 찾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세요.” 하며 채희는 미련도 두지 않고 휙, 돌아섰다. 휘영은 그런 채희의 뒤를 따랐다. 기생은 시원스레 돌아서는 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채희를 황급히 불렀다. “아가씨! 아가씨!” “……?” “이 수건은…” “가지세요. 나보단” “…….” “그대가 더 필요할 것 같으니.” “…….” “저깟 놈들 때문에 눈물 보이지 마세요. 고운 얼굴 버립니다.” 하고 채희는 뒤돌아서서 갔다. 여인이었지만 참으로 멋있단, 생각이 들었다. 기생은 한참을 채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채희를 바라보고 있던 민혁은 서둘러 채희를 뒤따랐다. “아드님! 아드님 어딜 가십니까!” “어머님, 잠시만요! 잠시만 지체하겠습니다!” 채희는 다시금 장옷을 뒤집어쓴 채 책방으로 향하려 모퉁이를 돌았는데, 어디선가 급히 나타난 민혁이 그런 채희의 팔을 쥐었다. “……?” 자신의 팔을 갑작스레 쥐는 민혁에 채희는 화들짝 놀라며 장옷을 떨어뜨려 버렸다. 채랑과 꼭 닮은 얼굴.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일전에 채랑과 대화를 나누어 본 적 있는 민혁은 채랑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채랑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 채희는 경계의 눈초리로 민혁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가까이에서 본, 채랑의 아니 채희의 얼굴은 참으로 고왔다. 민혁은 가만히 채희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섰다. 그때, 휘영이 황급히 채희의 앞을 가로막고 서며 민혁을 제지했다. “무례하십니다.” 채희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민혁을 덩달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서둘러 떨어뜨린 장옷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는데, “낭자.” “…….” “우리…안면…있지 않소?” “……?” 채희는 안면이 있지 않냔 민혁의 말에 다시금 민혁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그저 지나치는 바람이라 여겨, 내 다시 낭자를 마주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 “그것이 한낱 지나치는 바람이 아니었나봅니다. 이리 다시 만나, 한 눈에 알아보는 것이.” “……!” 채희는 민혁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장옷을 황급히 주어 뒤집어썼다. 심장이 쿵쾅 거렸다. 혹여 자신의 정체가 노출된 것은 아닐까 채희는 장옷을 뒤집어 쓰고도 모자라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모, 모릅니다, 나는.” 하고서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데, “낭자. 이름이 무엇이오.” 어찌…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고서…, 저잣거리의 아니 한양 사람이라면 채랑의 얼굴을 모를 이 없을 텐데…어찌, 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고서 이름을 묻는 것인지. 채희는 순간 숨이 멎을 듯 했다. * * *

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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