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 우리에게 '전환점'이 필요해 (2)

"결혼이라니."


의외로 침착했다. 도헌의 모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은 듯 보였다.


오히려 기겁한 것은 지혜 쪽이었다.


"구도헌."
"넌 내 이름 부르지 말고."
"야."
"내 이름 불러도 괜찮다, 얘기한 적 없는데."
"너…."
"니 입에서 내 이름, 듣기 싫거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줄곧, 바닥만 응시한 채 이야기를 이어가는 도헌이었다. 달갑지 않은 그녀의 등장에 한 번, 눈짓을 내어주었을 뿐, 더는 용납치 않았다.



"도헌아. 그래도 그렇게 냉정하게 할…"
"필요 있습니다."



도헌은 도헌의 모의 말을 싹둑 잘라 먹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죄송해요, 어머니."
"네가 뭘 미안해."
"저 때문에…."



지혜가 도헌의 모를 향해 사과했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듯. 지혜의 사과에 오히려 도헌의 모가, 얼굴을 붉혔다.


도헌은 이런 상황이 간지럽고, 싫어 입술을 달싹였다.



"훈훈하네요. 두 분 말씀 나누세요. 그럼."



하고서 도헌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는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아니. 앉거라. 이야기 마저 해야지."
"무슨 이야기요."
"네 결혼 이야기."



도헌 모친의 얼굴이 굳었다. 지혜는 곧 울것 같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도헌을 빼고 두 사람은 모두 기분이 엉망인 것 같았다. 엉거주춤 일어서던 도헌이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예. 해봅시다. 결혼 이야기."



무슨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나, 도헌의 모친은 자신의 배로 낳았지만 어쩜 이렇게 얄밉게 얘기하는 건지, 도헌을 슬쩍 흘겨 보았다.



"그래. 여자 친구냐."
"그럼, 모르는 여자랑 결혼 합니까?"
"언제부터 교제 시작 한 거니."
"그게 중요 합니까?"
"너랑 지금 말장난 하자고 앉아 있는 거 아니다."
"장난…아닌데."



도헌은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쥐었다. 지혜는 그런 도헌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진지하게 만나는 거니? 그래서 지혜를 안 보겠다 하는 거고?"
"어머니…그 여자, 저도 알아요. 도헌이 저 때문에 만나는 것,"
"닥치지, 한지혜."
"뭐?!"
"누가, 누구 때문에, 누굴 만난다는 거냐."



싸늘한 도헌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하고 귀여운 남자였지만,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끝없이 냉정하고 차가운 남자였다. 그것을 아는 지혜였기에, 더욱 안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도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시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하는 법은 드물었기에.


그런 도헌의 성격이 지혜를 혹하게 했다. 그런 냉정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 그녀를 이끌리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도헌의 매력 포인트가 자신에게 독이 되어 향하고 있었다. 어찌할 바는 몰랐지만, 어쩔 도리는 없었다.


“네가. 나 때문에. 그 여자를.”


지지 않고 그 말을 내뱉었다. 여전히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도헌을 향해.



“돌았네? 뻔뻔한 건가.”
“그만 하자. 이 밀당.”
“아니네. 병신이네?”
“야! 구도헌!”
“너는 이게 밀당으로 보이니? 대체 내 어디 포인트가 널 당기든?”


도헌은 웃음기 1도 없는 살벌한 표정으로 지혜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지혜는 도헌의 모가 있는 앞이라 더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입술만 꾹 꾹 깨물며 화를 억눌렀다.



“도헌아. 그만 해라. 지혜 너도.”
“죄송합니다.”
“그래. 그 여자는…뭐하는 여잔데.”
“뭐 합니다.”
“구도헌!”
“결혼 시켜 주실 거예요? 그럼 데리고 올게요.”
“…….”
“지금 얘 앞에서 그 여자 신상 까발리고 싶은 맘은 없거든요.”
“…….”
“결혼 하라고 하심 할게요. 장난 아니고, 진심이고.”
“…….”
“얘 말대로, 누구 때문에 누굴 만나는 그런 유치한 사이 아닙니다.”
“…….”
“진심으로 아끼고, 진심으로.”
“…….”
“마음이 가는 여잡니다.”



도헌이 내뱉은 그 마지막 말은 어쩐지 진심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혜는 더욱 불안했다.



* * *


“저…수정씨.”
“제 이름 부르지 마시구요.”



그녀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녀의 떨림에 로라는 동요되고 말았다.



“말해주세요.”
“…….”
“저희 오빠랑…”
“…….”
“무슨 사이에요, 로라씨?”



저희 오빠랑. 그래요, 나는 당신 오빠랑…. 로라는 목구멍이 탁 막혔다.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이렇게 될 거였다. 정해진 결말이었다. 구도헌 말대로, 로라는 사고를 냈다. 사고를 내고도 로라는 간과했던 것이었다.


구도발 말대로, 그래. 로라는 뺑소니를 낸 것이었다.


“무슨…사이도…아닙니다.”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이 여자를, 자신이 아프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미어져 왔다. 어떠한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막막해졌다.



“로라씨.”
“…진심입니다.”
“…그 말을 저더러 지금 믿으란…겁니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위로도, 사과도, 용서를 빌수도 없었다. 로라는 그대로 굳은 채, 죄인이 된 것 마냥 빳빳하게 굳어 고개만 푹 숙였다.



“속일…마음도 없었고…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보세요.”
“정말이에요. 우선…사과드리겠습니다.”
“…….”
“처음…그 얘길 제게 꺼내셨을 때.”
“…….”
“그 여자가, 저라는 것.”
“…….”
“말씀 드리지 못한 것…죄송합니다.”



로라의 표정이 굳었다. 수정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수습하기엔 많이 늦은 상황이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로라는 수정을 똑바로 응시했다. 수정은, 로라가 처음 기태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지었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황함과 배신감, 그리고 아픔과 슬픔, 분노. 그녀의 표정이 읽혔다. 로라의 마음이…어지러웠다.



“그건 사과 못하겠습니다.”
“…네?”
“당신 오빠, 그분과 만났던 것에 대해 서는요.”



로라는 붉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수정은 이내, 눈물을 뚝 뚝 흘리고 말았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저도 피해자입니다.”
“…….”
“사과할 이유…없다고 봅니다.”
“…오로라씨!”



수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로라의 뺨을 갈길 기세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수정씨와 사귀는 사이인 줄 모르고.”
“…….”
“만났습니다.”
“…….”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
“차기태씨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요.”
“그걸 모르고 만났다는 게 말이 됩니까?!”
“네. 말이 되더라구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
“그래서 헤어졌습니다.”
“…….”
“그 사람에게. 제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
“사실은.”



로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애써 억눌러 보지만, 부들부들 떨려오는 사지를 막을 수가 없었다. 로라는 그때의 충격이, 다시금 되살아난 듯 심장이 쿵쾅 쿵쾅 요동쳤다.



“복수…”
“…….”
“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
“너무도…믿었고…너무도.”
“…….”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수정은 털썩, 다시금 주저앉고 말았다. 애써 울음을 삼키며 한 자, 한 자, 힘겹게 그 말을 내뱉고 있는 로라를 보자 뺨이라도 한 대 갈겨 주어야 겠단, 그 생각이 가시고 말았다.



“그런 사람에게…배신을 당했으니…”
“…….”
“네, 사실. 복수하려 했습니다.”
“…….”
“수정씨에겐 미안했지만.”
“…….”
“그 사람 곁에 그래도 진득하게 남아 그 사람을 나보다 더 아프게, 지금 내가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주어야겠다.”
“…….”
“그런 못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왜죠?”



이번엔 수정이 물었다. 황량함만이 남은 수정의 눈동자가 로라를 향했다.



“왜….”
“…….”
“오빠 곁을 떠난 거죠?”



수정의 물음에 로라는 수정을 향했던 눈동자를 거두었다. 입구에 놓인 마네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로라의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자꾸만 생각이 나서요.”
“…….”
“그 사람을 마주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
“그 사람 때문에 아팠던 게, 그 사람의 배신 때문에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던 게.”
“…….”
“그 사람에게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
“무척이나 아파했던 나의 모습이.”
“…….”
“자꾸만 생각이 나서요.”
“…….”
“그래서 자꾸만 초라해지고, 비참해지고…아파져서요.”



로라의 말에 수정은 파르르 손을 떨었다. 연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닦아내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하지만.”
“…….”
“그 사람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건 믿어 주세요.”
“…….”
“그 사람이…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만 제 곁을 맴돌려 합니다.”
“…….”
“곁을 내어주는 것이라, 생각하시겠지만.”
“…….”
“결단코 아닙니다.”
“…….”
“미안합니다. 그때 저를 찾아오셨을 때, 처음 이 얘기를 꺼냈을 때.”
“…….”
“그것이 저라고, 말해주지 못해서요.”
“…….”
“수정씨를 바보로 만들고자 했던 것도, 수정씨를 가지고 논 것도 아닙니다.”
“…….”
“아무것도 아니고…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
“아무런 사이도 아니게 되기까지…많이 껄끄럽고 힘든 사이라는 것도 압니다.”
“…….”
“그래서 많이 노력 중입니다.”
“…….”
“허나 이런 김밥 싸주고, 제게 자꾸만 연락을 취해오고, 제 앞에 알짱거린다고 해서.”
“…….”
“흔들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
“안심하세요. 더는 수정씨에게 미안할 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단호한 어투의 로라였다. 모든 결심을 한 듯, 로라의 눈빛은 확고했다. 그녀의 눈빛을 보니…어쩐지 수정은 안심이 되는 듯 하였다.


하지만 로라의 마음은 다시금 무거워졌다. 잊고 싶었던, 다신 들추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이 헤집어져 마음이 불편해졌다. 굳은 표정으로 로라는 바닥만 응시했다.


“제가…그 말을 어떻게 믿죠?”
“…….”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지금 로라씨. 그 사람이 만들어준 김밥 받아왔고. 먹기까지 하고 있는데요.”
"그건.”


그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린 것은.


* * *


저는 이 소설만큼은 가벼운 로맨스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 그냥 가볍게 읽힐 수 있는 ! 그런 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함께 연재하고 있는 두 개의 달 때문에 여전히 더딘 연재지만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읽어주시고 지켜봐주셔서 ^^ 다음 회차 이번 주 안으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여성패션 ・ 시 ・ 사랑과연애 ・ 창작문예
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