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3. 지켜줄게요.

"뭐하는 짓이야!"



가게 문이 활짝 열리곤 화난 음성이 들렸다. 로라도 수정도 모두 놀란 눈으로 입구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오빠!"



기태가 서 있었다. 기태의 등장에 수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로라는 그런 기태를 물끄러미 응시할 뿐이었다. 그녀의 표정엔 아무런 색깔도 없었다.



"나와. 네가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앉아 있어!"



하며 기태는 우악스럽게 수정을 잡아끌었다. 로라는 덤덤히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여자였다며? 버젓이 옆에 두고, 날 바보 만들었더라?"



수정은 악을 쓰며 기태를 세차게 노려보았다. 기태는 그런 수정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상처받은 얼굴로 앉아있는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기태의 시선이 로라에게 향해 있다는 걸 깨달은 수정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와. 너 지금 실수하는 거다."


"실수는 내가 아니라 오빠가 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왜? 네가 뭔데. 이젠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냉정한 그였다. 수정은 이번엔 로라를 세차게 바라보았다.




"그쪽이 오빠 부른 건가요? 흑기사 노릇이라도 해달라고?"


"뭐라…구요?"


"아까는 잘도 얘기 하시더만요? 왜 지금은 입 꾹 다문 채 피해자 코스프레 하시나요?"


"이봐요!"


"사과 못 한다면서요! 어쨌든 당신, 복수니 뭐니 그깟 핑계 대가며 오빠 곁에 남으려 한 건 사실이잖아! 버젓이 내 존재 알아 놓고서도!"



수정의 말에 로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정 앞에 섰다. 수정은 지지 않고 로라를 응시했다.



"복수니 뭐니 그깟 핑계는 댔지만."


"……"


"나 그것 마저도 더러워서 관두고 끝냈습니다. 당신 오빠랑."


"……"


"정 그렇게 궁금하시면 당신 오빠한테 직접 물어보시던가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로라였다. 기태는 그런 로라만 응시한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 눈에 보기에도 안절부절 못하는 기태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수정은, 자신이 지금껏 알던 기태가 아닌 듯 낯설게 느껴졌다.



"오빠…내가 알던 오빠…맞아?"


"……"


"대체 왜 이러는 건데…어? 왜 이러는 거냐구요!"



수정이 울부짖으며 기태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런 수정을 여전히 거들떠도 보지 않고 기태는 연신 무표정의 수정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로라씨."



수정이 울부짖을수록, 기태는 더욱 로라만 바라보았다. 그런 기태가 원망스러운 수정이었다. 그런 로라가 괘씸한 수정이었다.



"왜 저 여자한테 사과를 해? 같이 즐겼잖아! 같이 행복했잖아!"


"조용히 하지 못해?!'


"사과는 나한테 해야 하는 것, 아냐?"


"왜지? 난 너에게 충분히 내 마음 설명했고."


"……"


"이별까지 고했지만, 떠나지 못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니냐."




로라는 싸늘한 눈빛으로 기태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앞에서 아웅다웅하는 둘의 모습이 이내 보기 싫어졌다.



"사과 하려면 네가 해야지. 너 때문에 내가 로라씨를 잃게 된건데."


"뭐…? 나 때문에 잃어…?"


"그만들 하세요. 나가주세요."


"이봐요, 오로라씨. 그렇게 당당할 입장 아니거든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못 당당할 이유는 뭐죠? 나, 그 쪽에게는 화내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타이밍이 안 좋았던 겁니다, 로라씨."



돌아서는 로라를 향해 기태가 애원했다.




"오빠!"


"타이밍이 안 좋았을 뿐. 정말 로라씨에겐 티끌의 거짓 감정은 없었습니다."


"타이밍이라…"



로라는 타이밍을 운운하는 기태를 싸늘한 시선으로 돌아보며 타이밍이란 세 글자를 낮게 읊조렸다.



"그 개 같은 타이밍 때문에."


"……!"


"나는 내 사랑을 배신당해야 했고."


"……."


"그 개 같은 타이밍 때문에."


"……"


"사랑도 배신당했는데, 사과까지 해야 하네요."


"…로라씨."


"그만."



로라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한 걸음 다가오는 기태를 피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만 하세요.”


“…….”


“충분하잖아.”


“…….”


“내 꼴 우습게 만들었고, 나 아프게 만들었고.”


“……”


“그래서 그만하겠다고, 당신 손 놓은지 오래고.”


“…….”


“그런데 당신이야 말로, 이별을 고한 날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거잖아.”


“……”


“그래서 그런 당신 때문에.”


“…….”


“나는, 나와 당신을 헤어지게 만든 그 여자에게.”


“……!”


“미안하다, 사과까지 해야 하고.”


“…….”


“나도 억울해 죽겠는데! 욕까지 들어 먹고 있잖아. 비참하지 않아, 내 꼴이?”


“…로라씨.”


“그 이름도 더는, 부르지 마.”


“…….”


“그만해…제발…그만 해줘.”



애원하듯 그리 말하는 로라의 검은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울지 않기 위해 애썼다. 여기서 울고 싶진 않았다. 울어도, 이 둘이 없는 곳에서 울고 싶었다.


여기서 눈물까지 보인다는 건 로라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기태는 그런 로라를 죄스런 마음으로 응시하다, 이내 눈물이 뿌옇게 차오르는 그녀를 애써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수정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며, 그녀의 말대로 그녀를 혼자 두게 하려 했다.



“가자.”


“못 가.”


“양수정!”


“똑바로 말 해. 오빠도 여기서 똑바로 말하세요.”


“뭐를 대체!”


“이 여자랑 끝내겠다고!”


“아니, 못 해.”


“오빠!”


“결혼도 하지 않겠다, 너희 아버지께 직접 말씀도 드렸고!”


“…….”


“내 마음도 확고한데! 대체 너는 왜!”


“……”


“왜…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냐.”



기태가 그렇게 수정에게 윽박을 지르고 있던 그 때,



- 땡그랑.



굳게 닫혔던 가게 문이 열렸다. 로라는 황급히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입구를 응시했다. 수정과 기태 역시, 서로를 응시하던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곤 땡글아, 소리가 나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자꾸 너희.”


“……!”


“내 여자 친구 괴롭히냐.”


“…구도발.”


“죽을래?”



* * *



“어머니…, 어떡하면 좋죠. 도헌이 마음…완전히 돌아선 것 같은데요.”



지혜는 입술을 악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헌의 친모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저리 냉정할 땐, 지 애비를 똑 닮았다니까.”


“…….”


“그래도 걱정 마라, 지혜야. 시간이 지나면 저 녀석 다시 너한테 돌아갈 것이니까. 삼 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길고 큰 시간인데.”


“…….”


“지금이야 네가 괘씸해서 저리 냉정하게 대하는 거지만, 또 달라. 시간이 지나고 네 허전함을 느끼면 다시 연락 올 거니.”


“…….”


“걱정 말고 있어.”


“예…어머니.”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연신 도헌이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며 로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 대신 이젠 도헌의 옆에 있는 그 여자의 얼굴.



“그런데 집에선 뭐라고 하시니? 이 사실…아셔?”


“아뇨. 아직 도헌이…귀국한 것도 몰라요.”


“…다행이다. 사돈어른 아시면…괜히 걱정만 하시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을. 사돈어른께서 우리를 신경 써 주신 게 얼만데. 앞으로도 모르시게 네가 알아서 잘 둘러대. 결혼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게 할 테니.”



지혜는 그런 도헌의 친모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도헌이 이번 달 유학 생활비…”


“어?”


“어제 집에서 주셨어요. 어머니 계좌로 입금해드릴게요.”



지혜의 말에 도헌의 친모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도헌의 유학 경비며, 매달 생활비를 지혜 집에서 꼬박꼬박 도헌의 모에게 주고 있었다. 도헌의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그 돈을 도헌의 친모는 받아 챙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 지혜 집안에선 도헌이 지혜와 결혼할 사이니 돈을 챙겨주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그토록 좋아하는 남자니, 딸을 봐서라도 챙겨주는 것이었다.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늘 그랬듯 도헌이는 절대…절대 모르게 해야 해요. 이번에 이런 일까지 터졌는데, 어머니가 그 돈 받으시는 거 알면…”


“당연하지. 성질 머리 더러운 그 자식 알면 집 안이 발칵 뒤집어 질 건데.”


“그런데…아버님께선…”



지혜는 조심스레, 도헌의 아버지를 물었다. 그러자 도헌의 친모는 흐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찌해서 네 일을 알게는 되었다만…반응이 좋진 않으시지.”


“…어떡해요, 어머니.”


“그래도 그 양반은 내가 밀어 붙이면 되니까 걱정 마.”


“…애써 주셔서…감사합니다. 죄송하구요.”



지혜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헌의 친모가 아님 이젠 와장창 끝이 나 버릴 사이. 지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돈으로라도 도헌의 친모를 매수해야만 했다.


그것이 진정 사랑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것의 결말은 처참할 것 역시 알면서도.


* * *



“구도헌씨.”



도헌은 싸늘한 눈빛으로 저벅저벅 가게 안으로 들어서더니, 이내 눈물범벅이 된 로라 곁에 섰다.



“하여튼. 나만 없으면 일이 생겨요.”


“…….”


“이러니 내가 우리 자기를 두고 일을 볼 수가 없지.”


“…….”


“이 아줌마는 뭐야. 아~. 차 선생, 퍼스트?”



무례할 수도 있는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도헌은 수정을 향해 고갯짓을 해버렸다.



“이봐요! 퍼, 퍼스트라니요!”


“왜. 세컨드인가? 아니잖아?”


“이보세요!”


“아. 영어가 맘에 안 들어서? 오케이. 첫 째 여자. 됐습니까?”


“구도발. 그만 해.”



도헌의 말에 수정은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곤 말끔한 모습의 도헌을 위 아래로 훑더니 기태를 올려다보는 수정이었다.



“오로라씨 남자 친구 분 같은데. 오빠도 알고 있었어?”


“알다마다. 님 남친이 나랑 오순도순 같이 먹으라고 저 김밥 싸준 건데?”



도헌은 피식 웃으며 기태가 준 도시락 통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수정은 그런 도헌을 한 번 흘겨보더니 이내 기태가 한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오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에 대한 궁금증 해소는 나가서 해주시겠습니까?”


“뭐라구요?”


“난 우리 자기랑 점심 먹어야 해서. 그럼.”



하며 도헌이 수정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기태는 그런 도헌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기며 나지막이 로라를 향해 읊조렸다.



“미안합니다. 로라씨.”



도헌은 그런 로라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로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코끝이 빨개진 채 땅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도헌은 그런 로라의 손을 꼭 잡았다.



“……?”


“울지마요.”


“…안 울거든?”


“앞으론 쟤네가 못 괴롭히게.”


“…….”


“내가 옆에서 꼭 지키고 있을테니까.”



* * *

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