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전 고려 귀족들도 몽골텐트 들고 캠핑가는게 유행이었다.

삼국시대 초기까지는 대다수 백성들의 집은 땅을 파서 짓는 움막집이었다고 합니다.

땅을 파서 반지하층처럼 만드는 이 방식은 이글루와도 비슷한데 거센 찬바람을 막고 땅의 지열을 이용해  보온을 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주춧돌을 놓고 나무 벽을 세우고 기와를 올리는 방식으로 점차 발달하게 되는데, 고구려가 위치한 만주 지역에서 드디어 우리 민족의 자랑, 온돌이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서구처럼 전통 가옥은 부엌에 큰 솥을 올려놓고 아궁이에 불을 땠지만 곧장 굴뚝을 연결하지 않고 방바닥을 통과시켜 열기를 바닥으로 보내는 방식이라 열 효율성에선 압승입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온돌은 이 같은 땅의 냉기를 차단하는 난방 기술로서 아주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에도 ‘ondol’이라고 등재된 바 있지요. 

최근 중국이 슬슬 이 온돌도 중국 문화라고 우기기 시작합니다만…….


온돌은 당초에는 부엌 아궁이를 통해 부엌과 맞닿은 벽으로 온기를 전달한 것으로 4세기 고구려시대 축조된 황해도 안악 3호분 고분벽화에도 그려져 있고 발해 유적에서도 온돌이 발굴된 바 있습니다.

만주에선 아직도 이런 ‘쪽구들’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엌 벽만 따뜻해져 이 벽에 침대를 대고 자는 경우가 많고, 중국인들도 서구 처럼 난방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입식 문화를 해왔습니다.

이후 서서히 이 기술이 남하하면서 고려 중기에 이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방 전체가 온돌로 된 ‘통구들’이 일반화됩니다. 

하지만 이 온돌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실로 300~400년 전에 불과해요.

통온돌 기술이 아주 오랫동안 더디게 확산된 이유는 온돌방을 만들려면 대공사를 해야 해 새로 집을 지을때 건축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돌의 확산을 막은 역사적 계기도 있어요.


고려 후기 몽골 침입을 받은 후, 당시 글로벌 스탠더드인 몽골식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귀족들은 변발을  하고 몽골식 옷을 입고, 집에서도 침대를 쓰고, 몽골식 원형 텐트 ‘게르’를 장만해 애완용 매 하나씩  어깨에 걸치고 사냥을 떠나 며칠씩 게르 중앙에 화로를 놓고 주위에 침대를 놓고 자는게 대유행했었다죠.

우리말 표현 중 “시치미 뗀다”는 게 고려시대 매 사냥이 유행했던 당시 매를 훔치면서 매에 붙인 이름표인  ‘시치미’를 뗀다는 데서 유래한 겁니다.

고려 귀족 A : “여, 아직도 촌스럽게 사슴 사냥 하고 사시나? 최근 몽골 매 하나 샀다몽골.”


고려 귀족 B : “축하하네. 그럼 이번 주말에 매사냥 하러 타타르 C.C부킹해 놓겠네케라코룸.”


고려 귀족 A : “그러지 말고, 이번 주말엔 게르에 토치카 싣고 가족 캠핑 같이 감세. 아들 녀석이 ‘아버지, 어디 행차하십니까?’ 놀이가 유행한다며 마구 조르네고려.”


고려 귀족 B : “아 그거 좋지, 이번에 ‘북방 안면’ 브랜드로 게르용 화로 새로 하나 장만했게르.”


고려 귀족 A : “아니 그 비싼 ‘척추 골절품’을 장만했단 말인고려? 잘 나가시네고려…… 허허허.”


고려 귀족 B : “자네도 요새 잘나가는 ‘홍조 안면’ 화로 하나 장만하시게나.”

그렇게 몽골 문화가 유행하다 보니 오랫동안 온돌 보급은 지지부진 했습니다. 

이후 고려 말 반원 운동이 거세지고 조선시대가 들어서며 몽골 풍속이 점차 사라지면서 다시금 온돌이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재건한 창덕궁에도 왕실 가족 침소를 제외하곤 온돌을 설치하지 못할 정도라 일반인들은 온돌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조선시대 궁궐 화재 사건이 빈번했던 이유가 새로 온돌 교체 공사를 하고 시운전을 하다가 불 조절에 실패해 홀라당 불길이 번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이후 온돌이 민간에 널리 확산된 계기는 영․정조 시기에 이르러 경제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데, 온돌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엉덩이를 지지는 구들장 문화가 정착되었고 침대나  키 높이 탁자, 의자 등 입식용품은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온돌 확산은 큰 문제를 하나 만들게 되는데요. 

바로 온돌 난방을 위해서는 땔감 나무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누구나 다 산에 올라가 매번 나무를 잘라 오기도 쉽지 않자 나무꾼이 전문 직업군으로 등장했고, 나무가 남아나지 않게 되어 점차 민둥산으로 황폐화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석기시대만 해도 울창한 삼림지대이던 한반도는 조선 말기에 이르면 어디 할 것 없이 주거지 인근 산은 다 붉게 헐벗은 민둥산이 되었고,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홍수가 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후 일제시대에 이르러 그나마 남아 있던 개마고원 등 깊은 산속 나무들도 벌목되어 주요 수출품이 돼버리면서 산림은 더욱 황폐해집니다.

우리가 식목일이란 기념일까지 만들면서 다시금 우리 산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우리 주택 문화의 자랑인 온돌의 확산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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