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은 역시 논문이지. 먼저 링크의 논문을 읽어 보시라.
Modeling the West, Returning to Asia: Shifting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Japanese Colonial Expositions in Korea : https://www.jstor.org/stable/3879389?socuuid=a273b544-ed71-4980-80cf-ca747331655c&socplat=twitter
Hong Kal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Vol. 47, No. 3 (Jul., 2005), pp. 507-531
국사책에 잘 나오지 않는 정보이지만 우리 모두 용두사미의 거장(…)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은 알고 있다. 이 만화의 주된 테마가 무엇이냐, 1970년 오사카 엑스포(혹은 만박)이다(혹은 태양의 탑). 1993년 대전 엑스포보다 이 1970년 만박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일제 시대 때에도 대규모의 박람회는 있었다.
다만 나는 1915년의 조선물산공진회(참조 1)의 존재만 알고 있었는데, 논문을 읽어 보니까 아니더라. 1929년의 조선박람회도 있었다. 이 논문은 이 두 가지 박람회가 서로 성격이 다르며, 1915년의 박람회는 “일본의 우월성”을, 1929년의 박람회는 “일본의 대동아공영”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이다.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1915년 박람회(조선물산공진회)부터 보자. 당시 조선의 후진성이 상당한 수준이었고 또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우월한 일본의 기계 장치나 상품들을 전시하여 외지인들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목적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29년의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는? 병합 후 약 30년이 지났다. 곧 1930년대가 옴을 아셔야 한다. 대동아공영권을 착수한다는 의미인데, 이 때부터는 내선일체가 강조됐다. 일방적으로 조선 반도의 후진성이 나왔던 1915년의 박람회와는 달리 1929년의 박람회는 일본의 지배 하에 조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려는 목표였다.
즉, 중국으로의 “확장” 전에 내부부터 단도리를 해야 했던 박람회라는 얘기다. 그때까지 일본은 자신이 얼마나 서구화됐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서 수많은 박람회를 개최했었다. 그러나 워싱턴 군축조약이 언제냐, 1923년이다. 이때 일본은 3국 간섭(참조 2) 이후 최대랄 수 있을 굴욕을 당했다. 제아무리 식민지가 있다 하더라도 서구 제국들과 일본은 동등하지 않았다.
즉, 그때부터 일본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된다. 1929년의 박람회를 그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아이러니한 점은 박람회라는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 일본이 만국 박람회를 나간 것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였다. 그러나 일본은 주로 서유럽에서 열렸던 만국 박람회에서 자신의 문명을 과시한 적이 거의 없고, 대부분은 전통적인 면만을 보였었다. 애초에 서구와 동등한 입장은 아니었던 셈이다(참조 3). 일본은 스스로를 “오리엔탈화”시켰었다.
그런데 이 논문의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 부분에 있다. 저자가 아직 연구가 미진하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있는데, (특히) 조선 지식인 사회에서의 박람회에 대한 반응이다. 대동아 공영을 주장하고 표현하는 일본의 박람회에 대해 당시 조선 지식인들은 상당히 냉담했었다. 이들은 일본식 교육을 받거나 아예 일본에 유학했건만, 박람회에서 일본의 대동아공영이 무엇인지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박람회가 오히려 그들의 “조선 정체성”을 북돋았다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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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정식 명칭은 “시정오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周年記念 朝鮮物産共進會)”,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5년만에, 얼마나 외지가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축하 사업이었다.
2. 청일전쟁 이후 1895년 요동반도를 일본이 차지하려 할 때,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가 개입하여 차지하지 못 한 사건을 가리킨다.
3. 자포니즘(japonisme)의 사조 때문이다. 유럽은 일본풍을 자신들의 예술 사조로 살려냈고, 그 이미지의 틀 안에서 일본을 바라봤었다(지금은 아마 포켓몬의 틀 안에서…).
대표적인 작품이 끌로드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마담 모네(Madame Monet en costume Japonais, 1875)” 그림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Japonism#/media/File:Claude_Monet-Madame_Monet_en_costume_japonais.jpg
4. 사진 출처는 서울역사박물관: http://www.museum.seoul.kr/exh2/gwanghwamun/html/content/con_sub05_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