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딕 레전드 펌) 사라진 동생

내가 미친건지 아니면 우리 엄마 아빠가 미친건지 알고싶다. 나에게는 동생이 있었다. 확실하게.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아니라고 한다. 확실히 존재했었던 아이를 내 환상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자신들의 이상한 행동에 관해서는 해명하지도 않아. 내가 미친거야??


나에게는 동생이 있다. 나이차이는 좀 많이 나고, 여자 동생이다. 나도 여자고. 동생은 몸이 약하다고 유치원에도 가지 않았던 아이였다. 나와 동생은 7살정도 나이차이가 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했을때 겨울이었다.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난데없이 동생을 데리고 왔다고 해서 놀랐지만 갓 8살이 된 아이가 엄마의 강력한 주장에 반박을 펼치긴 어려웠었다. 그리고 나도 유치원은 안다녔고.


여러 이상한 점들이 있었지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엄마 아빠가 해준 말을 무조건 믿고 살아가던 아이였으니까. 동생에 대해서는 그렇게 어느순간부터 가족이 되었다.


난 약간 멍청하다시피 순수한 아이였다.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집에서만 생활하고 만나는 사람도 엄마 아빠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동생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다.


어떻게 배가 부르지도 않고 아이를 낳지? 친구도 친구 엄마의 배가 한참이나 남산만하게 불러서야 동생이 생기던데 우리 엄마는 왜 배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동생이 생겼을까?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배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동생이 생겼냐고, 내 친구 엄마는 배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서 오랫동안 있고 나서야 동생을 데려왔는데 왜 엄마는 그렇지 않았냐고.


나는 그게 태어나서 처음 본 엄마의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공포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귀신도 그렇게 표정을 일그러트리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무서운 표정으로 엄마도 배가 불러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말라서 배가 얼마 안불렀던거니 절대 그런얘기 하지 말라는 말에 나는 그냥 울었다. 엄마는 날 달래지도 않고 그 얘기 누구한테 한적 있냐고 다그쳤고, 절대로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나를 품에 안았다.


그때는 그냥 엄마가 화가났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나에게 엄마 아빠는 가장 오랜시간을 함께하고 나 자신보다도 더 나 자신같던 존재여서 엄마 아빠의 말을 거역하거나 의심한다는건 내 자신을 부정하는것이었으니까. 동생 이름은 은혜다. 김 은혜. 내 이름이 김은비여서 은자돌림으로 은혜라고 지은 것 같다.


어쨌든 이야기부터 다 할게. 그러면 왜 내가 동생이 있었다는걸 증명하지 못하는지 알게 될테니까. 그런식으로 나는 은혜와 같이 컸다. 나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나이이고, 은혜를 못본지는 세달째다.


일단 이상한점은 쓰레기를 태우는것. 그것도 은혜가 쓴 것만 태웠다. 은혜가 어릴때 쓰던 것들도 아마 태워서 처리한걸로 기억한다. 근처 하천이나 산에 버린적도 있던 것 같고.


쓰레기를 버리는 수법도 점점 늘어서 나중에는 아빠의 회사가방같은곳에 숨겨서 버렸다. 기저귀나 코푼휴지같은것도 하나하나 골라내서 은혜 쓰레기만 그렇게 버렸겠지. 하지만 학교에 다니는 나로서는 증거를 찾기 힘들었다.


아무리 증거를 찾기 힘들어도 사실 같이 사는데 그런 눈에 띄는 행동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했다.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이었으니까. 나에게 엄마 아빠는 신같은 존재였으니까.


나도 은혜도 세뇌당하다시피 엄마 아빠를 믿었다. 심지어 자기 쓰레기만 골라 없앤 행동에도 은혜는 부모님을 믿었다.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서 사회생활을 배우는 동안 나와 은혜에게 사회는 엄마 아빠였으니까.


그런 나의 세계가 깨진건 겨우 2년쯤 전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 만난 친구 때문에. 나는 동생 이야기를 밖에서 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하긴 했었고 누가 외동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그런 나에게 중3때 만난 친구는 충격이었다. 말하자면 그아이는 시스콤이었으니. 나에게 동생은 사실상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었다. 동생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학원도 가지 않고 밖에도 나가지 못하며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으니까.


개나 고양이쯤 되던 동생이었는데, 친구네는 판이하게 달랐다. 친구는 여자였지만 자신의 여동생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심지어 친구네 여동생도 은혜와 같은 나이였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드디어 은혜가 내 동생이고 사람이라는걸 알았다.


그때부터였다. 이 집안은 뭔가 굉장히 뒤틀려있다는걸 눈치챈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입양이든 아니든, 동생은 사람이었다. 엄마 아빠의 자식이었고. 그런데 엄마 아빠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항상 아가~ 하고만 불렀을 뿐. 동생에게는 한글조차 가르치지 않았고, 그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에게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아도 그시간에 항상 무언갈 공부시키곤 했는데 동생은 아니었다. 그아이는 항상 집에서 엄마와 단 둘이 있었다. 그 시간에, 엄마는 그 아이에게 뭐라고 했던걸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적부터 학원에 다녔다. 아주 많이. 그래서 항상 지에 들어오면 아홉시였다. 밥먹고 숙제하면 열두시. 그러면 나는 동생이고 뭐고 잠들어버렸다. 주말에나 간신히 집에 있었고 그마저도 친구를 만났다.


동생 쓰레기만 흔적도 없이 버리고, 동생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동생 옷은 항상 내옷만 물려주고, 동생의 물건이라곤 단지 낡은 내 옷밖에 없었다. 그 이상함을 중학교 3학년이나 되어 인식한게 신기했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좀더 동생과 친해지고 놀아준 것 뿐이었다. 상황에 대한 개선, 그런건 없었다. 나는 이상함을 머리로만 받아들였고, 동생은 불합리하다는 것조차 몰랐으니까.


오히려 내가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걸 말해주면 동생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말하면 엄마에게 혼난다고 했다. 자기도 예전에 엄마에게 물어봤다가 혼났다고.


나는 순간 어릴적의 그 엄마를 떠올렸다. 단 한번의 모습이지만 날 쥐어잡고 흔들며 소리치던 그 무서운 모습이 떠오르자 자연히 입을 다물었다. 엄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엄마 아빠가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미친년이다. 중 3씩이나 되는년이 그걸 그렇게 받아들였다는게 놀랍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자연스러웠다. 예를들어, 엄마가 원래 모든 동생들은 이런거라고 했을때도 그랬다.


나는 우리집이 아니라 다른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우리집이 이상한걸 알지만 도저히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되지가 않았다. 심각한 마마걸이나 파파걸정도가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엄마 아빠라고 생각했었다. 고입 때까지도.


나 = 엄마+아빠. 그정도가 심해서 만약 나의 의견과 엄마의 의견이 다르다면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정도? 그정도였다. 솔직히 세뇌나 다름 없었다. 기억나지도 않을적부터 나와 은혜에게 쭉 이어져온 세뇌.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되었을쯤 동생이 아팠다. 엄마는 동생을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하고 2, 3일 정도 오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엄하게 안된다는 말에 바로 포기했다.


그렇게 밤이 되고 동생이 떠난지 하루째 되는 날, 토요일 아침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난다. 고등학교 입학한지 한달쯤 되었을 토요일. 나는 친구들이 동생을 보여달라고 하기에 동생 사진을 찾고 있었다.


집에 누가 찾아오는것을 절대로 금지하는 부모님 때문에 우리집은 그 누구도 올 수 없었다. 나도 당연히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았고. 그렇게 동생 사진을 찾고 있던 중에 깨달았다.


동생 사진은 한장도 없다는것을. 단 한장도. 그리고, 사진을 찾으려 온 집안을 뒤지며 또하나 깨달았다. 은혜 물건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머리끈 하나도 없다. 하루에 2번이상 청소를 하는 엄마이기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 없었다.


은혜는 머리색이 진한 검은색인 엄마, 아빠, 그리고 나와 다르게 연한 갈색이었다. 미용실도 안가서 항상 여신머리? 앞머리를 길게 길러 옆으로 넘기는 머리를 했다. 길기도 엄청 길었고. 그런 머리카락 한올도 없다는게 무서웠다.


만약 여기서 은혜 한사람만 사라지면 은혜는 세상에서 완벽히 없었던 존재가 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그건 그냥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엄마 아빠도 다 자식으로 인정하고 멀쩡히 있는 아이가 사라지는게 말이 돼?


이정도쯤 되니 나도 무언가 엄마에게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며칠후 엄마가 돌아오자 말도 못꺼냈지만. 그런데 여기서 더 걸리는 점이 있다. 은혜가 그때 설명했던 병원의 풍경이 이상했다.


차를 타고 몇시간이나 이동했다고 한다. 택시인지 아닌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은혜가 차를 탄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 은색 차라고는 했지만택시모자가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인적이 뜸한 주택가로 들어가 붉은 벽돌 집으로 갔다고 했다.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가리키며 한 이야기니 확실히 간곳은 빌라일 것이다. 그런 빌라의 반지하로 들어갔다고 했다.


1층인지 반지하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설명상 반지하였다. 그곳에서 이상한 아저씨들과 여러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이것저것 물었지만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대답도 잘 못했다고, 그런데 아저씨들은 오히려 좋아했다고 했다.


옷을 벗기고 신체검사도 했다고 해서 놀라 어딜 만졌는지 물었더니 만지진 않았다고 했다. 속옷도 다 입고 했다고. 꺼림칙했지만 넘어갔다.


누가 봐도 이상해서 엄마에게 물었더니 병원 외벽이 붉은색이라느니(병원이 붉은색... 말도 안되는데) 분홍색이라느니 횡설수설하고 은혜가 몸이 약하니까 신체검사 한거라며 당연하다는듯 말했다.


그러면서 품에 은혜를 안고 아가 아가 하고 너무나 사랑스럽다는듯 해서 나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학교에 가서 이 이야기를 가장 친한 친구에게 했다. 나랑 중학교때부터 너무 친했던 그 중 3때 만난 시스콤친구한테. 난리가 났다. 그러면서 그건 범죄라느니 뭐라느니 하기에 기분이 나빠 아니라며 돌아섰다.


친구는 그 얘기를 친구들에게 한것 같았지만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려 왕따를 당했다. 내가 아니라고 잡아 뗐기 때문에. 엄마가 동생얘기는 절대 하지 말라던게 생각나 나도모르게 아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주위 어른들에게 동생 애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 엄마에게 그 친구 얘기를 했다. 엄마는 미친듯이 화를 내고 나를 다그쳤다. 난 울며 빌었고, 은혜는 나를 원망했다. 엄마를 화나게 했다면서. 7살 이후로 처음 보는 그 얼굴.


엄마는 그렇게 화를 내더니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내가 학교가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야만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 당장 그날밤에 한달짜리 유럽여행을 잡아 그 다음날 아침에 떠났다. 나랑 엄마만.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은혜와 아빠는 집에 남았다.


나랑 엄마는 그렇게 여행을 가 즐겁게 놀다 왔다. 순서는 자세히 기억이 안나지만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정말 좋았다. 충격은 집에 돌아온 후였다.


집에 돌아온 나는 기겁했다. 아니, 비행기에서 내릴때부터 기겁했다. 뮌헨에서 비행기타고 날아와 도착한곳은 인천공항이 아니라 김해공항이였다. 부산공항.


왜 부산에서 내리냐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이제 우리 부산산다고. 그당시 나는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은 오직 엄마와 아빠만의 것이었으니까.


내가 엄마와 여행갔다온 사이 집은 부산으로 이동되어져있고 나는 전학을 온 것이다. 부산으로. 아빠의 직장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꺼림칙했다. 가족 구성원이 여행을 갔다온 사이 이사를 간다고? 그것도 돈도 없는 우리가?


꺼림칙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말도 안됬지만 이미 교복은 내 사이즈로 아빠가 사다 놓았고, 집에는 가구도 다 들여놓은 상태였다. 돈이 없는지 전의 집보다 확실히 작아지고 방의 개수도 줄었지만.


나는 계속 이 이상한 여행과 이사가 걸렸다. 내가 친구 얘기를 하자마자 미친듯이 날 혼내며 당장에 비행기표를 찾고 짐을 싸던 엄마.


그리고, 집을 다 싸놓고 피곤한 눈으로 아빠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이야기를 하던 그 순간까지.


분명 그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생겼음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왜? 나는 그 '왜'를 몰랐다.


고1때 그렇게 이사를 한 이후로 은혜가 사라지기 몇일전까지는... 그러니까 작년 4월초쯤부터 12월 초?중반? 까지는 별 일이 없었어. 그런데 은혜가 사라진날, 정확히 기억하는 12월 8일 하루전날 밤.


그날 난 확실히 엄마 아빠에 대한 믿음을 붕괴시키는걸 보았다.


엄마 아빠는 어쩐지 10월달쯤부터 나와 은혜를 떨어트려놓았다. 엄마가 은혜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돌았고, 며칠씩 안들어오기도 했어. 심지어 집전화에 전화를 거는데 공중전화로 걸었던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 못하지만 아빠 통화할때 슬쩍 보니 051로도 걸려왔다가 며칠 후엔 031, 02 하는 식으로. 핸드폰번호가 아닌 집전화번호같은데...


그 지역에 있는 아는집들을 하나하나 방문해서 그집 집전화로 전화거는거 아니면 공중전화 아닐까.


051은 부산 지역번호고 02는 서울이다. 031은 어디지? 잘 모르겠다. 컴퓨터를 쓸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어서 검색보다는 빨리 썰풀고 싶은데...


누가 나대신 지역번호좀 찾아주라. 031하고 033, 062 그거 말고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이것도 정확한지 잘 몰라.


10월하고 11월땐 기말고사에 방학직전이라 많이 바빴다. 성적표 받고 뭐하고 하다보니 은혜는 신경을 못썼다. 그렇게 은혜는 최대 일주일정도까지 엄마랑 같이 밖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11월 말부터는 집에만 있기 시작했다.


그땐 나도 방학이어서 은혜를 좀더 많이 돌봤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도 이때 취직이 되었다며 항상 아빠랑 같이 밖을 돌아다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고.


11월 말부터 은혜가 사라지기 전까지 나랑 은헤는 하루종일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은혜의 행동이 이상했다. 10월달 전까지만 해도 옷도 혼자 안입겠다고 드러눕고 밥도 먹여달라하고 이빨 닦아달라하고 씻겨달라하고...


혼자서 하는건 거의 아무것도 없던 애가 갑자기 자기가 다 하겠다며 자기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다. 매일 나한테 안기고 날 깔아뭉개며 좋아하던 아이가 이상하게 나와의 접촉을 꺼렸다.


은혜는 11살이 되도록 본 사람이라고는 나와 아빠 엄마 뿐이었다. 그 외에는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나 그 의사들?? 그리고 엄마가 데리고 나돌면서 본 사람들 뿐이겠지.


그런데다 나하고 시간을 보내고 소통하기 시작한 것도 겨우 2년남짓이다.


그 전까지는 전업주부인 엄마와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냈겠지. 은혜는 밖에도 못나가니까. 그렇게 10년을 살아온 아이라 머리는 멀쩡한데도 지체장애아같은 행동을 할때가 있었다.


은혜는 남이 나를 해친다는 것 자체를 인식 못한다. 엄마, 아빠나 내가 은혜를 해칠 일이 뭐가 있었겠어. 적어도 작년 10월달 전까지 은혜의 세계에서 악은 없었다. 그아이가 인식하는건 모두 좋은것이었고.


내가 나=아빠+엄마라고 세뇌당했다면 은혜는 은혜=아빠+엄마+은비언니 정도로 세뇌당했다는게 맞을까.


하여튼 그 어리광많고 내가 시키는 말이면 죽으라고 시켜도 할 것 같은 아이가 내가 같이 씻자고 해도 싫다, 옷 갈아입자고 해도 싫다 다 거부했다. 심지어 내가 안아주는것도.


은혜가 나보다 우선시 하는게 있다면 그건 분명 엄마나 아빠랑 관련되어 있을 거였다. 하지만 물어도 잘 대답을 안하니 무의식적으로 말하도록 할 수 밖에 없었어.


나는 섭섭하다는 식으로 은혜가 10월달, 그리고 11월달에 나가서 뭘 했는지 물었다. 엄마가 말하지 말랬다면서 울먹였지만 내가 고집을 피우자 넘어오는 눈치였다. 은혜가 말하는 내용은 정말 이상했다.


처음엔 어떤 아저씨 아줌마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어떤 아저씨 아줌마들은 미안하다며 은혜를 붙잡고 울었단다. 은혜는 그들 앞에서 신체검사도 하고, 검은 종이를 보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물론 은혜는 가만히 있었고 엄마랑 아저씨 아줌마들이랑 하얀옷입은 아저씨랑 검은 종이를 여러장 두고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고.


여기서 검은종이가 뭔지 모르겠다. 크기는 에이포용지보다 조금 더 큰정도같은데... 검은종이? 스레주들은 알거같니?


그렇게 2~3 일정도 보내고 다시 집에 며칠있다가 나갔다고 했다. 그때가 가장 오래 나갓을 때인데, 약 일주일정도를 나갔었다.


그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하라고 하자 은혜는 얼굴이 하얘졌다. 하지만 내가 우는척을 하며 섭섭하다니까 결국은 말했다. 거의 차를 타고 시간을 보냈단다. 차는 그 전같은 은색차(택시. 이제는 구분한다)가 아니라 검은 봉고차.


거기에 타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몇시간씩 차를 타고 달리면 아이가 한명 한명 더 봉고차로 들어왔다는데 은혜 말대로라면 고속도로는 절대 안타고 국도만 탄 것 같다. 그것도 외곽지역으로.


항상 한적한 시골길이고 (막 넓은 공터가있었다느니 커다랗고 노란 솜뭉치가 있다느니 하는데 내가 생각했을땐 겨울 논인것 같다.) 소똥냄새같은것도 맡았다더라.


그렇게 보낸 시간이 한 6일쯤 되는 것 같았다. 은혜 설명대로라면 집에 들어오기 약 6시간 전까지 그렇게 차타고 다녔다고.


봉고차에 아이들이 꽉 차자 어딘가에 내렸다는데 그 '어딘가' 가 어딘지 유추가 안된다. 회색건물이고 아저씨들이 많았고 주변은 숲이었다는데...


안에 가구는 없었지만 몇층으로 나눠져있다고 했다. 있는 시설이라고는 샤워장뿐인것 같은데도 은혜말로는 2층인가 3층짜리 커다란 건물이라니까 도저히 평범한 시설물같지 않았다.


평범한 시설물을 떠나서 은혜 말을 조합해보면 시골의 숲속에 있고(논을 보며 몇시간이나 달렸댔으니) 도배도 안된 시멘트로된 넓은 집(2~3층). 창문은 없고 옥상도 없음. 1층에 넓은 샤워시설이 있음. 끝. 이게 뭐지?


사람사는 집은 아니고. 공사장도 아니고(샤워시설). 그렇다고 뭐 애를 해부할 의료시설같은것도 없이 그냥 텅 넓었다는데...


혹시나 몰라 몇번을 물어도 샤워시설 외엔 없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그냥 텅 비었다고. 거짓말하는 눈치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래서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울어버렸다.


어딜 만졌거나 옷을 벗겼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 그냥 아이들끼리 샤워장에서 씻고 나왔다고.


그래서 그 아이들끼리 무언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이야기는 안했단다. 대화를 한 것도 한번 뿐이라는데, 그 대화 내용이 좀...


은혜가 봉고차에서 옆의 남자애에게 이름을 물었단다. 자기 이름은 김은혜인데 네 이름은 뭐냐고. 그러자 그 남자애가 자기 이름은 '아가(애기?)' 라고 했다.


아가라면 엄마나 아빠가 은혜를 아가라고 불렀다. 이 집에서 은혜야, 하고 부르는건 나뿐. 은혜의 이름을 언제 처음 불렀는지를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저학년때였다. 엄마 아빠와 은혜, 그리고 나까지 영화를 보러 갔을때.


내가 그때 처음으로 근데 아가 이름은 뭐냐고 물었던것 같다. 그땐 서울살아서영화관이가까웠다. 그때가 아마 나 3, 4학년쯤이었는데 은혜는 아마 세살쯤? 겨울에 왔으니까. 그러니까 2006년쯤이었던 것 같다. 여름이었고.


내가 그제야 은혜 이름을 물었다. 나도 엄마 아빠처럼 아가라고만 불렀고 애완동물같은 존재로 은혜를 인식했을 때여서... 고양이보고 야옹아라고 부르고 강아지보고 멍멍아라고 부르듯이 아기니까 아가라고 부르는줄 알았다.


엄마는 주위를 쓱 훑어보더니 은혜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은혜라는 이름을 알게 된게 생각난다. 아마 그때 내가 묻지 않았으면 평생 아가라고 불렸겠지 은혜도. 이런 정황상 아마 그 차에 있는 아이들은 다 은혜같은 애들 아니었을까.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은헤는 울먹이며 입을 닫았다. 아니, 닫았다가, 조금 지나서 은혜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가 이 이야기를 언니에게 해서 언니가 불행해질거라고.


엄마가 그랬다고 한다. 만약 이 이야기를 언니에게 하면 언니가 불행해진다고. 무슨 차를 타고 가야 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


은헤가 말하는 차는 아마 은혜가 탔던 것 같은 봉고차같고 하얗다고 했다. 하안 바탕에 여러색깔 그림이 있다고. 이차가 뭔지는 설명을 못하더라. 나도 뭔지 모르겠어. 나도 납치한단건 아닌것 같은데...


우는 은혜를 달래고 주스를 쥐어주고 다시 앞에 앉혔다. 은혜는 누가 봐도 패닉에 빠져 있어서 단걸 먹여가면서 달랬지만 별 효과는 없었고.


은혜가 하도 떨어서 그런지 주스는 은혜의 옷에 다 쏟아졌다. 그래서 내가 은혜를 씻기려고 옷을 벗기고 화장실로 잡아 끌자 은혜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달래도 안듣고 해서 그냥 내 옷 다 젖든 말든 일단 끈적끈적해지면 안되니까 씻겼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가장 수상한 일은 그때 봤어.


은혜 머리를 감길때 은혜가 절대 안된다고 몸부림을 쳤다. 나도 슬슬 짜증이 났지. 내가 소리치며 화를 내니까 가만히 있더라. 은혜를 숙이게 해놓고 머리를 감기려는 순가 봤다.


목 뒷부분, 뒷통수 부분이 조금 이상했다. 그부분만 머리카락이 없어보였다.


그부분을 헤집으려니까 은혜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면 언니 큰일난다고. 놓으라고. 엄마가 언니도 큰일난댔다고.


난 짜증도 나고 궁금도 했다. 그리고 평소 날 애지중지하는 부모님이 날 어떻게 할건가하는 배짱도 있었어. 지금은 없지만.


은혜의 목 뒤, 뒷통수쪽에는 작게 엄지손가락 한마디만큼 머리카락이 밀려있었고, 매직같이 숫자가 쓰여 있었다.


벅벅 닦아 지우려고 해도 안지워졌어. 아세톤으로 문질렀는데도. 자세히 보니 매직이 아니라 문신? 같았다. 살을 파내지 않는 이상 안지워질 것 같아 그대로 두고 은혜를 추스린 후 잠들었다. 그게 12월 7일 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은혜는 내 옆에서 눈을 부은 눈을 감고 잠든 모습이었다.


우리집 샴푸 그 한약냄새나는샴푸 쓰거든. 그 냄새가 긴 머리채에서 은은하게 나고 울어서 부은 눈으로 잠든 모습.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고 일어나니 은혜가 없었다.


겨울방학이어서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후 2시쯤? 왠일로 엄마가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뭔가 바쁘게 하는 모습을 보니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빨래 돌아가는 소리도 들렸고. 대청소를 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빨고 있는 옷은 모조리 은혜 옷이었다.


내가 뭐냐고 소리치니 엄마가 말했다. 네 어릴적 옷 예뻐서 간직했었는데 이제 깨끗이 빨아서 남 준다는 것이다. 무슨 개소린지 인식이 안되서 멍을 때리다 무슨소리냐고 은혜옷이잖느냐고 악을 썼다.

엄마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은혜가 뭔데? 네 친구?"


그리고 지금까지 그상태다. 나에대한 집착이나 의심이 짙어졌을 뿐, 은혜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은 계속되고 있다. 내 10년이 통째로 거짓말이 된 건지 아니면 엄마 아빠가 거짓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내가 엄마에게 하도 은혜 얘기를 하니까 엄마가 날 데리고 동사무소에 갔다. 호적등본을 봤다. 은혜는 없었다. 심지어 전에 올라왔었던 기록조차 없다. 우리 가족은 쭉 셋이었고 지금도 셋이라는거다.


그래도 내가 지랄발광을 하니까 경찰서에 갔다. 엄마는 가만히 있고 나는 실종신고를 한다고 경찰에게 뭐라 설명했다. 내가 하도 지랄을 하니 경찰도 은혜의 신원 조회를 해줬다. 하지만 은혜는 없었다.


신원조회를 했는데, 은혜가 아예 없었다. 은혜는 서류상으로도 없고 실제로도 없다. 그럼 은혜는 뭐지?


엄마 아빠의 이상한 행동은 뭐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은혜가 있었다는 증거는 그거다. 은혜가 나에게 남긴 흔적.


은혜가 내 조각칼을 들고 설치다 나에게 상처를 입혔는데, 그 흉터 희미하지만 아직 있다. 아마 평생 없어지지 않겠지.


그래, 은혜 문제는 이제 포기한다고 치자. 은혜를, 구해낼 수 없다고 치자. 그럼 나는? 은혜를 걸고 넘어져 봤자 나만 미친년이고 정신병자다.


게다가 난 미성년자다. 앞으로도 2년은 더 이집에서 살아야하고 나도 대학 가고싶으니 어쩌면 더 오래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내가 정신병원에 감금되지 않을 확률은 몇프로나 되지?


출처 스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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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돋는 사실은 은혜 이름을 처음 알았던 당시 글쓴이는 가필드라는 영화를 봤는데 가필드2 개봉 당시가 2006년 7월말, 그리고 비슷한 시기 스승의 은혜라는 영화가 8월 3일에 개봉했음.


즉, 은혜라는 이름은 엄마가 주변을 둘러보다 대충 이름 비슷한걸 찾아다는 추측.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중간에 '마녀'처럼 무슨 인간병기 만드는 이야기인가 했는데 장기밀매가 맞는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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