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이다 : 1. 자각의 순간 그리고 첫사랑


헤테로 섹슈얼 이성애자가 아닌 이상

다양한 퀴어들은 살아가면서

문득, 혹은 갑자기, 혹은

천천히 스며들 듯이

어떤 고민과 생각에 마주하게 된다.

‘내가 게이일까?’

‘나 레즈인가?’ 등등

나는 게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것도 나에게만 맞출 수 있다.

나는 어느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천천히

그런 생각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이름도 마음도

이쁜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았지만

결국 친구로서의 감정이 끝이었고

여차저차 헤어지고나서는 단 한 번도

이성을 만나본 적이 없다(교제).

하지만 매번 매년 새로운 학년 새 학기마다

좋아하게 된 친구를 마음에 품었다.

모두 남자였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특별한 사랑을 하는구나.’

굉장히 긍정적으로 나를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정말 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

소수자로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갈 생각보다는

그저 특별하다는 생각만 자리잡았다.


나는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남자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모두 남자다.

그래서 난 게이다.

이렇게 정의한 게 전부다.


생각보다 퀴어의 세계는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정정체성과 지향성으로 나눠지지만

나는 비교적 단순하고, 소수자 중에서도

흔한 경우에 속한다.


첫사랑도 그 무렵이었다. 중학교 2학년

92년생이었던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한 학년에 500명 이상에 달했던

거대한 학교였고 그래서인지

진짜 많은 유형의 친구들을 겪었다.

실제로 끝까지 친하게 지낸 친구는

몇 없고..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누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그때는 다들 처음보고 친해지려하고 무리를 만들고 그런 때였고, 신기하게도 여자아이들이 나에게 관심을 많이 줬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당시 여자아이들이 하트모양 쪽지를 주면서 혼자 보라고. 내용은 사귀자는 것이었고 나는 결국 거절하고. 또 연습장에 러브액추얼리처럼 고백문구 적어 넘기며 보여주기도 하고.. 거절하면 장난이었다고 넘겼던 그 친구..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집전화로 전화해서 사귀자고 하던 여자아이. 난 너의 얼굴도 모르는걸...정말 그때 5~6명으로부터 귀여운 구애를 받았지만 나는 정말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튼 다시 첫사랑 이야기로 들어가면..

중학교 2학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 친구 A는 기억에 많이 남는다. 파충류상(?)이었던 그는 취미로 랩을 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아 나에게도 많은 시디를 빌려주었다. <지옥소녀>도 그 친구 덕에 알게 되어 많이 보았지.

각설하고. A는 유독 나에게 친절했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소풍갈 때도 버스 옆자리였고 같이 다녔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수학여행 때에도 마찬가지로 옆자리, 같은 조, 같은 방. 그리고 같이 잤다. 나는 보통 어디 누군가와 놀러가면 일찍 잠자러 가는 편이지만 눈감고 오래 누워있다. 쉽게 잠들지 못해서 그냥 자는 듯이 누워만 있지만 자고 있지는 않는다. 그 순간에 A가 내 옆으로 와서 누웠고, 나를 더듬었다. 나는 안 잤지만 자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도 그게 좋았나보다. 내 가슴을 만지고 옷을 헤치고 바지와 속옷에 손을 넣고. 잠깐이었지만 내 손을 A의 것으로 가져다댔다. 그리고 내가 A의 셔츠 단추를 푸는 모양으로 A가 했다가 자신을 포옹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잠시 있다가 A는 떠났다.

그런데 학교로 돌아간 후 소문이 퍼졌다.

내가 A를 겁탈하려했다고. 잠자면서 내가 A의 셔츠 단추를 풀었고 껴안았다고.. 순식간에 나는 친구를 겁탈한 게이소년으로 알려졌다. 그 상황에서 나는 맞다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A가 나한테 그랬다고 나는 먼저 자서 모른다고 말할 뿐이었지만 다행히 소문은 우리 반에서 정리가 되었다. 다만 나와 A는 사이가 급격히 멀어졌다. 학교에서도 자리 짝궁자리였는데 불편했다. 내가 아무리 나 스스로를 게이라고 깨달아가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아웃팅을 당하는 게 너무 억울했고 A에게 화가 나면서도 왠지 모르게 나를 부정한다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수업시간이 시작되자마자 A는 내 손을 잡고 책상 밑으로 내렸다. 손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나도 잡고 있고 싶었다. A가 미웠지만 좋아하니까.. 다른 친구들은 보지 못하는 각도와 책상 위치여서 우리 둘만 알았다. 수업시간 45분동안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진짜 내 심장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고 그 날 수업시간에 무슨 내용을 배웠는지 전혀 머리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이 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그런데 또 충격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A가 손을 놓으며

“게이맞네.” 한마디 툭 내던지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 사건은 A가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A랑 사이가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말 멀어졌고 남처럼 지내다가 3학년이 되었다.


첫사랑은 A였고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고 미운 정으로 오래 남아있었다.

우연치않게 A는 성인이 되어서야 연락이 닿았는데

이 부분은 다음에 이야기할게.


당시 A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눈에 안보이면 금방 잊혀지고 새로운 남자 아이가 눈에 들어와서 또 다른 마음을 갖게 되어버렸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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