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오늘의 기도지향

† 찬미 예수님

 

교황님의 기도 지향•삼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권리 인정

​그리스도교 공동체, 특히 박해받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계심을 느끼며 그들의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019년 3월 1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자신의 우정을 바르게 키워 나간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냐는 물음에,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6,5-17

5 부드러운 말씨는 친구들을 많게 하고

 

우아한 말은 정중한 인사를 많이 받게 한다.

6 너와 화목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많이 만들되

조언자는 천 명 가운데 하나만을 골라라.

7 친구를 얻으려거든 시험해 보고 얻되 서둘러 그를 신뢰하지 마라.

8 제 좋을 때에만 친구가 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

9 원수로 변하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너의 수치스러운 말다툼을 폭로하리라.

10 식탁의 친교나 즐기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네 고난의 날에 함께 있어 주지 않으리라.

11 그는 네가 잘될 때에는

너 자신인 양 행세하고 네 종들에게 마구 명령해 대리라.

12 그러나 네가 비천하게 되면 그는 너를 배반하고 네 앞에서 자취를 감추리라.

13 원수들을 멀리하고 친구들도 조심하여라.

14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15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16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

17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자신의 우정을 바르게 키워 나가니

이웃도 그의 본을 따라 그대로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

○ 당신 규범을 기꺼이 지키며, 당신 말씀을 잊지 않으리이다. ◎

○ 제 눈을 열어 주소서. 당신의 놀라운 가르침 바라보리이다. ◎

○ 당신 규정의 길을 깨우쳐 주소서. 당신의 기적을 묵상하오리다. ◎

○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

○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세상 살기 참 어렵다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으로 의지할 친구가 많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친하다고 여겼지만 속임을 당하거나, 마음을 주었지만 상처받은 경험들로 말미암아 어떤 이는 마음을 꽁꽁 닫은 채 혼자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늘 의지할 대상을 필요로 하는 존재,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는 이런 우리에게 반드시 성실한 친구를 사귀라고 권합니다.

성실한 친구는 그 어떤 값으로도 따질 수 없는 든든한 피난처이자 보물입니다. 성실한 친구는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명약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이런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회서는 오직 주님을 경외하는 이, 곧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이만이 그런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성실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부의 연을 통하여 가장 성실한 친구를 하나씩 보내 주시는데, 하느님께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 선택해 주신 이들이 바로 부부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삶으로써 서로에게 성실한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서로를 든든한 피난처, 보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모든 이에게는 진정 성실한 친구 한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친구”(요한 15,14)라 부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불꽃같은 제주 여성 독립운동가 ‘강평국’

일본서 도쿄조선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 등 독립운동 투신… 여성 계몽·교육에도 앞장

 

    

 

 

 

 

 

 

 

 

 

 

 

 

 

 

 

 

 

 

 

 

 

 

 

 

▲ 강평국과 최정숙, 고수선은 제주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다. 하지만 강평국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후대를 남기지 못해 관련 자료가 제대로 없어

독립유공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타자 연습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평국(오른쪽)과 최정숙.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제주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여성 운동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정숙(베아트리체, 1902~1977)과 고수선(엘리사벳, 1898~1989), 강평국(아가타, 1900~1933)이다. 광복 후 세상을 떠난 최정숙과 고수선은 공로를 인정받아 일찍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지만, 미혼으로 이른 나이에 선종한 강평국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강평국도 다른 독립운동가만큼 뜨거운 삶을 살았다. 누군가는 그의 일생을 ‘불꽃’ 같다고 했다. 독립을 위해 몸 던졌던 강평국의 삶을 사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간 경술년에는 온 동네가 초상집 같았다. 사람들은 일본에 나라가 넘어갔다며 ‘망년(亡年)’이라고 했다. 일본의 간섭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나의 친구들, 친구들의 부모님, 옆집 어르신들은 나라가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야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나라를 되찾는 일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이름을 ‘년국(年國)’에서 ‘평국(平國)’으로 바꿨다.

 

서울에서 유학하던 시절 내 인생 가장 강렬한 경험이 찾아왔다. 나는 제주에서 같이 학교를 졸업한 정숙이, 수선이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우린 비밀조직인 ‘학생결사단’에 가입했고, 졸업을 앞둔 1919년 3월 1일 거대한 만세 물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만세를 외치며 서울역 앞까지 갔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총격이 시작돼 걸음을 돌려 세브란스 병원으로 겨우 몸을 피했다. 정숙이는 종로로 가다 사람들에게 휩쓸려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나는 경찰의 체포를 피한 덕분에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일본 국가를 목청 높여 부르며 졸업장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 길로 다시 고향 제주로 내려왔다.

 

고향 사람들은 나를 ‘여선생’이라고 불렀다. 제주에 여자 교사가 부임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숙이도 옥살이를 마치고 제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일제의 탄압으로 사라진 모교를 대신해 제주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여수원’을 설립했다. 학생들은 날카롭고 불같은 선생이라며 나를 무서워하기도 했다.

 

교육자로 살면서 독립운동을 멈출 순 없었다. 일제 통치를 반대하는 청년단체 ‘반역자구락부’를 설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참여했다. 또 정숙이와 함께 ‘제주여자청년회’를 만들어 여성이 권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더 다양한 지식을 얻으려면 일본으로 가야 했다. 1926년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제주 여성 중에선 해외로 유학을 떠난 사람은 내가 첫 번째였다. 쉽진 않았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일본에서도 항일운동은 계속했다. 조선여자청년동맹과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염원했다.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건강이었다. 일본에 온 뒤 늑막염이 심해졌다. 공부를 이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제주로 돌아왔다. 귀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33년 1월, 광주에서의 비밀결사 활동이 발각돼 일본 경찰에 붙잡혀 광주로 끌려갔다. 조사를 마치고 다시 제주로 왔을 때, 나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10일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다.

 

48년이 지난 후 동지들이 세워준 추도비에는 이런 비문만 남아 있다.

 

‘슬프다. 시대의 선구자요 여성의 등불인 그는 삼일운동 때 피 흘려 청춘을 불살랐고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품은 이상 이루지 못한 채 애달픈 생애 담고 여기 길이 자노니. 지나는 손이여 비 앞에 발 멈춰 전사의 고혼에 명복을 빌지어다. 여기 뜻있는 이 모여 정성 들여 하나의 비를 세우노니. 구천에 사무친 애로운 영이여 고이 굽어살피소서.’

 

백슬기 기자 jdarc@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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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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