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질경찰>: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내면의 성찰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신철규, '유빙' 부분,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서, 문학동네, 2017)


사람의 삶은 오직 앞으로만 흐른다. 그 말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과거를 어찌할 수 없다면 오늘도 그래야만 할까. 실화 기반의 작품이 아니고 굳이 연대를 특정할 필요가 없는 현대극인 영화 <악질경찰>(2019)이 몇 년 전을 특정한 채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영화가 지난날을 소환해야 할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영화 <악질경찰>의 시작은 2015년이다. 영화의 첫 장면, 어둑한 밤 한 남자는 또 다른 남자의 지시에 따라 은행 ATM 속 현금을 빼낸다. 이 사람에게 도둑질을 시킨 건 다름 아닌 형사 '필호'(이선균)다. "나 경찰 무서워서 경찰 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강력계 형사 먹고 살기 어려워서"라며 살기 위해 스스로 부패하기를 선택한 사람. 직업만 '경찰'일뿐 범죄와 비리에 거리낌 없으며 또다시 목돈이 필요했던 그는 이번에는 경찰의 증거품 압수창고에 몰래 들어가기로 하고 앞서 은행 ATM를 털었던 '기철'(정가람)에게 일을 맡긴다.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좋았겠으나... 창고에서 의문의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필호'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에 연루된다. 창고에는 거대 재벌의 비자금 의혹에 관해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는 물증이 있었다. 검찰은 물론 바로 그 기업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는 실장 '태주'(박해준)도 이를 찾아 나서고, '필호'는 폭발사고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악질경찰>의 초반부는 상술한 사고의 배경만큼이나 '필호'와 또 한 명의 인물, '미나'(전소니)의 접점을 만드는 데에 많은 힘을 쏟는다. '미나'는 '기철'과 어떤 관계에 있고 '필호'와 '미나'는 처음에는 그저 우연히 마주치지만 '미나' 역시 의도하지 않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창고 폭발사고의 비밀을 밝혀줄 단서를 손에 넣게 된다. 이 갑작스러운 오늘들, '필호'의 오늘과 '미나'의 오늘은 단지 수많은 우연들 중 하나일까.




<우는 남자>나 <아저씨>와 같은 감독의 전작을 토대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달리, <악질경찰>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범죄 드라마로서 (물론 영화에 액션 신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사건을 마주하는 인물들, 주로 '필호'와 '미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를 최대한 섬세하게 다뤄내려 노력한다. 영화를 이끄는 캐릭터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거치며 반드시 다른 인물이 되어 있어야 하며, 그건 신변의 변화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감정과 태도에 있어서의 성장을 동반한다.


영화의 중반부터 직접적으로 밝혀지는 것은, 앞선 창고 폭발사고가 단순히 사고가 아닌 것을 넘어, '필호'와 '미나' 모두의 과거에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사건이 깊이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호'의 경우 '미나'보다는 상대적으로 그 접점이 약하기는 한데, <악질경찰>이 주인공 '필호'를 묘사하는 방식은 그가 마치 남의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님을 깨달아가는 모습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데 있다.




또한 '미나'라는 캐릭터는 영화에서 비행 청소년이자 약간은 삐뚤어진 소녀로 등장하는데, '미나'가 왜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바로 그런 캐릭터가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리고 그가 후반에 이르러 '어른'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를 돌이켜본다면, <악질경찰>에서 세월호가 등장하고 다뤄지는 방식은 단순히 그것을 상업 영화의 한 소재로만 그치게 하지 않는다.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소재를 영화에서 다루는 일은 영화의 규모나 장르 같은 것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된 맥락과 과정에 의해서만 평가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모든 것은 현상 자체보다 과정과 맥락에 있다.


앞서 글의 도입에서 물었다. 과거를 어찌할 수 없다면 오늘도 그래야만 할까.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내일을 향해 달려야만 할까. <악질경찰> 속 어떤 인물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살아낼 수 있다. 생일이 되면 죽은 친구의 파티를 열고, 그가 남긴 소지품을 어루만지며 추억한다. 반면 누군가는, 사람의 삶을 물질로 환산하려 하며 돈이나 소모품처럼 대한다.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미나'의 말은 그래서 아이들의 삶을 헤아리지 않았던 무심한 어른들에게로 가 정확히 꽂힌다.




'파멸도 죽음도 작은 실수가 만든다

책 한 줄 안 읽고 죄의식도 없이

살아 있음의 송구함도 없이

정신 못 차리고 가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

진실이 무어며 망각이 무어냐'

(신현림, '다리미는 키스 중' 부분, 『반지하 앨리스』에서, 민음사, 2017)


어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우리의 오늘이 내일만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를 단지 기억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볼 줄 알고,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말,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나씩 해보고 내일은 오늘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내 삶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 때, 무엇보다 타인의 삶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알 때, 그때에만 가능하다. <악질경찰>은 '악질경찰'이었던 인물이,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지 모를 절대악을 마주하고 난 뒤, 그리고 아무도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났던 사람이 실은 나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인물이, 변화를 결심하고 어떤 행동에 나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단지 내면의 성장만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볼 줄 아는 인물의 영화. 소재나 사건을 그저 소재나 사건으로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영화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영화 밖, 극장 밖의 세상과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 영화. 아주 섬세하고 탁월한 연출과 각본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악질경찰>의 시도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한편,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오래 생각해볼 작정이다.


<악질경찰>(2019), 이정범 감독

2019년 3월 20일 개봉, 127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이선균, 전소니, 박해준, 박병은, 송영창, 임형국, 김민재, 권한솔, 박소은, 남문철, 정가람 등.


제작: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배급: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 7/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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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 instagram.com/cosmos__j brunch.co.kr/@cosmo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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