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균형, 근력과 부상

신체의 균형, 근력과 부상 심폐와 장기를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상은 골격에 집중된다. 여기서 말하는 골격은 관절을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운동과 치료법이 있다. 재활도 의학의 한 분야로 스포츠의학의 한 축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소메트릭이 재활치료법의 주류가 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등척성 운동, 그러니까 근육의 길이가 고정된 운동, 쉽게 말해 버티기는 신체의 근력과 관절, 협응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초보자나 부상자, 노약자에게 이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동, 치료, 방법은 없다. 아마도 이것이 강조되지 않은 이유는 그 효과에 비례해 재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버티기를 하라는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하겠는가. 그런 다른 모든 일들이 그럴듯이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을 튼튼하게 하는 것들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불교적 수양에서는 대근기 중근기 소근기를 나눈다. 이것은 현대말로 인내심과 참을성이 얼마나 강하냐를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자존심과 똥고집이 쓰일 수 있다. 잘 보면 자존심이 센 사람이 인내심도 강하고 참을성도 높고 똥고집도 있다. 그것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기란 어렵다. 그 사람의 목적과 행위가 그것을 결정할 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신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끝없는 향상심이나 도전정신, 불굴의 의지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내심도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는 악화와 불균형으로 치닫는다. 이것은 인정과 부정의 심리와 깊게 관계되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나 목표에 집착한다 치자.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노력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기본 실력이나 한계를 아주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늘려나감을 의미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계단식이 아니라 선형으로 그것도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이차방정식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말하는게 아니다. 3차원 도면의 나선형 회전을 말하는 것이다. 굳이 정신과 신체의 성장을 그래프에 비유하자면 그렇다. 2차원으로 보면 상승과 하강의 사이클이 그려 지겠지만, 실제의 3차원에서는 상승과 하강이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을 그린다. 이런 관점의 확장이 없으면 신체가 균형을 이루고 성장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굳이 근장력과 지구력과 유연성의 삼요소로 성장의 변수를 구분했지만, 이것들은 결국 신체가 실제에 반응하기 위한 대응을 요약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해하는 지성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심리다. 가뜩이나 신체는 두뇌라는 중추신경계의 지배를 받는다. 두뇌라는 것 자체가 신경의 집합이며, 인간은 신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것을 정신이라 부르든 영혼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신체 전반이 지성이나 이성과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하나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신체의 기능적 움직임에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지능,그러니까 사고와 편견,과 본능, 감각과 감정,이 그러한 통찰과 이해를 후천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다. 초원의 사자는 태어나기를 강하게 태어났다. 그냥 잘 먹고 성장하면 따로 노력을 안해도 강한 이빨과 다리로 다른 동물을 사냥하고 다닌다. 인간도 물론 타고난게 있다. 달리기와 던지기의 능력이다. 인간만큼 오래달릴 수 있는 동물은 말밖에 없고, 인간만큼 정교하게 던질 수 있는 동물은 없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신체능력은 전 지구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고,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새로운 개념이나 이해를 적용한 적이 없다. 다 자르고 고대의 원시인과 비교하면, 현대인은 심각하게 게으르고 쓸데없이 집착한다. 오직 건강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달리기만 하고 하루종일 물건을 만들고 놀면 그게 최상이다. 그게 원시인의 일상이다. 그러면 그게 제일 건강한거다. 물론 현대인은 필요이상으로 경쟁하고 필요이상으로 복잡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만큼 일해야 되고 신체도 더 건강해야한다. 정신적 영역에서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대단히 높다. 따라서 신체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정신을 포함한 수련을 해야한다. 정신수양과 단련을 할 수 없는 운동은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안된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도움이 된다는 말은 인간사회의 과열경쟁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이 받쳐준다는 전제가 있을 때의 얘기다. 운동을 통한 경쟁이 스트레스 해소나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중독으로 본질을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운동을 해서 자동으로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노력으로 정신력을 강화하고 다시 운동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금메달에 집착하고 순위와 성과, 경쟁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의 의미는 있지만, 정신이 발달하고 신체가 균형을 이루는 것과 상관이 없다. 내가 수영, 육상, 등산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자연과 조응하는, 그러니까 자신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가장 적합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지능과 본능, 이성과 정신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충분하니까.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반드시 정신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은 두뇌와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신질환을 겪고 신체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신과 신체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두뇌로 통합되고 심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마음의 병을 명확히 진단하는 방법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신체의 균형을 통해 정신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예나 종교, 예술의 영역이 여전히 중요하고 정신, 영혼, 심리와 직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체가 부상을 입는 것도 정신과 신체의 불균형, 근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감정조절이 안되면 무리한 동작을 하고 무리한 동작과 자세는 관절의 부하를 극대화한다. 그것이 정적일 경우는 근력으로 어느정도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격렬한 동작에서는 꼼짝없이 근력이 약한 부위의 관절에 부담이 집중된다. 인간이 부상을 입는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신체능력의 한계치는 가장 강한 부위기 아니라 가장 약한 부위, 가장 강한 근력이 아니라 가장 약한 근력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착각하는게 문제다. 예를 들어 상체의 근력이 아니라 손가락의 근력, 팔꿈치의 근력, 어깨의 근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으며 하체의 근력이 아니라 발가락의 근력, 무릎의 근력, 골반의 근력이 옳다. 허리의 근력이 아니라 장요근의 근력, 복직근의 근력, 기립근의 근력이 기준이다. 그 중에 가장 약한 근력이 자신이 낼 수 있는 근력의 최대치이며 부상을 입지 않는 한계치인 것이다. 가장 약한 부위보다 높은 근력을 사용하는 것은 부상을 입는 지름길이며 신체를 망가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렇게 신체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면 건강해지는 것도 부상을 입지 않는 것도 더 강해지는 것도 간단하다. 가장 약한 부위의 근력을 강화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신체의 균형을 맞추며 전체가 강해진다. 지극히 당연한 원리다.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본질이 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원리.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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