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어의 성립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어 단어 대부분(이라고 해야 맞을 성 싶다)은 사실 일본 학자들이 한땀 한땀 노력해서 만들어낸 서양 번역어들이다.

위 문장을 봅시다. 한자어라는 단어야 그렇다 치고, “단어”나 “대부분(참조 1)”, “노력”, “서양” 등의 단어가 아마도 일본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제 아시겠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어는 정말 일본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어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쉽게 쉽게 배우는 것이다. (물론 일본어를 “잘” 하는 건 쉽지 않지만 이는 여느 외국어나 마찬가지겠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번역(이 말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다, 가령 실록에 나오는 단어다)”의 난이도는 에도 막부의 난학자들에 비해 상당히 수월했다. 다만 그들이 느꼈던 고민을 우리는 좀 다르게 느낄 뿐이다. 지금 이 말은 직역이 나은가, 의역이 나은가를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당시 일본 학자들은 무슨 고민을 했단 말인가? 바로 금요일이면 역시 독서지, 하면서 읽은 이 책을 보도록 하자. “개인”의 개념이 없었던 사회에서 “社會”라는 단어를 만들기 위해 한자를 이것 저것 따왔고, 번역해야 할 선진문명의 단어인 individual을 번역하기 위해 일본 고유어가 아닌 한자 個人을 가져왔다. 戀愛라는 단어는 어째서 연과 애의 조합으로 탄생했을까?


戀가 갖는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 愛를 붙였건만, 서양어의 love와 똑같은 개념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개념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한자를 사용한) 번역된 단어의 힘은 더 강력해진다. 그래서 결국은 모두 다 “연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특이한 번역어 사례는 “である”가 있다. 곧바로 나쯔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가 생각나는데, “이다”면 그냥 “네코다” 하면 되지 어째서 “で”가 붙었단 말인가? 난학자들 때문이었다. 난학자들은 네덜란드어 문장인 아래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Dat zijn eerlijke lieden /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다 / 夫レハ正シキ人々デアル (참조 2)


デ를 자그마하게 표기했던 것이다. 그래야 일본어 어감에 어울려서였다는 의미인데, 이게 도리어 현대 일본어에서는 “-이다”의 뜻으로 널리 쓰였다는 점이 아이러니, 과연 언어는 생물이다. 우리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일본어와 공통된 변화가 하나 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녀이다.


예전에는 그와 그녀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그”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그와 그녀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이는 순전히 서양어 번역에서 시작됐었다. 우리말은 아마 일본어의 영향이 지대할 때, 일본어 번역의 그/녀를 그대로 들여와서일 것이다. 애초에 우리말이나 일본어나 전통적으로는 주어를 잘 쓰지 않는 구조였다.


잠깐, 주어를 생략해도 되는 구조라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참조 3), 위에 일본은 “개인”의 개념이 없는 곳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언어에서조차 주어는 사라졌고, 겸양의 표현과 복잡한 존대법, 그리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지(참조 4)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어를 죽였다고 본다.


아니, 죽였다고 “생각된다”고 겸손하게 “되다” 동사(혹은 “보여진다”와 같은 피동형?)를 사용했어야 뭔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혹시 말이다. 서양어들이 대거 우리 언어체계에 편입되면서 “개인” 개념도 좀 충실해지는 사회로 변화할 단초가 생겨나지 않을까?


애초에 이 단어가 어째서 이 단어인지, 번역을 왜 그렇게 했는지 고민하다보니 결국은 나를 둘러싼 문화에 대한 고민으로 범위가 커진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여운이 컸다는 의미인데, 안타깝게도 이 책을 현재 새책으로 구입할 수 없다. 중고 서점을 뒤지셔야 하며, 이 또한 우리 책 문화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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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대부분”이라는 단어는 그저 多를 사용할 따름이다. 찾아보면 일본 작가 쿠니키 다돗포(国木田独歩)의 別天地라는 글(1903)에 있다고 한다.


https://kotobank.jp/word/大部分-558279#E7.B2.BE.E9.81.B8.E7.89.88.20.E6.97.A5.E6.9C.AC.E5.9B.BD.E8.AA.9E.E5.A4.A7.E8.BE.9E.E5.85.B8


2.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공문서는 대체로 가타카나를 사용했다. 가타카나는 남성적, 공공, 학문의 성격이 있다는 느낌적 느낌 때문이었는데, 현재 그 위치를 히라가나가 가져갔음은 일본 현대사에서 상징성이 크다.


3. 포르투갈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의 주어 생략은 확실히, “주어를 생략해도” 동사를 통해 주어를 파악할 수 있는 언어라서 그렇다. 그러나 같은 서구권이라 하더라도, 영어/불어/독어의 경우 또한 주어 생략이 가능하지만 어지간하면 생략하지 않는 구조인데, 이와 대비된다.


4. 현대 우리말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말할 때마다 나오는 “-인 것 같아요”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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