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걷는 독서 4.25

아무리 위대한 일도

자연의 리듬을 따르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시운時運을 따라야 한다


- 박노해 ‘개구리’

Sudan, 2008. 사진 박노해



한 사흘 봄볕이 좋아

눈 녹은 산밭이 고슬고슬하다

먼 길 떠나기 전에 파종을 마치자고

애기쑥 냉이꽃 토끼풀 싹이 오르는 밭을 갈다가

멈칫, 삽날을 비킨다

땅 속에 잔뜩 움츠린 개구리 한 마리

한순간에 몸이 동강 날 뻔 했는데도

생사를 초탈한 잠선에 빠져 태연하시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개구리를

밭둑 촉촉한 그늘에 놓아주었더니

어라, 잠에 취한 아기 마냥 엉금엉금

겨울잠을 자던 그 자리로 돌아온다

반쯤 뜬 눈을 껌벅껌벅 하더니

긴 뒷발을 번갈아 내밀며 흙을 헤집고서

구멍 속으로 슬금슬금 들어가

스르르 다시 잠에 빠져버린다


이 사람아, 잠이 먼저고 꿈이 먼저지

뭘 그리 조급하게 부지런 떠느냐고

난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가 아니라고

아무리 위대한 일도 자연의 리듬을 따르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시운時運을 따라야지

세상이 그대 사정에 맞출 순 없지 않냐고,

새근새근 다 못 잔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그래 맞다

미래를 대비한다고 열심히 달리고 일하는 건

삶의 향연이어야 할 노동을 고역으로 전락시키는 것

절기를 앞질러 땅을 파고 서둘러 씨 뿌리는 건

삶에 나태한 자의 조급함밖에 더 되겠냐고

나도 삽을 세워놓고 따스한 봄볕에 낮잠이 들었다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개구리’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https://www.nanum.com/site/860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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