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위대한 일도
자연의 리듬을 따르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시운時運을 따라야 한다
- 박노해 ‘개구리’
Sudan, 2008. 사진 박노해
한 사흘 봄볕이 좋아
눈 녹은 산밭이 고슬고슬하다
먼 길 떠나기 전에 파종을 마치자고
애기쑥 냉이꽃 토끼풀 싹이 오르는 밭을 갈다가
멈칫, 삽날을 비킨다
땅 속에 잔뜩 움츠린 개구리 한 마리
한순간에 몸이 동강 날 뻔 했는데도
생사를 초탈한 잠선에 빠져 태연하시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개구리를
밭둑 촉촉한 그늘에 놓아주었더니
어라, 잠에 취한 아기 마냥 엉금엉금
겨울잠을 자던 그 자리로 돌아온다
반쯤 뜬 눈을 껌벅껌벅 하더니
긴 뒷발을 번갈아 내밀며 흙을 헤집고서
구멍 속으로 슬금슬금 들어가
스르르 다시 잠에 빠져버린다
이 사람아, 잠이 먼저고 꿈이 먼저지
뭘 그리 조급하게 부지런 떠느냐고
난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가 아니라고
아무리 위대한 일도 자연의 리듬을 따르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시운時運을 따라야지
세상이 그대 사정에 맞출 순 없지 않냐고,
새근새근 다 못 잔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그래 맞다
미래를 대비한다고 열심히 달리고 일하는 건
삶의 향연이어야 할 노동을 고역으로 전락시키는 것
절기를 앞질러 땅을 파고 서둘러 씨 뿌리는 건
삶에 나태한 자의 조급함밖에 더 되겠냐고
나도 삽을 세워놓고 따스한 봄볕에 낮잠이 들었다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개구리’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