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걷는 독서 6.2

‘나랑 함께 놀래?’

내 인생의 모든 시가 된

어린 동무의 그 말 한 마디


- 박노해 ‘나랑 함께 놀래?’

Peru, 2010. 사진 박노해



어린 날 나에게 가장 무서운 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아니었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거였네


세 살 많은 영기가 우리 반에 편입한 뒤

동무들을 몰고 다니며 부하로 따르지 않는

나 하고는 누구도 함께 놀지 못하게 한

그 지옥에서 보낸 일 년이었네


동백꽃 핀 등굣길을 혼자 걸으며 울었고

오동잎 날리는 귀갓길을 혼자 걸으며 울었고

텅 빈 집 마루 모퉁이에 홀로 앉아 울었었네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기도를 해봐도

동무가 그리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책갈피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곤 했었네


5학년이 되던 해 보슬비는 내리는데

자운영꽃이 붉게 핀 논길을 고개 숙여 걸어갈 때

나랑 함께 놀래?

뒤에서 수줍게 웃고 있던 아이

전학 온 민지의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의 젖은 길이 다 환한 꽃길이었네


돌아보니 멀고 험한 길을 걸어온 나에게

지옥은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홀로 걷는 길이었고

천국은 좋은 벗들과 함께 걷는 고난의 길이었네


나랑 함께 놀래?


그것이 내 인생의 모든 시이고

그것이 내 사랑의 모든 말이고

그것이 내 혁명의 모든 꿈이었네



- 박노해 ‘나랑 함께 놀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https://www.facebook.com/parkno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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