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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쯤 대중가요 무대에서는 라이브 바람이 불었다. 그때만 해도 발라드는 차치하더라도, 댄스 가수의 경우 립싱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시청자의 입장으로서도 역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격렬한 춤을 추면서 어떻게 노랠 해?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이클 잭슨이 내한한다. 내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었던 그의 무대는 가히 환상적이었는데, 결코 짧지 않았던 그의 무대 위 퍼포먼스가 모두 라이브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아니 충격이라고 감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저 어안이 벙벙했달까. 아니, 그게 말이 돼? 그 무렵 국내 무대에서도 사실 라이브 무대와 립싱크 무대가 섞인 채로 가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는 했는데,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몇몇 댄스 가수들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던 그 라이브 무대들을. 그것은 가히 안쓰러울 지경이었으며, 시청자인 내가 다 조마조마하여, 라이브 안 해도 욕 안 할 테니 그냥 립싱크를 하라고 진심으로 얘기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꼭 그게 안쓰러워서라기보다는, 어설픈 라이브 무대를 보여줄 바에야 립싱크를 하며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라이브랍시고 무대를 진행하니, 이건 뭐 노래도 놓쳐, 춤도 놓쳐…… 그런데도 그게 가수의 탓이라기보다는, 그 요구 자체가 너무 무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컸던 것이다. 완벽한 라이브라는 건 마이클 잭슨처럼, 전설적인 가수나 하는 거야, 괜히 마이클 잭슨이겠어? 이런 생각. 그런데 그게 바로(여기서 이런 용어를 쓰려니 웃기지만), 일종의 가스라이팅 효과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가수들에게 라이브는 기본이며, 안쓰러워할 필요도 없이 아주 훌륭히 소화해낸다. 결국 국내 가수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상향평준화된 것이다. 라이브를 못 한다고 비난할 필요가 없다. 그 에너지를 잘하는 가수들을 격려하는 데 쓰면 된다. 어차피 흐름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고, 도태될 사람은 도태된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십년이나 지난 과거 인터뷰가 문제가 되어, 걷잡을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졌는데, 사실 나는 너무 화가 났고, 우리는 거장을 가질 자격이 과연 되는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어느 쪽의 입장을 지지하느냐를 떠나서, 결국 이제는 그런 발언들이 분명 문제가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나는 창작자의 사생활에 있어서는 큰 문제를 삼지 않는 편이다. 고양이를 죽이고 싶다는 발언을 했건, 혹여 불륜을 저질렀건. 물론 나는 그가 고양이를 죽이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그가 정말로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예술가가 철없이 내뱉은, 일종의 치기 어린 발언으로 치부하고 넘어가 버릴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그것도 내 생각일 뿐,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문제적인 발언일 수 있다. 정당한 문제 제기라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 정당한 문제 제기에 거의 무관한, 다른 적대적인 세력들이 편승해 필요 이상의 공격을 가하면서 문제가 확대 재생산된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결코 온당치 않다. 흐름은 무시할 수 없다. 노동자 문제가 불거지고, 성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고양이 발언이 문제시되는 것은 인간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생명에 대한 인식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만 좋다면 그가 어떤 인간이라도 상관없다는 식의 생각은 이제 나도 마냥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게 정말 시대 흐름이라면, 어차피 도태될 사람은 도태된다. 노래와 춤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가수가 나오는 것이 불가능이 아니었듯, 올바른 사고와 작품성을 겸비한 창작자의 출현이 꼭 어려운 것은 아닐 거다. 바로 그런 상향평준화의 길로 가는 과도기라고 믿고 싶다. 나는 봉준호 감독을 믿는다. 나는 그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사고가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그의 영화를 보지 않으면 된다. 굳이 그를 필요 이상으로, 인격살인의 장으로 내모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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