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명 방랑기 #1

걸어서 한국 밖으로


내가 처음 해외를 경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 

정확히는 2001년 7월로 기억한다. 


군대도 다녀오기 전이라 보증인 몇 분의 동의를 담보하여 발급받은 일회용 여권을 들고,

짐 무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체력과 무식함을 자랑하기 충분한 나이였기에

바퀴가 달려서 끌고 다닐 수도 있고 백팩으로도 활용 가능한 기능성을 갖추었으나 무거울 수밖에 없는 여행 가방을 들쳐 메고

무척이나 들뜨고 흥분된 마음을 겨우 진정시켜 가면서

무려 두 번의 환승, 그러니까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이륙과 착륙을 세 번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20여 일간의 유럽 일정.

내가 내디딘 첫발은 1969년 암스트롱이 달에 남기고 온 발자국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이글이글 거리는 아지랑이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뜨거운 열기를 품어내는 

히드로 공항 아스팔트의 느낌은 달의 그것과 마치 흡사할 것 같은 정도의 희열이 있었다. 

(물론 달에 내디딘 첫걸음이 어느 정도의 느낌인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에 감흥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의 속도 속에서 저항하지 못한 기억력 탓도 있겠지만


런던, 브뤼셀, 뮌헨, 프라하, 인터라켄, 로마, 파리 등등 유럽의 유명한 도시들을 

길게는 3~4일씩, 짧게는 하루 이틀 정도 머물면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이동한 게 전부다. 


물론 강대국들이 한 곳에 진열해둔 다양한 문명들의 흔적들을 보기도 하고

격조 있어 보이는 건물들과 운치 있게 다듬어 놓은 공원들을 보면서

'아~ 그래!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고 느끼긴 했지만

비행기에서 간이 계단을 통해 히드로 공항 활주로까지 내려와서 맞닿은 지구의 중력만큼

강하게 인상으로 남은 것은 없었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디디며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나는 달 표면 대신 히드로 공항을 걸으면서

이것은 인류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내 인생에는 위대한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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