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 도비니, 라 모팡

어느 한 인물의 일생은 여러 사람의 일생을 겹쳐놓은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주말 특집, 쥘리 도비니(Julie d'Aubigny, 1670 혹은 1673–1707)의 일생이다. 그녀를 일단은 오페라 가수라 할 수 있을 텐데, 다른 직업도 하나 있었다. 칼을 쓰는 검사(劍士)다.


그녀는 루이14세의 말들을 돌보는 기즈 가문 소속, 아르마냑 백작(참조 1) 비서인 가스통 도비니의 딸로 태어난다. 말을 돌보는 실무 자체를 모두 다 가스통 도비니가 맡았었는데, 그는 자기 딸을 다른 기사 견습생들과 동일하게 가르친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남자애 옷을 입히고 학문과 승마는 물론, 검술(劍術)도 가르쳤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기사처럼 키웠다는 뜻인데,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1687년 아르마냑 백작은 쥘리를 정부(情婦)로 삼어버린다. 그래서 아버지가 복수의 칼날을…이 아니고, 그땐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던 때였으니까.



여기서 드라마 베르사이유를 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하실 텐데, 정부로 삼으려면 신뢰할 만한 사람의 부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그 시대의 전통이었다. 그래서 일단 그녀는 백작의 명에 따라 하급귀족(?)인 Sieur de Maupin에게 시집간다. 앞으로 모팡(Maupin)은 그녀의 예명이 되어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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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쥘리는 검술 스승을 하나 더 만난다. 어차피 사랑해서 한 결혼도 아니고 해서 그녀는 스승인 세란(Sérannes)과 사귀는데, 당시 프랑스는 파리 시내에서의 결투가 불법이었다. 세란이 파리에서 결투를 하여 상대방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그들은 사랑의 도피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남쪽으로!



마르세이유로 향하면서 그들은 검술 시범을 보이고 노래를 부르면서 여비를 마련한다. 그때도 쥘리는 남자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검술이 워낙 뛰어난 탓에, 사람들은 그녀를 여자같이 생긴 남자로 오인했고 그녀의 스타일이 워낙 공격적이었다. 구경꾼들 중에, “결투 해 볼 사람?” 해서 한 명 모신 다음 칼을 그어서 바로 승리, 그 다음에는 패자를 조롱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여자임을 보이기 위해 웃옷을 벗기도 했었다. 17세기 프랑스임을 기억하시라. 사람들은 멘붕. 그러다가 쥘리는 한 장사아치 딸에게 마음을 뺏긴다. 문제는 이 연애상대가 수녀원을 간다는 것이었다. 아비뇽에 있는 Visitandines 수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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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쥘리는 자기도 수녀가 되겠다면서 일종의 견습수녀로 가장, 그 수녀원에 들어간다. 그래서 수녀원 안에서 연애를 하는데… 아무래도 환경이 환경인지라 연애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계략을 꾸민다. 마침 병으로 죽은 수녀가 한 명 있어서, 그 시체를 자기 여자친구 침대 위에 올리고, 관 속에 넣어서 여자친구를 탈출시킨 것이다.



그리고는 여자친구의 방에 불을 질렀다. 수녀원은 대 혼란. 그들은 수녀원을 탈출한다. 수녀원은 쥘리를 (1) 납치, (2) 시신 바꿔치기, (3) 방화로 고소했고, 궐석재판(…)에서 판사들은 그녀에게 사형(심지어 화형)을 내린다. 그런데 수녀원이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수녀원은 쥘리가 당연히 여장을 해서 자기를 속였던 남자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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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는 파리로 상경하기로(혹은 도망치기로) 한다. 그러다 자신에게 추근대는 한 귀족 남자와 결투를 벌이고, 그의 어깨를 칼로 찢어버린다. 다음 날 그녀는 결투 상대가 어떤지 찾아갔고, 그 남자가 륀느(Luynes) 공작의 아드님, 알베르 백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후에 그녀에게 정식으로 사과했고, 그녀는 그의 방에 찾아간다. 내 어깨를 찌른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연애 뿜뿜.



하지만 알베르 백작은 군대에 가야 했어요. 쥘리는 그래도 정이 남아 있겠지 하여 아르마냑 백작에게 청한다. 자신에게 걸려있는 화형을 좀 사면시켜달라고 말이다. 아르마냑 백작은 쿨하게 도와주기로 한다. 저기… 그 죄인(?) 제 정부입니다. 고소장은 남자라고 했으니 얘는 죄가 없죠. 게다가 아직 스무 살도 안 됐잖아요. 청소년 범죄는 원래 관대해야 하는 겁니다. ㅇㅋ?



우리의 태양왕도 ㅇㅋ하셨다. 그래서 국왕 명령으로 사면. 게다가 파리 오페라에서 노래도 부를 수 있도록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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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부터 파리 오페라에서 가수로 일하게 된 쥘리. 무대 예명은 라 모팡, 혹은 Mademoiselle de Maupin이었다(참조 2). 그녀는 실력이 좋아서 승승장구한다. “천사의 소리와 같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가수들과의 관계가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한 번은 여자 동료를 난처하게 만든 남자 가수(참조 3)와 결투를 해서 승리했었고, 한 번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여자(!) 가수를 차버리기도 했었다. 루이 14세 장남의 정부이기도 했던 그 가수(Fanchon Moreau)는 너무나 마음을 상한 나머지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남자 옷을 즐겨 입는 그녀…



1695년 한 무도회장에 남자 옷을 입고 들어간 그녀는 한 젊은 여자와 키스한다. 이 여자를 사모했던(?) 남자 3명이 쥘리에게 분노했고, 쥘리는 무도회장 바깥으로 차례로 3명을 불러내서 결투를 벌인다. 결과는 모조리 다 쥘리가 승리. 그러나 앞서 말했듯 파리에서는 결투가 금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브뤼셀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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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에서도 그녀는 가만 있지 않았다. 바이에른 선제후의 아들,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과 사귀었는데 하루는 그가 쥘리에게 4천 프랑을 제시하면서 바이에른으로 가자고 권유했던 모양이다.



쥘리는 받은 돈을 그에게 던져버리면서 그를 발로 차, 막시밀리안 2세는 계단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런데 루이14세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사면하자(파리에서의 결투 금지는 “남자”에게만 해당한다며 좁게 해석해 준 덕분이었다), 그녀는 1702년부터 다시 파리 오페라의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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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그녀는 Florensac 백작부인과 사귀지만, 그녀가 사망하자 슬픔에 젖은 쥘리는 수녀원에 스스로 들어가 오페라 가수 직을 은퇴한다. 그때가 1707년. 그녀의 무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일생은 이미 1835년부터 책(소설)으로 나왔었다고 한다. 위에서 보셨듯 선정적인 장면이 워낙 많아서인지 미국 뉴욕 악덕탄압협회(New York Society for the Suppression of Vice, 1873-1946)는 이 책의 미국 출판을 금지시켰었다.



영화화도 당연히 있었다. 이탈리아 Mauro Bolognini 감독의 Madamigella di Maupin(1966), 그리고 프랑스 TF1의 텔레비전용 영화로 Julie, chevalier de Maupin (2004)가 있었다. 그런데… 두 영화 모두 위의 이야기들과는 별 관계 없는, 그저 그런 역사 영화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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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이 아르마냑 백작의 남동생이, 루이 14세 남동생의 연인이었다. 드라마 베르사이유에서 잘(?) 묘사된다.


2. 오페라 가수들은 결혼 여부와 관계 없이 관행상 앞에 마드무아젤이 붙었다.


3. 그가 결투를 거절하자, 지팡이로 그를 마구 때려눞히고 시계를 훔친 쥘리는, 그가 도둑들한테 얻어맞았다고 얘기하고 다니자, 직접 소문을 낸다. 그가 여자한테 얻어 터진 놈이라고 말이다.


4. 영문판 위키피디어 및 호주 언론의 기사를 토대로 썼는데, 두 본문이 상충되는 면이 있다. 또한 신기하게도,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불어판 위키피디어보다 영문판 위키피디어의 설명이 훨씬 자세하다.


ㅇ 영문판 위키피디어: https://en.wikipedia.org/wiki/Julie_d%27Aubigny


ㅇ The wild life of 17th Century sword fighting bisexual opera singer, Julie D’Aubigny(2019년 3월 3일): https://www.news.com.au/lifestyle/real-life/true-stories/the-wild-life-of-17th-century-sword-fighting-bisexual-opera-singer-julie-daubigny/news-story/bb4f3f32c4058a32c8d3632d746919c3#.lji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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