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타협할 수 있는가

유시민 작가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문제는)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담고 가는 거예요, 각자(한일)가. 담고 가면서 그 문제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있는 거고 또 경제적인 교류나 문화 교류나 그거는 그거대로 또 해 나가고. 그렇게 하는 거지 지금 몇십 년간 그렇게 해 왔는데 이 문제 해결 안 되면 다른 것도 안 하겠다든가 이거는 우리가 취할 수 없는 태도고..."


두 나라간 역사의 더께는 중생대 흔적을 품은 지층만큼이나 겹겹이다.


이러한 숙원관계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1965년 청구권협정때 독도같은 역사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선반위에 올려놨다.


◆ 아베의 무역보복 칼날...역사·경제문제를 짬뽕하는 역설 발생



한일간 역사전쟁이 초유의 경제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세계사에서 드문 경우이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8초간 악수를 나누고 '경제보복'의 날카로운 검을 칼집에서 빼들었다.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 공식 환영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약 8초 간의 짧은 악수를 나눴다. (사진=연합뉴스)

이 칼날은 지난 1965년 이래 55년간 봉합돼 왔던 한일간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상황전개에 따라 그럴 수 있다. 물론 너무 위험한 상자여서 7월 21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 그때에도 일시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면 사태는 어디까지 튈지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사태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아베의 칼은 상황을 더욱 모순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칼'을 휘둘렀으면 문제의 환부라도 잘라내야 했지만, 그 칼은 한일간 역사문제를 경제문제와 결부시킴으로써 등나무 줄기처럼 더 배배꼬는 역설적 국면으로 빠트린 것이다.


한일관계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다. '굴욕 프레임'을 작동시키면 두 나라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 한일 양국민의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9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한 참가자 옆으로 아베 일본 총리 규탄 피켓이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일 양국 역사의 더께 걷어내고 핵심쟁점에 집중해야


그렇다면 한일 양국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이래 최악의 상황인 현 국면으로 타협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 해법을 찾으려면 가급적 역사의 더께를 걷어내고 갈등의 핵심 뼈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양국간 충돌의 핵심은 '(일본측 주장대로)3국 중재안을 받을 것아냐, 말것이냐' 아니면 (한국측 주장대로)양국 기업이 징용피해자를 위해 자발적으로 위자료 기금을 모을것이냐,말것이냐'로 귀결된다.


양국은 이 뼈대의 어디쯤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다 패하고 치명상을 입는 양패구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징용피해자 보상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상때 핵심쟁점이었다.


이 문제는 이승만 정부때부터 논의를 시작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일본은 배상을 해주겠다 하면서 한국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주장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행정력으로 한사람한사람 강제징용을 입증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결국 5.16군사쿠데타가 터졌다.


군사정부는 취약한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자금'이 없었다. 군사정부는 결국 징용피해자 개개의 보상 근거나 명목을 따지 않고 '목돈 타결방식'으로 바꿨다. 그게 유·무상 5억달러이다.


당시 군사정부는 일본에서 받은 돈의 극히 일부만 피해자들에게 지급했다. 일본이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피해자 보상이 다 이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수면아래 가라앉았던 징용문제는노무현 정부시절인 2005년 1월 한·일청구권협정 문서가 공개되면서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는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관련 민간공동위원회'를 발족시켰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2007년 피해자 특별법을 만들었고 피해자 보상을 했다. 2015년까지 7만 2600여명에게 국가 예산으로 6천 1백억원이 지급됐다.


한·일간 징용문제는 이렇게 해결된 듯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서 오사카(大阪) 상점가에서 유권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오사카 교도/연합뉴스) [교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주심 김능환 대법관)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피해자)개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로 국내법과 국제법(청구권협정)사이에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돌아보면 이 당시 정부 대응이 뼈아프다.


정부가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분쟁사안으로 다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징용 피해자 보상을 했기때문에 추가 개인배상에 대해서는 분쟁조정과정으로 여론을 모으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처음부터 이렇게 결정했다면 '백기투항'이 아니고 ,정해진 소정 절차에 따른 분쟁 조정과정으로 징용문제를 풀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 문제는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지금도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른 중재위 가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 시한이 바로 오늘(7월 18일)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두가지 이유를 들어 중재위 구성을 거부하고 있다. 첫째는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피해자들이 동의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미쓰비시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11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와 가족들이 만세삼창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이제는 일본 요구대로 중재위를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패소할 경우 정치적 부담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됐기 때문이다.


길게는 지난 10년동안 역대 정권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 배상문제가 역사,경제문제로 얽혔고 이제는 정치적 코스트가 너무 커진 것이다.


다만 지금도 중재위로 가는 방안이 유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패소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장벽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중재위를 소정의 절차 이행 과정으로 본다면 패소해도 문제가 없지만, 야당이나 언론이 중재위 패소를 '정치적 망신'으로 몰아간다면 현 정부는 부담이 매우 클 수 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이때문에 앞서 지적했지만 한일 양국은 중재위 구성과 양국기업의 자발적 위로기부금의 어느선상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한일 갈등이 지금 험악하지만 일단 21일 아베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마치면 특사방문 등을 통해 대화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것은 양국이 경제와 역사문제를 최대한 떼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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