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소개하기 이전에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 등 호칭 구별이 늘 어려워서 한번쯤은 여기에 올려보고 싶어서 올려봄. 흔히 많은 사람들은
대비 = 왕의 엄마 (전왕의 왕비)
왕대비 = 왕의 할머니 (전전왕의 왕비)
대왕대비 = 왕의 증조할머니 (전전전왕의 왕비)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혀 아님. 조선시대 내명부 여인들의 서열은
세자빈 - 왕비(중전) - 왕대비 - 대왕대비
왕대비는 보통 왕의 어머니뻘이지만 사실상 바로 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 말이였고 대왕대비는 전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말임.
근데 조선시대에는 대비가 3명이나 된 시절이 있었는데 성종시절과 고종시절이였음.
조선 성종이 즉위하니
선왕인 예종의 부인인 왕대비 인혜왕대비 안순왕후 한씨
(성종 숙부 예종의 왕비)
선선왕인 세조의 부인인 대왕대비 자성대왕대비 정희왕후 (성종 조부인 세조의 왕비)가 있었음.
근데 문제가 되는 인물이 있었음.
문제는 성종의 어머니 수빈김씨였음. 성종의 아버지 덕종은 세자시절에 사망한터라 명목상 수빈김씨는 대비도 아니고 왕비도 아닌신세....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왕도 못되고 서른도 안되서 요절한 아들 의경세자를 왕인 "덕종"으로 추존시킴.
그리고 이로인해 수빈김씨는 - 인수왕비를 거쳐서 인수왕대비로 봉승되었고 서열이 왕비까지 거친 인혜왕대비 (예종 왕비 안순왕후)보다 서열이 더 위가 되었고 이때 왕실 내명부 서열은
세조왕비 (대왕대비 정희왕후) - 덕종왕비 (왕대비 소혜왕후) - 예종왕비 - (왕대비 안순왕후) - 성종왕비 (중전 공혜왕후)
순서가 되었음.
문제는 이러한 대비가 3명이나 살아있는 사태가 철종때 벌어짐.
헌종이 죽고 김대왕대비 (순조왕비)가 고종을 데려와 즉위시킴.
궁중에는 남편이 이미 사망한 왕비가 3분이나 계셨는데
1.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 명성대왕대비 김씨
2. 선왕인 헌종의 모친이자 효명세자의 부인 효유왕대비 조씨
(신정왕후)
3. 대행대왕 헌종의 부인인 왕비 효정왕후 홍씨
이렇게 3명의 서열이 문제였음.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기존의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니라 왕대비 아래 대비라는 직함을 또 만들어서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즉 기존의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비). 왕대비 신정왕후 (익종,효명세자빈)은 그대로 있고 그 아래 대비 자리를 만들어서 효정왕후를 대비로 존숭함.
그래서 왕실 여성 서열은
1. 대왕대비 김씨 (순조의 왕비)
2. 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3. 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4.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이 순서였음.
신기한건 새로 즉위한 국왕 철종은 순원왕후와 순조의 양자였음. 즉 대비 홍씨 (효정왕후)에게는 시숙부였는데 선대 왕의 정실부인이였기 때문에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갔다고 함.
그러던 중 1857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죽은 뒤로는 왕대비 신정왕후를 대왕대비로 올리고 대비 효정왕후를 왕대비로 올림으로써
1. 대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기존의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닌, 다시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로 회귀한거임.
근데 문제는 철종이 죽은 이후 왕실서열이 꼬임. 바로....
철종의 왕비 중전 김씨였음. 명목상 철종이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여서 철인왕후는 대비 홍씨에게 시숙모임.
즉 철인왕후의 서열을 동서지간인 신정왕후와 동일시할지 혹은 효정왕후보다 낮게 할지 문제가 생겼으나 이때 새로 즉위한 국왕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를 싫어함..
그래서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 서열을 3명의 대비들중 가장 아래로 낮추었음.
결과적으로 왕실 여성들의 서열은
1. 대왕대비 조씨 (익종, 효명세자의 부인)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대비 김씨 (철종의 왕비)
4. 중전 민씨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
이 순서가 되었어. 대비 김씨는 조카며느리인 왕대비 홍씨에게 아예 서열이 밀린거임.
보통 선선왕의 왕비면 무조건 대왕대비가 되는건 아니였음.
이러한 비운을 가진 인물은 바로 조선역사에 2명 있었음.
친아들 중중(진성대군)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는 인종시절 중전, 명종시절 왕대비였기에 선조가 즉위하고 대왕대비가 되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시어머니 문정왕후와 달리 다른상황이였는데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즉위할때 이미 인성왕후가 왕대비로 있었고 둘은 고부지간이여서 대왕대비로 승봉된 경우, 하지만 인성왕후는 바로 아래서열 명종비 인순왕후와 항렬이 같아서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고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더군다나 조정에서 인순왕후의 영향력이 상당했고 인성왕후는 뒷방신세여서 수렴첨정의 권한도 뺐기게 됨.
선조의 왕비 인목왕후는 선조(왕비) - 광해군(왕대비)를 거쳐 인조가 즉위했을때 광해군부인이 쫒겨났기에 그냥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어도 되는거 아님?이란 생각이 있겠지만
대왕대비
인조의 왕비 장렬왕후는 인조(왕비) - 효종(왕대비) - 현종(대왕대비)였기에 숙종때는 더 높은자리에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효종왕비 인성왕후는 고인이였고 궁중에는 현종비와 인조비 둘 뿐이였기에 그대로 4대왕을 거쳤어도 대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만일 효종비 인성왕후가 살아있었으면 철종이나 고종때처럼 왕대비 아래 대비자리를 만들거나 혹은 대왕대비 위에 대상왕대비같은 자리를 만들었을것임.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는 정조 즉위 이후 조모뻘이여서 대왕대비로 바로 올리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왕대비자리에 오를 사람도 없었고 이당시 장조(사도세자)는 죄인인터라 혜경궁 홍씨 역시 왕대비자리에 오르지못함.
정조의 양부 진종 (효장세자)의 부인 조씨 (효순왕후) 역시 고인이였던터라 정순왕후는 그대로 왕대비가 됨.
서양에서는 대비(태후)를 " queen dowager"로 표현하는데 유럽왕실에서는 만일 현왕의 어머니면 영향력이 강하겠지만 단순히 선왕의 왕비였으면 딱히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음.
재혼도 가능해서 헨리 8세의 부인 캐서린 파는 재혼도 했다고 함. 다만 선왕의 왕비였기에 존중의 대상이긴 했다고 해.
대략 늘 사극을 보면서 왕실여성들 호칭이 궁금해서 공부해봤음.
어허 일케 봐도 헷갈리네..
쨌든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라는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