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스파이, 마타 하리

매혹적인 눈빛과 이국적인 미모, 그리고 빼어난 몸매의 여성 스파이. 소설 속에서나 존재할 법했던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네덜란드 태생의 마타 하리이다. 마타 하리의 본명은 마가레타 헤르트루이다 젤러 (Margaretha Geertruida Zelle)이다. 1876년 네덜란드에서 출생한 그녀는 19살 되던 해인 1895년 네덜란드 장교인 루돌프 매클라우드와 결혼,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두 아이를 낳은 그녀는 그러나, 폭력적이자 알콜중독인 남편과의 지속적인 불화에 시달려야 했고 1902년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 별거를 한 후 1907년에 이혼하게 되었다. 한편 마타 하리는 1903년 파리로 건너가 새 삶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그녀에게 1905년 한 클럽에서의 밸리댄스는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의 미모와 화려한 밸리댄스는 일약 유럽 사교계의 최대 화제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이름인 마타 하리도 바로 이 무렵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라고 한다). 이러한 유명세는 그녀가 유럽 각국의 고위층 인사와의 친분을 쌓는데 있어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며, 실제로 각국의 정, 재계 인사 및 왕실에 걸쳐 그녀는 수많은 남성을 유혹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 각국 고위층들과의 관계와 그녀의 행동은 당시 전운이 감도는 유럽 각국에서 언제든지 자국에 커다란 해가 되는 스파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을 받기에 또한 충분하였다. 게다가 마타 하리는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에 베를린에 있었기 때문에 영국 및 프랑스의 정보 기관에서는 그녀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타 하리는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1917년 2월 프랑스로 입국을 하였으며, 결국 프랑스 당국은 그녀를 체포하였다. 그녀의 죄목은 프랑스 정관계의 고급 정보를 독일측에 팔아넘김으로써 결과적으로 5만여 명의 프랑스 병력 손실을 유발하였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신속하게 재판이 진행되어 그녀는 같은해 7월에 재판을 받은 후 10월에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마타 하리는 총살 집행되는 순간에도 눈가리개 착용을 거부하였으며, 사수 앞에서 외투를 벗어 던진채로 알몸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스파이 행위에 대해 그 동안에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의 비밀 문건에 의하면 마타 하리가 독일 정보기관에 군사 정보를 넘겼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다만 그녀에 대한 신속한 재판과 처형이 당시 그녀가 몰고 다닌 수많은 추문에 대한 고위층의 단속 주문 때문이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이 무성하게 남아 있다. 사진 1, 2, 3, 4 - 마타 하리. 당시 빼어난 외모와 몸매로 수많은 고위층 인사를 유혹하였다고 한다. 사진 5 - 1917년 파리에서 체포된 직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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