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 픽션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5/01/05/pulps-big-moment

주말 특집이자 생일 특집, 페이퍼백이다. 현대 문명 중 미국과 영국에서 나온 것이 많은데 그 중에 하드 커버와 페이퍼백도 있다. 아니 일반적인 종이 표지로 만든 책이라면 옛날부터 있지 않았는가… 하면 그 말도 맞기는 맞다. 미국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중화”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과 영국이 먼저 시도한 게 맞다고 봐야하지 싶다(참조 1).


물론 그 시초가 유럽 대륙에 있긴 했었다. 19세기에 그림이 들어간 잡지들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번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행본은 여전히 접근성이 좀 떨어졌다. 하드커버 위주로 나왔고 서점에서 파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우편 주문만 받았다). 그러다가 독일 함부르크의 알바트로스 출판사에서 페이퍼백 규격이 나온다. 거리 가판대 랙(rack) 크기에 맞춘 형식이었다. 이때가 1932년, 연도를 보시라. 독일은 뭘 할 만한 때가 아니었다.


때는 1939년, 미국의 로버트 디 그래프(Robert de Graff)부터 얘기해 보자. 그가 혁신을 일으켰던 곳은 Pocket Books의 유통망이었다. 책을 노점, 약국, 매점, 정류장에서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뭔가 쉽게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발상이었다. 당연히 크기는 독일에서처럼 거리 가판대의 “랙”에 맞도록 제작했다. 이 페이퍼백은 잡지처럼 공급했다. 랙에서 다 팔리면 새로 갖다놓는 식이다.


영국의 앨런 레인(Allen Lane)도 있다. 하루는 애거사 크리스티 부부(참조 2)와 함께 야외로 놀러갔는데 이거 이거,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역에서 쉽게 읽을 책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35년 애거사 크리스티의 “골프장 살인사건(The Murder on the Links)”을 시작으로 페이퍼백을 자기가 아쉬워서 직접 출판하기 시작한다. 바로 펭귄 출판사의 시작이다.


디 그래프와 레인 모두 고등학교 중퇴… 이게 아니고, 페이퍼백은 저렴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디 그래프는 도로 요금소(toll booth)의 1/4, 레인은 담배 한 갑보다 저렴해야 한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1940년부터 페이퍼백의 시대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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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국과 영국의 페이퍼백이 같았느냐, 같긴 했는데 표지 스타일이 달랐다. 펭귄 북스의 경우 표지가 밋밋했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와도 비슷한 느낌(참조 3)이다. 그러나 미국의 페이퍼백들은?


지금 보면 1940-50년대의 예술 작품들이 따로 없을 텐데 대단히 화려했다. 그리고 야했다. 위에서 뭐라 했나? 저렴한 책이라고 했다. 거리 가판대에서 쉽게 사고 읽고 버리는 책들이었고, 그에 따라 눈에 일단 띄어야 하기 때문에 커버 아트도 대단히 선정적이어야 했다. 아예 소설 내용과 관계가 없어도 되니 선정성 위주로 그리라는 출판사들의 당부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고전 작품, 가령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표지도 가차 없었다. 영화 포스터와 같은 아트에 문구, 그리고 “완전판(complete and unabridged, 참조 4)”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갔다. 출판사는 고전과 싸구려 소설을 전혀 구분하지 않았다. 가령 조지 오웰의 1984에는 “Forbidden Love. . . . Fear. . . . Betrayal”이라는 표현이 커버에 들어가 있었다. 1984에서 강조할 것이 저런 단어가 아닐 텐데?


앨런 레인은 그런 커버(당시 용어로 “젖꼭지 커버(nipple cover)”라 불렀다)를 질색해 했었다. 그런데 펭귄 미국 지사가 그걸 따라하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영국 펭귄과 미국 펭귄은 1948년 결별한다(참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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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기 짝이 없는 책 커버에 당국의 개입은 없었을까? 당시의 미국은 검열이 혹독하던 시기다(참조 6). 실제로 1952년 연방하원은 House Select Committee on Current Pornographic Materials를 구성하여 포르노스러운 책을 조사한다. 1953년에 나온 이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야한 표지가 성인 부부와 청소년의 일탈을 가져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책은 포르노가 아니었다.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았고 심한 욕설을 담은 것도 아니었는지라 법으로 규제할 대상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페이퍼백 업계가 좀 얌전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고품질 페이퍼백(quality paperback)”도 나오기 시작한다. 지식인들이나 대학교 학생들이 볼 만한 페이퍼백들도 나온 것이다.


그래서 페이퍼백은 이제 대중용 도서만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고품질 페이퍼백에 슬그머니 D.H. 로런스와 헨리 밀러의 작품들도 들어가기 시작한다. 어차피 구분도 어렵지 않던가? 자, 그 당시를 풍미하던 커버 아트들을 보면서 주말을 보내도록 하자(참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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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어떻게 보면 현대적인 페이퍼백의 효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다. 다만 제임스 조이스는 영국과 미국 어디에서도 출판사를 못 찾는 바람에, 파리에서 페이퍼백으로 출판된다(1922).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2019년 10월 13일): https://www.vingle.net/posts/2683136


2. 시기로 볼 때,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의 두 번째 남편이 있던 때였을 것이다.


3. 책 표지 이야기(2013년 3월 27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437978109617082


4. 페이퍼백은 뭔가 축약판이지 않나 싶은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에 일부러 썼다고 한다. Pocket Books에서 시작된 이 전통은 당시 거의 모든 페이퍼백에 동일한 문구가 들어가는 것으로 퍼진다.


5. People who read and write(1948년 2월 1일): https://nyti.ms/2WULrkg


Publishers’ row 단락에 나오는데, NYT 기사에서 커버아트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 미국 지사(New American Library)는 1987년 다시 펭귄과 합쳐진다.


6. 무성영화의 보존(2013년 12월 30일): https://www.vingle.net/posts/264665


7. 50 Pulp Cover Treatments of Classic Works of Literature(2018년 5월 2일): https://lithub.com/50-pulp-cover-treatments-of-classic-works-of-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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