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1차 세계대전 종전의 날이라 학교를 가지 않았다.


일요일은 주문했던 매트리스를 배송받아 정리를 하고 장을 보고 또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면서 보냈기에 오늘은 어느 가보지 않은 곳을 좀 가볼까 했다. 어느 곳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비도 오고 한다 해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지난밤 엠마가 찾아봐준 곳들은 부흐델 미술관 Bourdelle Museum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르봉막세 백화점 Le Bon Marché 그리고 백화점 건물 바로 옆에 붙어있는 우리의 성모, 기적의 메달 성당 Chapelle Notre- Dame-de-la-Médaille- Miraculeuse이었다.


하지만 출발하면서 경로를 정하려고 검색을 하다 보니 부흐델 미술관은 마침 월요일이 휴관이었다. 할 수 없이 르봉 막세 백화점과 성당을 먼저 들린 후, 시간이 남으면 달리 들를 곳을 더 찾아보기로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10호선 Sevres-Babylone역에서 내려 르봉막세 백화점을 향해 걸었다. 때마침 점심때여서 백화점 주변의 어느 레스토랑에 들려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가격들도 비싸고 마땅한 곳도 찾지 못해서 그냥 백화점 1층에 있는 블랑제리에서 크후와상과 사과 타흐트를 사서 백화점 옆의 이름 모를 작은 공원에서 먹기로 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짙은 구름이 갈라진 사이로 잠깐의 햇볕이 내려와 줘서 우리는 공원 벤치 위에서 근사한 데쥬네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랑스에 온 후 처음에는 바게트에 반했다가 차차 크후와상에 반해서 매일같이 사 먹고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커피와 먹기에 아주 좋다. 건조한 음식을 먹으면 곧잘 체하는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Pain이다.

작은 공원에는 아이들은 위한 간단한 회전목마 같은 것이 있어서 손자의 손을 잡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꽤 모여 있었다. 옆 쪽 공터에서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활기찬 꼬마 아이와 축구공 주고받기를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다만 빵 냄새를 맡은 비둘기들이 우리를 둘러싸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식사를 끝내지 못했고 요리조리 걸어 다니며 남은 빵을 먹어야 했다.


르봉막세 백화점 1층의 쇼윈도는 의외로 명품들의 차지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귀여운 인형들을 기계에 매달아 움직이고 춤을 추게 만들어 아주 그럴듯한 뮤지컬 장면처럼 꾸며 놓았다. 그것도 매우 넓은 건물의 전면을 늑대, 쥐, 올빼미, 닭 등 여러 동물을 주인공으로 여러 무대를 만들어 놓아 벽면에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위한 공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게끔 두 뼘 높이의 단도 설치해 두었다. 파리의 여러 곳에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찾을 수 있었다.

presentation

르봉막세 백화점에서 유명한 교차 에스컬레이터와 오래된 건물의 여러 구조를 이용해 꾸며 놓은 각 매장들의 디스플레이도 좋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창이 있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 참 좋았다. 1층은 거의 창을 가려 놓았고 2층, 3층은 간간히 빛 길을 터 놓았지만 인형과 장난감, 아이들의 옷가지를 파는 4층은 창 전부를 다 터 놓아 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아이들이 나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디스플레이된 인형과 장난감들을 스스럼없이 만지고 옮기고 가지고 돌아다니는 데에 놀랐고 직원들의 제지가 없는 것에는 더욱 놀랐다.


서점에는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예술과 디자인 관련 책들이 가득해서 바보처럼 여기에 살아야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브랜드의 여러 제품들을 서로의 평을 들려주면서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다리가 무거워졌다. 내 걸음이 느려진 것을 보고 엠마가 그만 백화점을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조금 느린 다리를 끌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입장료가 있는 건 아닌지, 관광객은 출입하면 안 되는 건지, 조심스러웠지만, 여긴 관광지도 아니고 다만 가톨릭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작은 성당이었다. 1830년 Catherine Labouré 라는 수녀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곳으로 가톨릭에서는 유명한 성지이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시겠다.”


성당에 들어가 앉아 본 게 10년은 된 거 같았다. 성당은 작고 소박했지만 편안한 엷은 파란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제대 옆에는 Labouré 수녀의 시신이 유리관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앞 쪽 의자를 가득 채운 신자들이 함께 프랑스어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뒷 쪽으로 둘씩 하나씩 떨어져 앉은 다양한 머리색의 사람들은 가만히 앞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뜻은 모르지만 익숙한 음률의 기도 소리에 그만 옛 생각이 났다. 나는 더 이상 신은 믿지 않지만 추억 덕분인지 지친 다리 때문인지 편안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따라 감고 10년 만에 기도를 해 보았다. 들킬까 수줍어 입술마저 꼭 붙잡은 채로.


기도를 마치자 성당 안이 순간 노랗게 밝아졌다. 신기해 올려다보니 성당 지붕에 난 창으로 구름을 벗어난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기적이다. 훗.


기적은, 응답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너무나 원하기에 어디에 선가라도 반드시 찾아내는 거였다.


찾을 때까지 스스로 찾아내 납득을 하고 말 때까지는 무릎이 아파도 계속 묻고 또 기도하는 것.


그러니 기도는 결국 자신과의 지독한 대화인 것이다.


지친 사람이라면..

작은 햇빛 하나라도 좋은 대답이라고 믿으면 된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편안히 돌아가는 우리의 등을 보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글 영상 레오


2019.11.16


파리일기_두려운 시간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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