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프의 발음

https://orientxxi.info/magazine/dialectes-bedouins-et-jordanie-titre-a-faire,3379

어느 영화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일본 영화에서 유독 기억이 나는 홋카이도 사투리가 하나 있다. “빨리” 뭔가 하라는 대사였는데, 표준어 변화형인 早く를 쓰지 않고 早ぐ라 발음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홋카이도 안에서도 하코다테(函館)의 사투리라고 하는데, 이런 발음 변화가 아랍어 글자 카프(ق)에도 있었다.

아랍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다들 아실 텐데(…) 소위 말하는 표준 아랍어는 코란 시절의 “고전 아랍어”를 지칭한다. 즉, 1500년도 더 예전 방식의 문법과 어휘, 발음을 유지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뭔가 안 맞다 여기실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걸프 지역이나 주변 아랍어가 “고전 아랍어”와 같지 않음 또한 당연하다. 당연히 나라별로도 사투리가 존재한다.


이 기사는 카프가 요르단에서 발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대단히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 글자의 실제 발음은 “까프”에 가까운데(여담이지만 한글 자모로 발음을 완벽하게 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게 요르단에서 “카프” 혹은 “아프(참조 1)”로도 발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괜히 변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이게 요르단의 국민 국가화와 관련이 있다. 요르단의 인구 구조를 거칠게 말하자면, 절반은 베두인, 나머지 절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요르단 역사를 잠깐 이야기해야 발음 변화를 얘기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해 깊은 “애증”을 같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토만으로부터 독립한지 겨우 한 두 세대 지났을 뿐인 신생 왕국 요르단을,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국왕을 암살하려 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요르단을 점령하려 했었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같은 아랍이라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었다(참조 2).


--------------


자, 팔레스타인 인들의 축출 사건(‘재앙’을 의미하는 النكبة‎) 이후, 이들은 요르단에 /카프/ 및 /아프/의 발음(참조 3)을 갖고 들어온다. 베두인을 필두로 요르단에 원래 살던 사람들은? /가프/였다.


요르단은 생각했다(?). 요르단이 ‘요르단’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요르단만의 아랍어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역시 팔레스타인보다는 원래 살고 있던 베두인들의 문화를 ‘요르단’화 시켜야 했다. 즉, “검은 9월(참조 2)” 사건 이후로 요르단은 까프의 발음을 되도록이면 /가프/로 하도록 시켰다(참조 4).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변화가 있었으니…


남녀 발음의 분화다. /가프/로 발음이 변해가는 현상이 관찰되기는 하는데, 베두인 쪽 여자들이 오히려 /아프/ 발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자/알리프의 /아프/ 발음이 뭔가 더 여성스럽고, 더 부드러우며 온화하다는 이유였다. 즉, /가프/는 뭔가 남자스럽고 국가스러운 발음이었다.


단순히 사회활동에서 배제된 여성들이 /아프/로 물러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제일 간단한 답변이겠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여기서의 설명은 이렇다. 원래 /아프/ 발음을 사용하던 지역(참조 3)의 대도시를 “상상”하면서 그쪽 발음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즉, 사회 생활에서 여자들이 배제됐기 때문에, 여자들은 다른 나라 대도시의 발음을 들여옴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회복한다고 여긴 것이다.


또 있다. 60-80년대 당시 여성 교사들의 경우 교육을 대체로 /아프/ 발음을 하는 지역(예루살렘이나 이집트 혹은 레반트)에서 교육을 받았었다. 즉, 이들이 여학생들에게 /아프/를 가르친 것도 크다. 멋진 롤모델 여자 선생님들(참조 5)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요르단 남자들은 /가프/, 여자들은 /아프/ 발음으로 정착됐다는 얘기인데, 텔레비전에서 남자 동성애자들이 /아프/ 발음을 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장면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또 현대(2010년대)에 와서는 또 변하는 조류가 관찰됐다.


--------------


요르단 동쪽, 그러니까 원래의 요르단 주류의 특히 중산층 이상 남자들이 /아프/ 발음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들의 영향일까? 예전처럼 심하게 단속하지 않는 것도 있고, 뭣보다 아랍에서의 콘텐츠는 이집트와 레바논이다. /까프/를 /아프/ 비슷하게 발음하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여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아프/ 식으로 발음하지 말고 요르단 주류 남자들처럼 /가프/로 발음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정말 글자 발음의 변화가 영원히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 정도가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까?


(P.S.)


원래 기사는 qāl, ?âl처럼 발음기호에 익숙하지 않으면 못 알아보는 “발음”을 적고 있다. 그래서 그냥 문자 이름인 까프를 /카프/ /가프/ /아프/ 식으로 고쳐서 썼다.


--------------


참조


1. 함자(ء)가 들어간 알리프(آ) 발음이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한 /아/와는 발음이 확연히 다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2. 뮌헨 올림픽에서 유명해지긴 했지만, 최초의 “검은 9월(أيلول الأسود‎)” 사건이 바로 이 내전을 가리킨다. 이때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군사적으로 축출했고, 그들이 레바논으로 들어가면서 레바논 내전을 일으키게 된다.


3. /카프/ 발음은 주로 웨스트뱅크(요르단강 서안), /아프/ 발음은 주로 예루살렘과 자파 등지의 사투리 발음이다. 여담이자만 이집트도 /카프/를 /아프/로 발음한다.


4. 당시 요르단에서는 경찰들이 광장에 서서 행인들에게 /카프/ 발음을 시켰다고 한다. 관동대지진 당시의 “주고엔 고짓센”이 생각난다.


관동대학살 90년 "주고엔 고짓센(한국인이 발음 어려운 일본어·15엔 50전이란 뜻) 발음해봐"… 조선인 색출해 길거리서 칼·죽창 살해(2013년 8월 30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30/2013083000311.html


5. 설명을 더 하자면, 요르단의 반쪽인 베두인 여자들보다는 팔레스타인에서 온 여자들의 교육 수준과 경제 수준이 더 높았다는 점도 여자들의 /아프/ 발음 확산에 기여했다.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