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그 이면

서울의 인왕산 아래 서촌을 찾았을 때 초행길이

분명한데 익숙한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데쟈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건 아마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에 많이 나타나는

인왕산 실경 때문일 거다.


그중 비 갠 직 후의 인왕산을 그린 겸제의 '인왕산 제색도'가 으뜸이다.

그림 속의 바위, 소나무가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렇듯 초행길의 제주 여행은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 만나기의 연속이다.

사진이나 티브이 등 모든 매체를 통해 많이 보고 접해 왔던 경관이다.

아마 나보다 여러 분들이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기에

여기서 굳이 제주 관광기를 쓸 필요는 없겠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다른 면에 주목하기로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제주의 이면을

보고자 했다.

아름다운 제주의 이면엔 슬프고 아픈 현대사가 있다.

제주 4ㆍ3 사건이다.


2003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확정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더라도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이승만 정부가 주도한 강경진압작전으로 제주도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만9285동이 소각됐다고한다.


전형적인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유옌이 정한 국제법 '제노사이드(genocide)'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한다.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같은 잔혹한 범죄를 말한다.

우리는 나치의 만행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자국인 제주에서 벌어진 만행에 대해 모르고 산다.


천제연 폭포를 오르다 보면 스치고 지날뻔한

중문면 4ㆍ3희생자 위령탑을 볼수있다.

빼어난 경관으로 알려진 곳은 대부분 학살터다.

희생자 수 만큼 이나 제주 곳곳엔 이런 위령탑이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알려진 제주 중문의 이면에도

800여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위령탑 비문엔 죽어가면서 자식들에 대한 걱정으로

눈 감지 못한 영혼들에대한 위로가있다.

~당시 기적적으로 살아난

10살 배기 어린 자식들은 박해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내 오늘의 아름다운 제주를 일구었고

공동체를 복원시켰다고 편히 눈 감으시라고...~


단재 신채호선생의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거창한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주의 이면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잡지의 카피처럼

담담함으로 만났던 것이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수일이 지난 지금도 어느 노파의 증언 인터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제주 공항 활주로 밑에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시신이 있을 거라고 어린시절 까치발을 하고 담 밖의 살상을 목격했다고 당시 가장 피해가 많았던 장소라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떠나고 내리는 활주로 이면 그건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될 제주의 아픈 이면이다.

59년 돼지띠 이성수 취미는 나의 글 끄적이기 우리 소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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