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걱정”…박삼중 스님과의 단독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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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북 경주 자비사에서 만난 박삼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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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거 우리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일본인 개개인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요.”


경북 경주 자비사에서 만난 박삼중 스님의 첫 마디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과 재일교포 재소자 교화 활동에 힘써온 스님은 올해 4월부터 이 절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


2019년의 마지막 달력 한 장이 뜯겨 나가기 3일 전인 11월 28일, 스님이 계신 경주로 향했다. 스님을 찾아간 건 최근 이 절에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을 기울인 한 일본인 스님의 유품 봉안식이 거행됐기 때문이다. 박삼중 스님과의 인연도 궁금했던 차였다.


경주 남산 자비사에서 박삼중 스님 만나


경주 남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자비사에 도착한 건, 낮 12시 무렵. 대웅전 법당에서 주지인 현도 스님을 먼저 잠시 뵙고 삼중 스님이 거처하고 있는 삼중정사(三中精舍)로 향했다. 현도 스님은 삼중 스님의 상좌(上佐: 큰제자)라고 한다. 정사가 있는 경내 중앙에 9층짜리 탑 하나가 보였다. 일본인 스님의 유품이 봉안된 탑이었다.

<사진= 삼중 스님의 활동이 담긴 복도의 액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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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에 들어서자 삼중 스님의 식사를 돕는 여신도는 “스님이 곧 점심 공양(식사)을 하러 나오신다”며 “스님은 연로한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잠시 후, 몸이 불편한 스님이 공양을 위해 식탁으로 걸어 나왔다. 풍채 좋던 그 옛날의 스님 모습은 아니었지만, 얼굴색 만큼은 맑아 보였다. “사리탑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소개하면서 스님이 식사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스님이 드시는 반찬은 두부와 백김치 등 흰색 일색. 여신도는 “스님은 30대부터 당뇨가 있었다”며 “6년째 이틀에 한번 씩 투석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밥의 반을 덜어낸 스님의 식사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공양 후 서재로 이동한 스님은 먼저 보청기를 귀에 꽂았다. 비록 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분명하고 또렷했다. 스님은 아직도 한 달에 한번 씩 서울로 교화 활동을 다닌다고 했다.

<사진= 일본인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유품이 안장된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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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님의 머리털이 사리탑에 봉안된 이유


삼중 스님에 따르면, 11월 17일 일본인 가키누마 센신(枾沼洗心·1932~2009) 스님을 추모하는 사리탑 제막식이 자비사 경내에서 열렸다. 9층 사리탑의 상단에는 후쿠오카의 사찰 난죠인(남장원; 南藏院)에서 갖고 온 목련존자 등의 사리가 봉안됐고, 하단에는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유품(머리털)이 안치됐다고 한다.


“16년 전 세계 최대 청동와불이 있는 남장원에서 사리 일부를 모셔 왔어요. 또 10년 전엔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모발도 가지고 왔어요. 그동안 바빠서 상좌인 현도 스님에게 그것들을 맡겨 뒀는데, 얼마 전에 현도 스님이 봉안식을 하자고 했어요. 아마 한국에서 최초로 일본인 승려를 추모하는 사리탑일 겁니다.”


가키누마 센신, 그는 도대체 누구이길래 죽어서까지 한국에서 추모되고 있는 걸까. 삼중 스님은 “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한국에는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일본에서는 배척받은 분”이라고 했다.


“요즈음 한일 관계가 너무나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스님의 추모 사리탑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스님은 한국인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신 분입니다. 일본이 탈취해 가서 야스쿠니신사 한켠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비(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념한 전공비)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했고, 귀(耳)무덤과 코(鼻)무덤을 한국으로 이장시켜서 영혼을 달래게 하는 데 도움을 준 분이지요.”

<사진= 1989년 무렵부터 가키누마 센신 스님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삼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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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귀무덤을 한국으로 가져오는데 도움


삼중 스님이 가키누마 센신 스님을 처음 만난 건 1989년 무렵이다. 삼중 스님이 쓴 <박삼중의 인연 이야기1, 다시 태어나면 스님 안될래>라는 책에 의하면, 당시 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도쿄에서 ‘세계만국평화회’라는 사무실을 열었다. 삼중 스님은 한국뿐 아니라 재일교포 재소자들의 교화 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였는데, 일본으로 교화를 가는 도중에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사무실을 들르게 됐다고 한다. 삼중 스님은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가케루마(가키누마를 당시에 삼중 스님은 이렇게 적었다)는 일본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교토의 귀무덤을 한국으로 모셔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가케루마는 뜻밖에도 그 일이라면 자신이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239쪽 인용)


자비사에서 봉안식이 열린 11월 17일은 가키누마 센신 스님이 열반한지 10년 되는 기일이었다. 두 스님이 수십 년간 이어온 ‘인연의 층(層)’은 자비사의 9층탑으로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삼중 스님은 법문과 사형수 이야기에도 적잖은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강원도 산골 분교의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은 한 사형수의 사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스님은 여신도에게 염주 2개를 갖고 오게 했다. 스님이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는 1989년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당시 26세)의 것으로, 금강경 법문이 적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스님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난 이의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이 염주 2개가 내 삶의 가보와도 같다”고 했다.

<사진= 삼중 스님의 서재 탁자에 놓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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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끼누마 센신 스님의 자서전


삼중 스님에겐 남 모르는 세속의 개인적인 사연도 있다. 서대문 교도소 담장 근처에서 태어난 스님은 책에서 “내 어머니는 서대문 구치소 교도관이었고, 내 여동생도 교도관이었다”고 했다. 책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훗날 내가 교도소 재소자 교화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그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인연의 끈이 너무 질기고 단단했다.>


거동이 불편한 삼중 스님의 두 손을 마주잡으면서 2시간 가량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굳이 묻지 않고 듣기만 한 자리, 그래서 더 귀를 열어 놓을 수 있었다. 삼중 스님에게 한일 관계의 다리를 놓았던 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영원한 도반(道伴: 불법을 닦으면서 사귄 친구)일 터.


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자서전에서 “참회를 통해, 한일 간 진정한 상호 이해를 이루고, 친선을 통해 과거의 어둠을 걷어내야 한다”고 썼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경제적 도반’이 될 수 있을까. <경주=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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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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