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지금의 나는 지난 날 우리의 추억이란 것이 형벌 처럼 가혹하다. 한번은 가로수 길 까페에서 친한 선배와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데 밀크티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어 덜컥 마음이 내려 앉았다. 나는 이제 속이 쓰려도 쌀국수를 먹지 못하겠다. 좋아했던 간식 프레즐도 먹을 수 없고 2호선 아현역을 지나 이대역을 통과하는 2분 동안 숨이 막힌다. 날 좋은 봄이 와도 덕수궁 미술관 벤치에는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권진규의 작품을 좋아하는 내가 그의 전시를 다시는 보러 가지 않겠노라 생각한 것은 단지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 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예술의 전당 자판기는 더 이상 나의 동전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부자다. 북촌을 걷는 일은 이제 좀 처럼 쉬운 일이 아닌 일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서 마음이 두고 두고 애달프다 말한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어도 잊지 못하는 나를 보는 지인들을 보기가 두렵고 내 마음을 숨기는 일이 거북하여 누구를 만나도 나는 나다워 질 수가 없어졌으니 마음이 차가워진 나는 오해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어 버린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합정역에서 신촌, 이대를 지나는 길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눈 앞이 캄캄했다. 그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 가는 길 짙고 무거운 파노라마가 나를 찢고 지나갔다. 눈물이 없는 내가 A.i 데이빗 처럼 처절하게 울었으니 하늘에서 나를 보셨을 외조부께서는 마른 침을 삼키셨을거다. 이제 누구와도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땅이 없어진 나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해두자. 쉽게 사람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작년 이 무렵 겨울이 겨울 다울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갈 곳이 많았었기 때문이었지도 모르겠다. '전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