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 긴 코스를 달려 해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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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2주를 넘기면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하철은 탈 엄두가 안 나고 버스의 이용도 만만치가 않아서 웬만한 거리는 트호티네뜨을 이용해서 다니고 있다. 집에서 30분을 달려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10분을 달려 정상 운영을 하고 있는 올림피아드 역으로 간 다음 14호선을 이용해서 마들렌역으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또 트호티네뜨를 이용해서 주변 지역을 방문하여 볼일을 보고 오는데 오는 길에 지하철 타기가 쉽지 않아 또 한참을 이곳저곳 헤매다 보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말 녹초가 되어버린다. 시내를 달릴 때는 정말이지 유용한 트호티네뜨지만 어느 상점이나 마트, 도서관 같은 실내에 들어갈 때면 커다란 짐이 되어 버린다. 하루 종일 어깨에 이고 쇼핑을 하거나 구경을 하거나 하다 보면 밤에는 우리도 모르게 신음을 다 낸다. 


오늘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었다. 그리고 나면 2주간의 바캉스 기간이 시작된다. 2주 동안은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또 그런 채로 새해를 맞게 되니 좋은 연말을 보내라고 인사라도 하고 오자며 꼭 가겠다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아침에 몸이 좋지 않아 결국 파티도 인사도 없이 방학을 맞아 버렸다.  점심을 먹고 창을 열어 보니 날이 아까울 만큼 좋았다. 시간이 이미 오후 위를 지나고 있어 멀리 갈 엄두는 안 나고 그냥 운동 겸 조금 떨어진 마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서 트호티네뜨로 10분 정도를 달려서 가면 있는 까르푸는 크기가 꽤 크다 보니 필요한 물건들만 간단히 사서 나오자고 했는데 나와보니 그만 해가 다 지고 있었다. ‘하루가 이렇게 쉽게 가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우울감이 찾아왔다. 괜히 풀이 죽어 있는 나를 엠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하루를 그리고 한 해를 보내는 것들을 보면 한심해 보일 때가 많았다. 낮에 주말에 그리고 저녁에 그들이 가만히 누워서 티브이만 보거나 잦은 잠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 하며 고갤 젓곤 했던 거지.  하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고 삶이라는 것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끌어안고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주 주저앉고, ‘가야지 가야지’ 하며 겨우 일어나 돌아보면 어느새 해가 땅의 턱에 걸려있는 일이 잦아졌다. 하루를 유지하는 것. 그 자체가 만만한 일이 아니구나. 우리는 너무 쉽게 허기를 느끼고 한 시간이나 걸려 만든 음식은 10분이면 다 먹어 버리는데 그 대단한 것들이 우리의 허기를 막아주는 건 또 고작 한두 시간뿐이다. 식사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마트에 가고 빨래를 하고 몸처럼 자꾸 고장이 나는 물건들이나 집들을 겨우 붙잡아 매고 그런데다 하루를 몽땅 써버리고 남은 동전 몇 개로 커피를 타 와서 라디오나 듣고 하셨구나.

파리에까지 와서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비단 나와 엠마뿐 아니라 꿈을 찾으러 대단한 결심과 여러 선택을 하고 여러 고집과 의지를 부린 덕에 이곳까지 온 많은 친구들이 또한 그러하다. 단지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를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고 있다. 우리가 대단해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지.  파업 때문에 결석이 잦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학교를 가게 되는 날은 마음을 먹고 파리의 중심부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게 되는데 지난 화요일은 날도 좋고 해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보기로 했다. 뛸르히 정원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기로 했는데 방향을 착각해서 샹젤리제 거리까지 가버렸다. 잘못 온 김에 산책 겸 개선문을 들렸다가 돌아가는 길에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리기로 했다.
 콩코드 광장에서도 육안으로 보이던 개선문인데 막상 가보니 거리가 꽤 되었다. 가는 길에 크리스마스를 맞아 크게 세일을 하는 상점이 있어 엠마를 들여보내고 나는 거리에 서서 개선문 사진을 찍고 거리 공연을 하는 남자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점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상점을 나오는 사람들의 양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엠마는 맘에 드는 옷이 있었지만 막상 사려니 마음이 불편한 지 내게 거듭 전화를 했다. 나는 괜히 기다리기가 힘들다며 얼른 사서 나와달라고 졸랐고 엠마는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겨우 쇼핑백 하나를 든 채 내게로 걸어왔다. 괜히 불필요한 것을 산 건 아닐까 자꾸 걱정하고 눈치를 보는 엠마의 모습에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개선문은 도로 공사를 하고 있어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마침 좋았던 날씨도 흐려지고 있어 우리는 개선문의 전망대에 오르는 일은 봄쯤으로 미루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크리스마스 마켓 향해 달렸다.

뛸르히 정원에는 작고 예쁜 인공호수가 있었다. 호수라기보다 연못 같은 그 주변으로 철로 된 안락의자가 쭉 깔려 있었다.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진짜 편해.” 연신 손짓을 하는 엠마의 곁으로 가 앉으니 정말로 편안함이 느껴졌다. 작은 연못 뒤로 긴 산책로가 나 있고 그 주위를 큰 나무들이 둘러 있었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뿐이라 쓸쓸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봄이나 여름이면 무척 아름다울 것 같았다. 바람이 꽤 불어 연못 위에는 끝없이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스링크 위에 선 피겨선수인 듯 바람에 일어난 물결이 매우 유려하게 연못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구름은 하늘 위에서도 또 연못 위에서도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뛸르히 정원과 다르게 크리스마스 마켓은 별다르게 신기한 것도 살만한 것도 없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가 가장 많았고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 작은 아이스링크 위에서 서로 넘어뜨리면서 웃어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일 예뻤다. 프랑스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꼭 작은 아이스링크들이 있고 또 그 작은 얼음이라도 타려고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선다. 하얀 빙판 위에 하얀 웃음들이 미끄러져 갔다. 뭘 사 먹지도 뭘 사지도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끼며 산책 겸 천천히 마켓을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우리는 또 긴 코스를 달려 해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글, 이미지 레오 2019.12.20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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