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오는 귀신썰) 할머니한테 들은 증조할머니 이야기 -2-

너무 글이 길고 스펙타클하거나 재미 요소는 없어서 혹시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몇 년을(!) 못 가져온 글이었는데 좋아해 주니 다행이다.


오늘도 이야기 계속 해서 같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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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과나무와 문둥병 귀신


모과는 생으로는 먹을수 없는 과(果)실이야. 대신 약재로 쓰거나 잘만쓰면 효용성이 무궁무진해. 입덧이나 설사 감기에 아주 뛰어난 효능을 보였고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통증을 완화 시키는데 탁월하단 거지, 술을 부어 숙성시켜서 먹으면 몸에 열도 오르고 통증완화 효과도 뛰어났어. 목에 좋아서 모과라고도 불렀고 설화중에 성호라는 스님을 공격하던 뱀이 떨어진 모과에 죽었다고 성호과라고도 불렀다네. 울퉁불퉁 못생겨서 심성이 못난사람을 모과심성이라고 놀리기도 했대.


점촌 흥덕동에는 모과나무가 마당에 한 그루 씩, 집집마다 많았다고 해. (지금도 모과나무 있는집 몇집 있더라.)


1930년대 입춘이 좀 지나 춘화가 활짝 필 무렵에 증조할머니의 친가가 상주 양진당쪽에 있는 오천석꾼(썩 부유한 집안을 지칭함)이셨는데 그 집 못에서 수 년간 키우던 잉어가 다 죽어버려서 흉험한 일이 생길까, 증조할머니를 불러서 제를 올렸다고 해. 못 물도 다 퍼내고 새로 갈아낸 후에 연꽃하나 띄우고 새로 잉어를 풀었다고 해. 친가쪽 집은 잘살아서 사례로 쌀 한섬하고 가는길에 2마리가 노새가 끄는 마차에 태워보냈다는데.(당시 교통수단은 대부분 말이었다고 해. 알아보니 목탄자동차? 이런것도 있는데 나무를 태워가는 자동차라... 신기하네)


돌아가는길에 양진당쪽 마부 어르신 한 분하고 말굽갈이(말의 굽을 갈아주는 일을 하는 분)청년 한 명과 증조할머니 이렇게 셋이 오게 됐어. 근데 그 말굽갈이청년이 가려움증이 심한지 오는 내내 자신의 배고 목이고 등이고 벅벅 긁어대더라네. 증조할머니께서 걱정이 되서 마차를 세우고 길퉁이에 쑥이랑 개망초풀을 따다 갈아선 발라줬다고해. 그래도 차도가 좋지못해서 결국 마차안에서 쓰러져 버렸대. 증조할머니댁에 도착과 동시에 되돌아가지 못 하고, 치료를 받게 됐어. 집에 있던 증조할아버지와 마부가 쓰러진 말굽갈이 청년을 들어다가 빈방 한켠에뉘였어.


날이 지나고 보니 긁은 곳은 살 안에서 구혈이나고 곪아버려 상처가 흉하고, 고통이 끔직한지 말굽갈이 청년이 밤낮으로 잠을 못 자길래 증조할머니께선 모과로 술을 담궈서 먹였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내 편안해졌다고해. 통증이 가라앉고 술 덕에 열이 올라오면, 냉수를 담아둔 장독대 뚜껑을 들어내 말굽갈이 청년 배에 올리고 열을 식혔다고해. 그러니 겨우 잠을 잤다고...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차도가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오후만 지나면 또 가려워서 난리도 아니었어. 결국 담궈둔 모과주를 두통이나 더 꺼내놓고 머리맡에 두니 아플때마다 꺼내먹고 겨우 잠을 청하고 했다고 해. 마부어르신은 덩달아 몇 일 묵다가 조상님 산소 이장문제 때문에 결국 노새 한마리를 풀어두고 다른 한마리를 끌고 되돌아 가 버렸어.


증조할아버지는 흥덕장에서 소금장사를 하셨기에 일찍나가셨고, 증조할머니는 별다른 일도 없고 말굽갈이청년이 동생같아서 정성으로 돌봤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보기에 청년이 몸이 약해지니 영기마저 약해져갔다고... 낮이면 호박속을 풀어 치대고 귀한 갑오징어 뼈가루(문경은 남한의 거의 중심이라 삼면어디든 바다가 멀어서 귀했음)랑 삼베에 넣고 짜서 나온 흰 진액을 상처부위에 발라주고 밤에 자는데, 허해진 청년보고 행여나 잡귀라도 붙을까, 복숭아나무를 태워낸 숯가루를 빻은 쑥, 적상추와 함께 물에풀어 말리고 뜸을 태워서 잠도 재우고 잡귀도 쫒았다고 해.


그렇게 일주일도 안 지나니 상처는 많이 아물고 몸도 꽤 회복됐어. 증조할머니께서 보시더니 "이제 괜찮아지신 것 같은데,  마부 어르신 걱정하실라 가봐야 되는거 아닙니까." 했더니 아녀자 앞에서 웃통을 들춰서 아직 상한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덜 나았습니다. 이거 보세요 쌀겨같은 것들이 수두룩빽빽히 있잖습니까." 하곤 아프다면서 모과주를 꺼내 마시고 빈둥빈둥 거렸어. 당시 증조할머니께선 젊은처자였는데 낯뜨거워하곤 알겠다고 했지.


하루는 증조할아버지가 일이생겨 왜관으로 갈일이 있었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대신 장에 나가 소금팔게 됐어. 곶감아가씨가 소금을 판다고 소문이 나서 애기들이 와서 곶감도 얻어가고 부모들이 와서 소금도 팔아주고 장사가 생각외로 수월했다고 해.


해가 기울고 기분좋게 댁으로 돌아오니 집 앞에 호롱불을 들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는거야. "무슨 일입니까?" 하니 "아이고 왔네, 왔어."하고 그 무리중 한 할머니 한 분이 핼쓱한 표정으로 증조할머니의 양팔을 다급하게 잡더라는거야. 알고 보니 자기들은 건너 건너사는 가족인데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찾아달라고 하셨다더라. 처음엔 자신만 본 줄 알았는데 가족들이 하나같이 봤다는거야. 아무리 잡귀로서니 사람을 잡아간 다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어서 '혹시 그 손녀가 기가 허해서 영이 들려서 나갔거나, 몽유병이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신기가 있어서 신내림을 느낀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사람들 집으로 가 봤다고 해.


웬 커다란 모과나무 한 그루가 마당에 있는 집이었대. 집안에 나쁜 영은 보이지 않고, 그 집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어디가 영기가 강한가... 싶어서 둘러보니 히끄무레 잘 보이지도 않는 오래된 영들이 나무를 타고 놀고있는데 해로운 영도 아니고 달콤은은한 모과향을 맡고 모인 동자들이었다네.  증조할머니가 나무를 스윽 만지니 따듯한 것이 괜찮았다고, 심보가 못 된 영이나 잡귀라면 시리도록 찬것이 송연하다고 그러더라. 


그집 가족은 마을사람들 대동해서 송진에 불을 태워 횃불을 들고 아이를 찾으러 나가고, 증조할머니는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호롱불을 들고 아이를 찾는걸 도우러 나가려는데, 말굽갈이청년의 신발에 왠 흙이 많이 묻어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청년방에 문을 열어보니, 청년은 웃통벗고 자고있는데 다 먹어가는 모과주가 한가득 채워져있고 방안은 술냄새로 가득했다고 해.


그래서 말굽갈이청년을 깨워다가 흔들어 묻는데, 술에 진득허니 취해서는 정신이 있나. 대답도 못하고 헬렐레 하고 있어서, 증조할머니가 느낌이 이상하여 따귀를 살짝 때리니 조금 정신이 들더래. 그래서 냉수한사발을 들고와서 어디다녀왔냐고 하니 기억이 없다고 하더래. 자신은 잠만 잤다면서, 요전에 매번 아플때마다 모과주를 마시더니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취해있는 시간이 많았던 탓인지 청년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정신도 못차렸어. 그래서 옷을 입게하고 세수를 하게한 뒤, 청년도 같이 횃불을 들고 나섰어.


증조할머니께서 나간 사람들이 아이를 찾았는가 싶어서 청년과 함께 그 집으로 가 보니, 모과나무에 놀던 동자령들이 악귀같은 표정을 짓고는 말굽갈이청년을 경계했다고 해. 증조할머니는 이상하게 여겨서 "당신 여기 온적 있지요?"하니 청년이 화들짝 놀라면서도 "처음 와보는 곳입니다."하고 얼버무리더라네. 수상쩍은 증조할머니께서 지레 겁을 주려고 "지금 여기 모과나무에 사는 목신령이 당신을 등에 올라타 죽일듯 목조르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했대. 


그러자 말굽갈이 청년이 겁을 잔뜩 먹더라는거야. 증조할머니께서 예삿 보살이 아닌걸 알고 있어서인지 더욱 그 말이 와 닿았겠지. "실은 아가씨 댁에 모과주를 다 먹은 것이 죄송하여서 몰래 모과서리를 하러 왔었습니다"고 했어. 아까 모과주가 다시 가득 차 있던게 납득이 됐지. "그게 다에요?" 하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등에 붙은 귀신좀 때주십쇼."하고는 서둘러 집을 나가려고 했대. 할머니는 대충 거짓으로 손을 휘저어 간이적으로 읍을 하는 척 하고는 청년과 집을 나섰대.


밖에 나오니 마을사람들이 애를 들쳐업고 오는데 증조할머니께서 어디서 찾으셨냐고 물으니 "담벼락 뒤에 하천이 있는데 거기에 버려져 있더라."면서 업은애를 보여주는데 호롱불로 살펴보니 머리에 돌 같은걸로 찍었는지 움푹패여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옷은 어디갔는지 애비가 웃통을 벗어 애기를 둘둘 감았어. 애가 간신히 정신이 들어서 말굽갈이 청년을 보더니 기겁하면서 거품을 물더니 발발떨면서 하는 말이... 증조할머니의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대.


그 여자아이는 열세살 즈음 돼보였는데 자신과 다섯 살배기 동생이 모과나무밑에서 모과를 줏으며 놀고있었는데, 저 아저씨가 넘어왔다고 해. 상처가 곪은 곳이 아물어 흉측한 상처가 여기저기 나있는 사내가 담을 넘어 들어오니 얼마나 겁이 났겠어? 근데 술냄새가 썩은내처럼 진득하니 풍기고 기이하게 비틀비틀거리니까 설화로 듣던 문둥병귀신인가 싶어서 놀라서 소리를 빽-지르니 가족들이 나오는데 말굽갈이 청년이 퍼뜩놀라서 모과를 들어서 머리에 찍어버리고는 들쳐업고 그대로 줄행랑을 친거야.


문둥병 귀신이 애를 업어갔다 면서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말이 나온거지. 마을사람들이 금세 뒤쫒아 나왔는데 가로등없는 시절에 밤길도 어둡고 골목이 좁아 금새 놓치고 말았다고,


그뒤로 기절해 있던 소녀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치마는 벗겨져 있고 아랫도리와 젖가슴은 시퍼렇게 멍이들어서 아팠다고 해... 너무 겁이나고 주위는 어둡고 무서워서 숨죽여있는데, 횃불소리랑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니 사람들이 찾아낸거야.


그 얘길듣고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저 청년에게 강간을 당했다는걸 알 수 있었어. 말굽갈이 청년은 도망가려했고 마을사람들은 쫒아갔는데 말굽갈이 청년이 성급히 도망가다가 그 집 모과나무 가지에 찔려버렸어. 목에 피분수가 이는걸 부여잡고 나뒹굴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적삼을찢어 목을 감고는 마을사람들이 매질을 하려는걸 말렸다고... 나무에는 동자령들이 나무가지를 부여잡고 킥킥거리고 웃는 것을 보았다고하는데... 사람들에게 말하기엔 섬뜻한 얘기라 하진 못했다고...


날이 밝고 말굽걸이청년은 순사에게 잡혀갔고, 잡혀가면서도 "그년이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니... 계집질할때 시체랑 한 것은 아니었네" 하면서 포악한 내면을 들어냈다고 하네. 마을사람들이 문둥병귀신이 붙어서 저렇게 포악해지고 몸도 저리 변했다고 하더라. 증조할머니께서는 집안 손님이란 것을 사과하고 우리 집안 가족은 아니고 사람을 들여 일을하던 청년이라고 설명해주고는 거듭 사과했다고 해.



7. 견탄리 우물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에는 큰 우물이 하나있어. (2012년에 군부대 확장으로 사라졌지만 거의 100년동안 맑은물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좋은 식수원이었다 함.)


1912년도즈음 만들어졌다는데, 물이 말라서 31년도 여름 즈음에 이전을 했다고 해. 새로 준공한 곳은 지하수가 잘 올라오는 산골이어서 물 마르는 일은 없었다네. 150가구가 훌쩍넘는 동네여서 그런지 우물이전을 잘 치루고 마을 전체가 모여서 잔치굿을 벌였다고... 증조할머니께서 빠질 수 없잖아? 무속인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동향사람들 경사인데 가서 차림도 도와주고 굿판도 구경하고 또 잔치한다고 모셔온 사당패가 흥을 돋우고 나니, 시골에서 볼거리는 흔치않은데 좋은 볼거리들 이었지.


풍물한마당 하고나서 절차로사당패와 어우러져 무당들과 증조할머니도 같이 지신밟기(지신굿, 터굿 이런걸로도 불리는데  마을을 보살피는 터의 신, 즉 지신을 모시고 마을에 흉없이 잘되게 해달라는 액막이 굿)굿을 했어. 다들 흥이나서 탁주 한사발씩 들고 지신밟기 민요에 맞춰서 춤도 추고, 동네 애들은 우물가에 모여서 등목도 하고, 두레에 물을 퍼다가 물장난도 치고, 참 신명나는 잔치굿이었다고 해.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서 증조할머니께서도 우물물을 퍼다가 마셔보니 시원한게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번쩍들더래. 물이참 좋다고 마을사람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이유를 알게 됐지. 무릇 좋은 터라는게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마을의 길복이구나 하곤 잔치가 끝나고 뒷정리를 도우는데 쏴아아- 하고 비가 왔어.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그리 넓진 않은게 소나긴가 싶으셨지. 


아낙들이 서둘러 애들을 부르니 놀고있던 애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서 집으로 뛰어가는데 웬 남자아이 하나가 안 일어나고 그자리에 가만히 있는거지. 증조할머니께서 걱정이 돼서 다가가는데 아이가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웬걸 이목구비가 위치가 뒤틀려버린 얼굴은 퉁퉁 불어 새카맣고 손발톱은 다빠져있고 옷도 헤져서 넝마가 따로 없을정도였어. 증조할머니가 화들짝 놀라서 바닥에 채이는 자갈을 틱-틱 하고 던져 보니 응당 사람이라면 움직이는 자갈을 따라가야할 아이시선이 미동도 없고 자신만 뚫어지게 보더라는거야.


'터지기(지박령 개념인데 약간은 다름)구나.' 순간 생각해보니 아까 전부터 아이들이 놀던 곳에서 같이 섞여 자연스럽게 놀고있었다는걸 깨닫게 됐어. 물론 아이들이 저 터지기아이를 보고 같이 논것은 아니었고 한데 섞여 있던 것 뿐이지만...


한참을 증조할머니를 쳐다보더니 논두렁사이로 토란이 우거진 흙길로 사라졌어. 다급히 정신을 차린 증조할머니께서 비를 피하기위해 잠깐 포목점(비단 이불 한복을 만드는 가게)안으로 들어갔어. "실례합니다. 흥덕에서 온 보살이온데 비 좀 피하겠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네니 후덕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었어. "하이고 젊은보살님이 고생이 많았네. 얼른 들어와서 감주(식혜 비슷한 곡주)라도 한 잔 들어." 해서 감주담긴 대접을 받고 들어가보니, 안에는 아까 잔치굿판에서 보았던 사당패몇명이 탁주에 편육을 마시고 흥을나누고 있고 이 마을에 살고있는 무당이 증조할머니께 이상한 느낌을 받으셨는지 홱하니 처다보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쓴웃음을 지으시며 "죄송합니다. 제가 모시는 분이 신기를 잡아먹는 공험이 있으셔서 ..." 하니 무당이 거리를 벌리고는 먼 발치에서 "잡신을 모시면 그럽디다. 조심하시요. 그러다가 당신 영까지 홀라당 먹힐수도 있우."라고 사납게 받아치셔서 증조할머니께서 멋쩍어 하셨다고 해.


감주가 달달하니 시원달콤해서 맛있었다고 해. "주신 감주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뭐 하나 여쭤봐도 될런지..."하고 증조할머니께서 포목점 아주머니께 여쭸어. 자신의 앞섬을 손날로 가리키면서 이 만한 아인데 머리는 길게 잘 땋고 옷은 검은 저고리를 입었다고 만 말하고 뒤틀린 이목구비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 그런데 아주머니가 먼저 "하이고 젊은 보살이 용하긴 용한가보네, 혹시 보셨다는 그 애가 눈 코 입이 요래요래 이상하고... 맞죠?"하고는 자신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집어서 보여주었어. 자신은 심각한데 말야.


이어서 아주머니가 들려주신 사연인 즉슨, 평소 마을에 그 아이귀신을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말로 시작됐어. 처음엔 다들 무서워 했는데 해코지를 하지도 않고, 마을에 초로한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집은 집이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그 아이 아비가 술과 도박을 좋아하고 도박하다 재산도 날렸는데도 정신 못차리고 가끔 넘의마을에서 소도 훔쳐와서 그걸로 도박하다가 나중엔 걸려서 잡혀가버리게 됐는데, 남은 여인네가 도박 빚이며 소 값이며 품팔아 갚아 나갔다고... 그래봤자 얼마나 되겠어. 빚은 끝도없고 당장 애 먹일 밥도 없어서 그만 자살을 결심한거야.


우물물이 마르지 않았을 적에는 우물이 깊어도 물이 높게 솟아있어서 빠져죽기도 힘들고, 일부러 죽자고 작정하지 않는이상은 빠져도 나올 수 있는 그런 우물이었다고 해. 그런데 우물이 마르고 수심이 사라지니 빠지면 나올 수도 없을만큼 깊어져서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테지. 우물물이 말라서 아무도 사용도 안 하고 관심도 없던 찰나에 사고는 터졌고, 당시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애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애랑 애미랑 우물안에서 죽어있었는데 비가 온날에 조금씩 차오르던 물이 시체썩은물이 되서 새카맣게 변했고 시신들은 그 새카만 물에 간신히 잠겨있어 퉁퉁 불어터져서 보기 흉했다고 해. 애 우는소리는 어디서 들린건지 알 방법도 없이 마을사람들이 겁을 먹고는 빨리 장을 치루고 제를 지내야겠다고 두레줄을 타고 내려가 시신을 꺼내려는데,


애 어미는 떨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져 죽은 것 같고, 애는 어미가 안고 떨어졌는지 사지는 멀쩡했는데 얼굴이 불어서 뒤틀려버렸어. 혼자 살아남아서 나오려고 발악을 한 것 같이, 우물 벽면에 손톱자국이 수도없이 나있고 애 손톱은 다 떨어져 나갔다고 해. 얼른 시신을 꺼내서 장을 치루고 성불제를 지냈지만, 유독 비가오는 날이면 불어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손톱빠진 아이를 우물가에서 자주 목격했다고, 처음엔 해코지를 할까 겁이났는데 그냥 사람구경만 하염없이 하다가 사라지곤 했다는데. 증조할머니가 듣고는 "아이가 터지기가 되서 자리를 못 뜨는 것 같습니다." 하고는 자신이 제를 다시 올려보겠다고 했어.


비가 그치고 각집에 들어 비를피하던 사람들이 속속이 나왔는데, "하이고메 이게 뭐꼬? 또 이라네 또이래."건너 집에 있던 아주머니가 기겁을 하고 울상을 지었어. 증조할머니께서 우물쪽을 처다보니 썩은내 나는 검붉은 물이 바닥에 왈칵 쏟아져 있었는데 백발성성한 노인이 한 분 나오더니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보고는 "괜찮타 물은 멀쩡해. 분명 노름좋아하던 박서방네 자식놈이 장난을 친게야. 지놈 죽을때 썩은 물로 우물에 장난질을 친걸게야."라고 누구 들으라는듯 사방을 주욱 둘러보고 으름장을 놓았어. 그때 아까 증조할머니께 살갑게 대하던 무당 한 분이 나와서 "이건 잡귀가 지신을 이겨먹고 자신이 지신자리를 차지할려고 수를 쓰는겁니다." 하곤 재차 굿판을 벌이길 강요했어.


이틀이 지나고 마을사람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 다시 굿판을 열었어. 비만 오면 툭하면 검붉은 물이 흘러나왔고 식수원이 오염될까 조마조마하던 사람들이 이런 일이 없어지게 할 수 있다는 무당의 말을 철썩같이 믿은거야. 증조할머니께서는 생각이 달랐지만 지켜보기로 하고 보는데, 무당이 위령제(죽은 넋을 기리는 제)를 지낸다고 우물앞에서 향을 피우고 제를 지내고 지신밟기를 한 곳에서 천신제를 또 올린 거야. 당시 증조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 '이 마을 터의 지신이 분명히 있는데 굳이 하늘신에게 제를 올려 마을의 안위를 기원하는 것은 터신에 대한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거지. 아무튼 굿으로 벌이는 제는 절정을 향해가고 접신을 통해 제를 올리는 무당의 무속적 방언과 무령의 소리(무당방울 혹은 칠성방울이라 불리는 방울여러개가 달린 노리개모양)가 극에 달하자 무당은 땀을 닦아내고 한 숨의 읍으로 굿을 마쳤어.


당분간 비도 오지않고 우물물도 괜찮아서 다 좋아진 것 같았어. 워낙 미신적인 것이 명백한 확증이나 증거가 없다보니. 증조할머니께서도 '그 무당이 천신제를 올린 까닭이 아예 비구름이 오지 않도록 함인가' 할 정도로 쨍쨍한 날만 이어졌다고 해. 그런데 그건 착오였어. 장마대비 먹구름들이 한껏 모이기 위한 전초였던거지.


이윽고 장마가 터졌고 하늘에 구멍난 듯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두렁이고 밭이고 다 물바다가 되서 쓸려가는데 견탄리도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서 증조할머니께서 두어시간거리를 옹기집 총각도움으로 마차를 타고 단걸음에 가 보니, 사람들이 난리가 나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더라는 거야. 우물은 넘쳐서 검붉은 물이 왈칵왈칵 쏟아졌어. 증조할머니께서 뒷머리 느낌이 사이해서 돌아보니 일전에 아이가 사라진 논두렁사이 토란잎이 주욱난 길이 보였는데 거기에 그 검은 아이가 증조할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더라. 증조할머니께서 용기를 내서 다가가니 한걸음 물러서고, 또 다가가니 한걸음 물러서고. 그렇게 아이를 쫒아가다 보니 이전하기 전에 우물이 보였대. 막힌 우물뚜껑을 열고 안을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뒤를 돌았더니 아이는 온데간데 없었다고..


무슨 징조인가 싶어서 겁도없이 혼자 두레를 내리고 줄을타고 밑으로 내려갔다고 해. 다시 위를 쳐다보니 검은아이가 삐뚤어진 얼굴로 씨익 웃더래. 악귀가 자신을 이곳에 빠뜨릴려고 장난을 쳤는가 싶어서 소름이 돋고 겁이났지만, 섵부르게 판단하지않고, 주위를 살폈다고 해. 우물바닥에 흙자갈들이 아직까지 시체썩은내를 머금은듯 날이 습해지니까 악취가 스물스물 올라왔어. 우물벽엔 말로 들었던 손톱자국들이 수없이 아로새겨져있었고, 그러던와중에 바닥 한켠에 반쯤 파묻힌 금가락지를 발견하셨대. 훌훌 집어 털어 옷으로 잘 닦으니 예쁜 민둥가락지 였다는데 척 보기에도 혼례반지구나 싶어서 마음한켠이 아렸다고 하시더라.


듣기엔 도박빚도 소값도 갚을 여력이 안 되어 자살까지 결심했다고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혼례반지는 가지고 있었구나 싶어서 그랬다고 하셨어. 그나저나 다시 올라갈 방도가 막막했다고... 두레줄을 타고 내려올 땐 몰랐는데 올라가려니 빗물젖은 두레줄이 미끄럽기도 하고 가녀린 아녀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어서, 이걸 어쩌나.... 하고 있는데 몇분도 채 안 돼서, 같이 왔던 옹기집 총각이 증조할머니께서 여기로 오는 것을 보았는데 돌아오지 않으니까 와봤다가 빠진 것을 보고 꺼내주게 되었어. 두레줄끝에 연결된 두레박에 발을 올리고 서서 줄을 잡으니 옹기집 총각이 힘껏 당겨서 끌어 올린거야.


다시 사람들한테 돌아와서, 가락지를 보여주고 발견하게된 계기를 설명하니 여태 욕만하던 초로의 노인도 입을 다물고 죽은박서방네 마누라가 측은하다는 듯이 동정어린 말들을 하는 사람까지 나왔어. 증조할머니는 제를 다시 지내야 된다고 하시면서 일전에 포목점 방을 빌려 종이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소식듣고온 무당이 "무슨 절간 보살이 부적을 그리나."하고 비아냥거리며 보는데,


웬걸 증조할머니께선 부적을 그리신게 아니라 곱게 잘생긴 아이의 얼굴을 그렸는데, 초로의 노인이 그 것을 보고 한 눈에 "참 잘그렸어. 박서방네 아들이구만 뒤틀린 이목구비를 찾아줬네 그려"하고 손뼉을 쳤어. 얼굴을 그린 종이에 양초로 초칠을 해서 비에 번지지 않게 한 뒤에, 증조할머니는 비가 약하게 내리는 틈을타서 사람들과 같이 아이와 박서방네 부인이 묻힌곳으로 갔어. 제는 급하게 준비해서 초라하게 진행됐지만 사람들은 경건하게 읍을 했어. 포목점에서 준 비단에 반지와 아이얼굴을 그린 종이를 네번접어 조심스레 싸 묶고는 모자의 무덤옆에 묻어줬다고 해.


향하나가 다 탈정도로 읍을 한 뒤에 마을사람들과 마을로 돌아오니 검붉은 물들은 온데간데 없고 썩은내도 사라졌다고해. 마을사람들이 한 시름놓고 방안에 모여 탁주와 전을 부쳐 증조할머니께 대접을 하는데, 와중에 한 아낙이 비명을 질러 황급히 사람들이 달려가 물으니 우물에서 상체는 바싹마르고 다리는 물에 퉁퉁 불은 저고리가 새까만 아낙이 물에 둥실떠올라 밖으로 나오더니, 증조할머니께서 아이를 본 그 논두렁 토란길로 걸어가더라는거야. 그러더니 사라졌더래. 행여나 뒤를 돌아 자신을 볼까봐 조마조마했다고...


견탄1리 우물은 후에 산을깎으면서 모자의 무덤을 이장한 뒤에 또 비만오면 검붉은 물이 나왔다고 해. 무덤이 강제로 이장당한 뒤에 비만오면 박서방네 아이를 본 사람이 속속들이 생겼는데, 이목구비는 제자리였다고 하네.


이 우물은 무려 처음 준공부터 100여년간 마을 식수원을 담당했어.  2012년 군부대 공사로 인해 사라져버려서 지금은 없지만 비만 오면 나오는 검붉은 물, 이 일은 뉴스에도 실릴정도로 미스테리한 사건이야.



8. 보릿고개 아귀


1940년즈음 늦여름은 춘궁기 혹은 맥(麥:보리맥)령, 맥궁기(보릿고개를 이르는 말)가 가장 심하던 때 였어. 거기에 도시에선 산업재해까지 함께 터져서 서울부터 지방 끝가지 빈곤의 재해는 최악의 상태였지.


1940년대(일제말기)에 들어와서 수도권 쪽은 정책의 강화로 노동조건이 더욱 나빠졌고, 근로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는 물론이고, 근로환경은 아주 괴악하고 임금마저 쌀 한 되도 사기힘들었다고... 헌데 노동환경은 아주 가혹했고, 일하는 시간마저 하루 온종일 붙잡아 놓으니 식민지를 이용하여 이윤을 골수까지 빨아먹던만큼 일제에 대한 원성도 많이 얻던 시절이었고, 독립운동도 활발하던 그런 시절이었다고 해.


문경도 별 다를게 없었어. 그나마 잘 산다 하는 이들도 보리나 무, 감자따위를 섞어서 죽을 만들어 먹거나 잡곡 이나 쌀겨같은 것으로 싸래기밥을 해먹었다고 해. 이건 그나마 나은 편이야. 그 해는 장마가 너무 심해 추수도 제대로 못한 이들은 그야말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다고..


증조할머니께서는 전편에 말했듯이 상주에 사는 양진당쪽 친가댁이 오천석꾼(썩 부유한 부자를 이르는말)부모님에게 식량도 얻고, 증조할아버지께서 소금장사를 하셨으니 항상 간이 된 음식과 밥을 먹을 수 있었대. 흥덕쪽은 배산임수가 좋아서 장마피해를 거의 안 본덕에 다행이 마을 사람들도 괜찮게 연명하고 있었다고 해.


반면에 문경 영순쪽 사람들은 영순강이 장마에 범람해서 그해 식량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 했고, 종래에는 초근목피 같은 말마따나 나무껍질, 풀뿌리, 솔잎 등 으로 죽을 띄워 먹고, 더 심한 쪽은 옷을 해 입을 삼베마저 쪄서 먹고, 전단토나 찰흙같은 것을 쌀겨에 섞어먹기까지 했다고해. 오죽하면 쥐고기조차 귀해서 쥐가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하루는 "떡보살님 계십니까?"하고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넝마적삼을 입은 비쩍마른 사내 하나가 장작지게를 들고 증조할머니를 찾아 오셨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고 냉수 한 사발을 가져다 주니까,  벌컥벌컥- 단숨에 물 한대접을 비워버리곤 지게를 벗어 내려놓고 "보살님 저희 집 좀 도와주십쇼. 줄 것은 없고 질 좋은 참나무를 한 지게 가져왔습니다."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일단 들어와서 말씀 듣겠습니다." 하고 사내를 방으로 모셨다고 해.


사연인 즉슨, 자신은 영순에 살고있고 부인하나와 두 남매를 둔 장家 인데 이번에 영순 쪽에 흉년이 심해서, 먹을것도 변변찮아 하루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했어. 요즘 형편들을 잘 알고있던 터라 증조할머니께서 마음이 딱해져 듣고있는데, 장家 사내가 이어 하는말이 자신이 사는 곳이 영순강 근처 뱀산이라 불리는 작은 언덕 앞인데, 밭에 무와 배추를 키워 그것으로 간신히 연명을 하고 있었다고 해.


 그러던 차에, 하루는 밭에 나가보니 키우던 작물이 거의 다 뽑혀져 바닥엔 배추닢파리가 흐트러져있고... 멧돼지인지, 아니면 어떤 죽일놈이 이런 기근에 마을 이웃끼리 먹을 걸 훔쳐가나 싶어서 그날 밤에 숨어서 지켜보는데, 글쎄 삐쩍꼴아 기력도 없는 장녀가 새벽에 나오더니 밭에있던 무랑 배추를 뽑아서 그자리에서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닥치는대로 먹어 치웠다고 해.


장家가 놀라서 단걸음에 뛰쳐나가니, 장녀는 신경도 안쓰이는 듯 흘겨보고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마저 먹어대면서 지 애비를 처다보는데, 그 눈빛이 핏발이 불거져 눈은 튀어나올 것 같고 한 일주일 굶은 개가 먹이를 먹듯이 정신없이 씹지도 않고 삼켜댔다고... 장家가 가서 붙잡고 말리니 "이거 놔!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죽으면 나를 잡아 먹으려고 그러는거지!" 하면서 사납게 할퀴더래. 결국 그 자리에서 자신이 먹던 양의 서너배는 족히 먹고나서야 쓰러져 잠들었다고 해.


이상한 건 아침엔  기억도 못한 다는 것. 단박에 이 것이 말로듣던 아귀구나 싶어서 증조할머니를 찾아왔다고 해.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증조할머니께서도 같은 생각이셨는지 통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장家를 따라나섰다고 해.


장家네에 도착하니 다소 흙바닥이 삭막해 보이는 마당에 깨진옹기가 험악하게 방치되어있어서 집안 사정을 대변하듯 보였다고 해. 부엌을 들여다보더니 "부인은 산에 나물이나 풀뿌리를 캐러간 것 같습니다" 하고 장家가 말하자 소리를듣고 방안에서 두 남매가 뛰어나와 지 애비에게 안기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장녀는 피골이 상접하여 똑 하고 부러질 것 같았고, 아들래미는 이제 예닐곱살 로 보였는데 누나랑 투닥투닥 하면서 웃는걸 보니, 지 누나랑 사이가 무척 좋아보였다고... 장家말로는 장녀에게 아귀가 드는날에도 지 동생에게는 할퀴거나 해코지 하지않고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했대.


증조할머니께서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을 여니 말라붙은 쌀겨죽이 참 딱했다고 해. 가방에서 쌀과 소금, 무를 꺼내서 흰 쌀죽과 소금으로 삼삼하게 간을 한 무국을 끓여서 장家네 가족에게 대접을 했어. 장家가 "이런걸 다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는 자식들과 식사를 드는데,


갑자기 장녀가 눈이 헤까닥 돌아서는 엄한 숟가락 내버려두고는 손으로 허겁지겁 죽을 퍼먹고 국을 건더기도 씹지않고 단번에 마셔버렸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깜짝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장家의 아들래미를 팔로 저지했는데, 장녀는 그 것을 신경도 안 쓰고는 지 애비 것, 동생 것 할 거 없이 다 먹어버리고는 부족한지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렸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딱 보기에 '기근이 심해셔 기력이 딸리니 정신을 곧게 잡지 못 하여 아귀가 들었구나.' 하고는 장家에게 "따님좀 붙잡고 계셔주세요."하니 장家가 다급히 지 딸의 양 팔을 뒤에서 붙잡았어. 힘이 어찌나 센지 금방이라도 뿌리치고 나올 듯 흉폭하게 날뛰었는데, 증조할머니께서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미리 갈아온 먹을 붓에 찍어 飽(배부를 포)를 적어 날뛰는 장家네 장녀의 배에 올리고 흑설탕을 푼 냉수를 한 잔 먹이니 이내 잠잠해졌다고 해.


날이 저물고, 후에 飽(배부를 포)라고 적은 종이를 방안에서 태우고, 그 잿물을 다시 한 번 장家네 장녀의 배에 펴바르니, 집 밖에서 누가 다다닥-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 주위를보니 다른 사람들은 못 듣고 자신만 들은 것 같아서 '아귀가 도망갔구나.' 생각하고,  장家에게 "당분간 괜찮을 겁니다. 심신이 약해지지 않게 잘 돌봐주세요." 하고 가지고 온 쌀 한 되를 장家가 해온 참나무값이라고 주고, 나서려는데 장家네 마누라가 나물을 거의 캐지못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초지종을 듣고 몇뿌리 안 되는 나물을 준다는걸 한사코 뿌리치고 돌아왔다고 해.


집에 돌아와서 증조할아버지에게 얘기를 했더니, 아까운 쌀 왜 퍼주냐고 타박만 들었다고... 며칠이 지나고 매일 쨍쨍하던 날이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습하고 칙칙한 날씨였어. 느낌이 사이해서 비가 올까, 말리던 곶감을 집안에 들여 놓고 있는데, 일전에 보았던 장家 마누라가 땀을 뻘뻘 흘린 채 증조할머니를 찾아왔다고해. "보살님 서방님좀 말려주세요." 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마루에 십자수를 하다만 천으로 땀을 닦으라고 주고 "무슨일인지 숨 고르고 찬찬히 말씀 해보세요."하니.


장家 마누라가 마루에 털썩앉아서 하는 말이 증조할머니께서 다녀 간 뒤 몇 일은 아무일도 없었는데, 가져다준 쌀로 죽을 풀어 먹으니 웬지 보살님이 주신쌀이라 그런지 더 힘도나고 장家가 덫을 놓은 곳에 노루도 잡혀서 잘 지내고 있었다고 해. 그러던 와중에 하루는 잠을 자는데 새벽에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일어나 보니 장녀가 누워있던 자리엔 아무도없고 밖에서 계속 쩝쩝-소리가 나더래. 서둘러 서방을 깨워서 호롱불을 들고 나가보니.


장녀가 살을 잘 도려서 옹기에넣어 묻어둔 사슴고기를 꺼내어 뜯어삼키고 있었다고... 장家가 대노(怒:성낼 노)하여, 생고기를 뜯어먹던 장녀를 잡아당겨 팽겨치고, 남은 고기를 다시 손질해서 넣어두려고 보니 뜯어먹은 부위가 냄새가 나고 샛보랗게 색이 변해서 먹지 못 하게 되었다고 해. 분노를 삭힐 틈도 없이 장녀가 "이 죽일놈들 나를 굶겨 죽이려고 그러는구나!" 하고는 장家에게 덤벼들었대. 장家네 마누라는 자기 딸이 눈이 새빨갛게 불거져서 지 애비에게 달려드는걸 보고 소름도 돋고 겁도나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는데, 장家는 화를이기지 못 하고 그런 딸을 머리를 세게 내리쳐서 기절시키고는 싸리줄을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장녀를 들쳐업고 두어 시간을 걸어 뱀산 안에 있는 초가집에다가 버렸다고 해. 지금은 없어진 관습이지만 옛날에는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 묘 앞에 집을 지어 길게는 3년까지 장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그런 집이었어.


아무튼 날이 새고 장家네 마누라가 딸을 데려와야 하지 않겠냐고 장家랑 실랑이를 벌이는데, 장家가 하는 말이 "계속 이렇게 살다간 당신도 나도 그렇거니와, 하나뿐인 장씨집안 지손도 굶어 죽게 생겼어! 아들래미마저 죽일 셈이야?" 하고 장녀를 버린 것을 기정사실로 단락 지어버렸다는 거야. 더이상 다툼은 의미가 없었고, 딸래미를 포기할 수 없었던 장家네 마누라는 증조할머니를 찾아오게 된거지.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자식살고 부모살아야 하는 것을..."하고는 장家네 마누라를 따라 다시 장家네 집으로 가 보니 아무도 없었는데, 장家네 마누라가 말하길 "나무를 하러 간다고 하더니, 아들래미를 데리고 같이 갔나 봅니다."해서 장家네 마누라와 증조할머니랑 이렇게 둘이서 뱀산으로 향하게 됐어. 산행을 하는 중에 증조할머니께서 가방에서 좀 시간이 지나 딱딱해진 백설기를 꺼내어 나누어 주니"감사합니다." 하곤 허겁지겁 받아 드시더래. 약수터에서 물 한잔 마시고 마저 올라가다보니,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수림이 빽뺵해서 햇빛도 안드는 곳에 황토와 짚으로 지어진 초가집이 하나 나왔어.


"그저께 간밤에 딸래미를 버려둔 곳이 이 곳입니다."하고 는 장家네 마누라는 걸음을 멈추고 오한이 드는지 주위만 두리번거리고 가만히 있어서, 증조할머니께서 "여기 계세요. 따님은 변고 없을 겁니다."하고 혼자 걸음을 옮겨서 들어가는데 초가집에 가까이 갈 수록 공기가 차갑고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이 곳 산신이 버린 땅 처럼 기운이 좋지 못하구나...'하고 찬찬히 살피는데 집 안에서, 쩝쩝- 소리가 들려오더래. '터가 음습하여 귀가 숨기 좋은 곳이야. 그 때 도망친 아귀가 여기 숨어있었던 건가.' 생각하고 뒤를 살피니 장家네 마누라는 초가집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있더래. 증조할머니께서 괜찮다고 손짓을 한 후에, 조심스럽게 너덜한 창호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세상에! 초가집 천장에 짚으로 굵게 엮은 동아줄에 장家네 장녀가 목을 매달아 있었는데, 핏줄이 터져 새빨개진 눈알이 감지도 않고 여기저길 살피고있었고 입에는 아직 삼키지 못한 날고기 같은것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고 해. 목을 메단 장家네 장녀가 눈과 입이 움직이는걸 보고 '아직 살았구나!' 싶어서 굳어서 풀리는 다리를 겨우 힘을 주어 움직여서  장家네 장녀를 조심스레 내렸어. 장녀의 몸에 닿는 느낌이 한 겨울 얼음덩이같이 차갑고 딱딱해서 내려놓고 보니, 웬걸? 이미 죽은지는 꽤 지난 것 같이 사후경직이 다 진행되었다고 해.


'죽은 몸에 아귀가 들렸었구나!'하고 가방에서 성냥을 꺼내 향을 붙여 태우고 아직 먹지 않은 백설기 한 덩이를 내려놓고 떡 밑바닥에 붓으로 갈아온 먹을찍어 瞞(속일 만)을 적고 안 보이게 땅에 놓고 위에는 飽(배부를 포)를 적어서 향을 백설기에 꽂고 급하게 읍을 하고 했다고 해. 간이적으로 제를 올리고 나니 향 잿가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설기떡이 샛보랗게 변했다고해. 증조할머니께서 다시 일어나서 뒷문으로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 나가보니 밖에서 또 쩝쩝- 소리가 들리길래 기이하고 모골이 송연하여 조심스럽게 나가보았다고.


그랬더니 핏자국 끝에는 삼분지 일은 파먹힌 정체모를 주검이 초가집 벽에 기대어 있었는데, '작은 소녀가 산짐승을 어찌 잡았을꼬...'하고 가까이 가보니, 삼분지 일은 파먹은 그 고기는 산짐승이 아니었어. 증조할머니께서 아래부터 떨리는 눈으로 훑어보니, 헤진 고무신을 지나 넝마가 된 옷이 벗겨져있고, 거칠게 짖이겨진 고기위에 달린 것은 사람머리가 확실 했거든. 산짐승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체는 다름아닌 사람이었는데, 와중에 또 쩝쩝-거리는 소리가 초가집 안에 들려왔지만 증조할머니는 일단 장家네 장녀가 약초꾼이나 나물캐러온 사람을 잡아먹은 건가 싶어서. 시체를 먼저 살폈다고해.


자세히 살피니 시체는 작은 아이였고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다름아닌 장家네 아들래미 였어. 분명 장家를 따라 나무하는 곳에 갔다고 했건만... 아무래도 장家가 나무를 하러 간 틈을 타, 누나를 찾으러 뱀산에 들어 온 것 같았다고 해. 그렇게 생각하니 자초지종이 이해가 됐지. 아귀들리던 장녀는 배가 부르면 정신이 돌아왔을테고, 죽은 자신의 동생을 보고 이내 자신이 기억이 없는 아귀들린 순간에 동생에게 몹쓸짓 한 것을 깨달았을테였어. 그래서 자살까지 가지 않았을까...


증조할머니는 이걸 어찌해야 되나 싶어서,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죽은 장家네 아들래미 얼굴에 덮어두고. 어떻게든 조치를 해야겠다 싶어서 뒤를 돌았는데 뚫린 창안으로 초가집 안을 보니 백설기는 거의 다 사라지고 없고, 죽은 장家네 장녀의 입에 백설기가루가 잔뜩 묻어있더래. '지독한 악귀구나!' 싶어서 얼른 장家네 마누라에게 돌아가니 불안한 표정으로 무슨일인가 눈치를 살피길래, 한 껏 마음이 무거워진 증조할머니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귀신이고 뭐고 겁조차 집어삼킬만큼 깊은 슬픔이 왔는지 장家네 마누라가 삽시간에 달려가더니 죽은 두 남매를 끌어안고 오열을 했다고 해.


그 날 오후에 장家가와 마을사람들을 대동하여 다시 뱀산에 초가집을 찾았고 날이저물기 전에 두 시신을 수습하여 양지바르고 볕잘드는 곳에 묻고는 위령제를 지냈다고 해. 후에 장家네는 다행이도 새로이 득남을 하고 보릿고개도 잘 넘겼다고...


그 후에도 뱀산에 약수를 뜨러 가거나 하는 사람들이 초가집에서 쩝쩝-거리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안에서 소리가 나서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데 또 밖에서 쩝쩝-소리가 나고, 다시 밖에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소름돋는 경험을 많은 이들이 겪었다고 하네. 현대시대에 들어서는 옛날에 아귀들렸다는 증세가 지금의 폭식증과 비슷한 것 같아. 지금은 뱀산폐가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문경 점촌 돈달산 약수터를 지나면 폐가같은 뜬금없는 건물이 하나있어.


[출처] 모해유머커뮤니티 (조아라 /글쓴이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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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근근히 삶을 이어 나가고 있던 시기의 이야기들이라 면면이 너무 슬프다 그치. 6번 이야기는 천하의 못된놈이지만 7번, 8번은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마음이 자꾸 아려 오더라. 어떤 기분이었을까. 얼마나 사무쳤을까...


내일도 또 이야기 가져 올게.

오늘은 날도 흐렸는데 흐린 날엔 귀신썰이 딱이지.

잘 자고

내일 보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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