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적막한 과실

원래 어제 밤에 올리려고 한참 글을 쓰고 있었어요...


애기랑 아내랑 둘 다 자고 있었는데 열심히 컴퓨터 앞에 앉아 쓰는데 오싹한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더라구요... 등 뒤에서 누가 쳐다보는 느낌도 심하게 나고...

귀신은 본인 이야기를 할 때 뒤에 옹기종기 모여서 구경한다더니...

그래서 깔-끔하게 중도포기하고 출근 후 마무리지어서 올리게 됐네요 ㅠㅠ

늦었지만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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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추적추적 비 오는 날 돌아온 optimic입니다!

오랜만에 퇴근 후 애기 재워놓고 이 시간에 글을 올리네요! 한가로운 밤에 빗소리도 들리고 무서운 이야기 쓰기 참 좋은 날이에요!

작년과 달라진 점이라면 작년에는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서 썼다면

올해는 둥글레차를 먹으면서 쓰네요... 세월이...


아무튼 오늘은 제가 대학교 때 있었던 일을 풀어보겠습니다! 재밌게 봐 주시고, 댓글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칸쵸 하나만 먹고...(부스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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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입학식 후 국어국문학과 과실(과실, 과방 여러 단어로 불렀었죠)로 들어갔다.


- 안녕하십니까!


- 어 그래. 잘 지내보자.


사람 좋게 생긴 예비역 선배가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과실은 내겐 너무나도 어색하고 불편한 곳이었다.


국어국문학과.


왜인지 모르겠지만 전체 재학생 중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두 배는 많았고, 남중 남고를 거치며 거친 땀내만 가득 맡아 온 내게 과실은 너무나도 불편한 곳이었다.


간단한 인사와 정리 후, 급하게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2층 계단에서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내려오는 고등학교 친구 훈석이를 만날 수 있었다.


- 훈석아!


- ...담배 하나 피러 가자.


흡연장에서 뭉게뭉게 연기를 만들며, 나와 훈석이는 각자의 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나 : 야. 나는 과에 여자가 많으면 진짜 매분 매초가 행복할 줄 알았거든?

- 훈석 : 나도...

- 나 : 아 불편해 뒤지겠다... 적응이 안 돼...

- 훈석 : ...너도?

- 나 : ...나도.

- 훈석 : 거기다 과실도 x나 구려. 개 이상해.

- 나 : 어. 과실? 우린 괜찮던데?

- 훈석 : 우리 과 과실 개 구림. 무슨 창고같은 데 그냥 책상만 하나 놓고.

- 나 : 너 중문과잖아. 중문과 과실 우리 과 옆옆이던데?

- 훈석 : 어 진짜? 근데 왜 우리 2층 창고에서 모이지? 과실 냅두고?

- 나 : 너네 과실 두 개인듯. 개부럽네.


쓸 데 없는 얘기들을 하던 우리는 각자의 수업을 향해 흩어졌고, 그렇게 중문과 과실은 내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그 후 한 달 정도가 지났다.


한 달 동안 여자들로 가득한 과실이 불편했던 나는 최소한의 선만 지키며 살았으나, 누구의 음모인지 반 강제적으로 과대표까지 맡게 되었다.

그러나 과 대표가 됐다고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과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반쯤 아웃사이더가 되어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곤 하였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같은 대학교 여러 과에 다니고 있어서, 수업이 끝나면 항상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피시방에서 게임을 했다.


그러다 친해진 중문과 훈석이의 선배 A형.


예비역이면서 우리보다 세 살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훈석이를 워낙 예뻐해서 자주 우리에게 술을 사주곤 했었다.


어느 날. 학교 후문 포차에서 나와 훈석, A형은 술을 마시게 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과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 나 : 아 맞다. 형. 왜 중문과만 과실을 두 개나 쓰는 거에요?

- A : 어? 뭔 두개?

- 훈석 : 아. 저도 궁금했어요 형. 저희는 왜 1층에 과실 있는데 굳이 2층 창고에서 지내는 거에요?

- A : 아~ 그 1층 영문과 옆에 있는 과실 말하는 거지?

- 훈석 : 네! 다른 과는 다 1층 과실 쓰잖아요.

- A : 아... 너네는 모르겠구나.

- 나 : 왜요 형? 저희가 알면 안 되는 게 있어요?

- A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짠한 이야기라서...


반쯤 술에 취해 알딸딸한 상태를 유지하던 우리는, 진지한 A형의 목소리에 술기운을 애써 누르며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A형 1년 선배 중에 B라는 중문과 여학생이 있었다.

B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많은 선, 후배 동기들이 그녀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친하지도 않은.

누구에게나 착하고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누구하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도 않는.

조용히 학교를 다니지만 과 행사에는 참여하고, 항상 과실에서 새벽까지 공부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과실에 앉아 공부를 하던 사이 4학년이 되었고, 4학년 때도 열심히 공부만 했다고 했다.

그러나 유창한 중국어 실력에 비해 부족한 사회경험과 내성적인 성격이 항상 발목을 잡았고, 자신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 둘 취직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괴로워했다.


몇 번의 면접을 망친 후 어느 평일 아침.


여느 때처럼 아침 버스를 타고 온 중문과 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과실로 들어왔을 때.

동기, 선배, 후배들이 그녀를 발견했을 때.

B는 과실 테이블 위에 서 있었다.


아니,

테이블을 마지막으로 딛고 올라갔다.

매달려 있었다.

천장에 매달려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피눈물과 침이 뒤섞인 채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매달린 B의 모습을 본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실신했고, 학교엔 구급차가 왔다.



그렇게 B는 3년 넘게 앉아있던 그 곳에서 세상을 등졌다.


조용했던 B의 죽음.


들어온 자리는 티가 안 나도 나간 자리는 티가 난다던가.


항상 과실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B의 죽음은 텅 빈 과실에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을 가져다 줬고, 가끔 과실에서 술판을 벌이던 과 학생들에게


- 공부 열심히 해야 취업하지.


라고 작게 웃으며 말하고는 다시 책에 시선을 옮겼던 그녀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과 벌어지는 일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 과실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새벽에 술을 마시던 무리들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고,

혼자 혹은 둘이 모여 과실에서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인기척, 중얼거리는 소리 등을 들었다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중문과 학생들은 학생회장에게 몰려와 과실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에 대해 이야기했고, 학생회장은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혼자 과실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


짙은 어둠이 드리워지고,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만이 간신히 빛을 내뿜던 밤.

과실은 창문 밖에 깔린 칠흑같은 어둠만큼이나 고요했다.

노트북에서 간혹 들리는 딸깍거리는 소리만이 이 무서운 적막을 간신히 밀어내고 있었다.


- 뭐. 좀 으스스하긴 한데, 아무 소리도 안 나잖아?


학생회장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어졌다.


- 에휴. 그래. 애들이 와서 술취해서 이상한 소리 들은 거겠지. 담배나 하나 피고 와야겠다.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럭


- 음?


학생회장이 담배를 챙겨들고 과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잘못 들었나...?


학생회장은 오싹해지는 몸을 가볍게 털고 문을 열려고 했다.


사각사각

부스럭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된 학생회장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정말로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누군가 쉴 새없이 노트에 필기하는 소리.

끊임없이 넘어가는 책장의 소리.

그리고


쉼없이 중얼거리는 서늘한 여자의 목소리.


수많은 소리들이 과실 구석에서 출발해 학생회장의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 뭐...뭐야... 아니야. 잘못 들은거야...


겁에 질린 학생회장은 과실을 가득 채운 인기척과 이 소리들을 애써 부정했다.

자신이 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학생회장은 세차게 고개를 들어 눈으로 과실을 훑었다.


- ...어?


그녀가 매번 앉아있던 자리. 과실 구석의 빛바랜 의자.


그 의자의 쿠션이, 사람이 앉아있던 것처럼 동그랗게 들어가 있었다.


- 아...아니야. 내가 졸려서 헛것을 보는 거야. 그럴 리 없어...


아무리 애써 부정해도, 과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것이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더욱 더 선명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해야 돼.


순간 학생회장의 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 누..누구야!


....해야 돼....공부...


- 으...으아! 누구냐고!



순간 학생회장의 눈에 하얀 발이 보였다.


핏기가 없이 창백한 발은, 공중에 떠 있었다.


아니.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 흐....으으...


학생회장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창백한 발을 따라 눈을 위로 올렸다.

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

과실 가운데, 테이블 위에는


B가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사람들에게 발견될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매달려 있었다. 피눈물로 범벅이 된 채 B는 벌어진 입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공부열심히해서취업해야돼


- 으...으아아악!!!!!


이튿날 아침. 학생회장이 전화를 받지 않자 뛰어 온 학생들은 과실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는 학생회장을 발견했고, 그 날 이후 학생회장은 휴학을 했다.


그는 휴학하기 전 교수님들과 조교, 행정실 직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제발 중문과 과실을 폐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길었던 A형의 이야기가 끝나고, 우린 애써 웃으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기에는 그 형의 눈빛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진지한 표정도 표정이지만, 목소리나 눈에서 나오는 작은 슬픔이, 우리로 하여금 그 말을 믿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중문과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도 그 과실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1학년을 마칠 무렵. 그러니까 B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막 지났을 무렵.

중문과 학생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게 됐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 해. 그 다음 해. 3년, 4년...


매년 그맘 때 쯤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 중문과 학생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졸업할 때 쯤.


중문과에서는 B를 위해 매년 술이라도 한 잔 올린다고 했고.


인문대가 리모델링되면서 그 과실은 사라지게 됐다.


졸업한 나는 중문과 학생도 아니고, 일에 치여 육아에 치여 그 때 사람들과 연락도 뜸해졌기에.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취업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견디지 못하고 끈을 놓아버린 B가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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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대학교 때 들었던 일을 오랜만에 짜내어 쓰다 보니 참 그 때 생각도 많이 나고 그 친구 생각도 많이 나네요.


어젯밤에 쓰다가 이상한 느낌 때문에 무서워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는데, 회사에서 월급루팡하면서 쓰니까 어찌나 잘 써지던지...


역시 놀면서 받는 월급이 최고야. 짜릿해. 늘 새로워.


라고 말하지만 이제는 일을 하러 가야겠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엔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스토리텔러 optimic입니다! 장르 안 가리고 쓰고 싶은 거 쓰는 사람이에요.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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