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선 안 될 과거, 조명해야 할 어둠

나치의 아우슈비츠 대학살과 북한 요덕수용소  2014년 2월 2일 나는 북한 요덕수용소에서 가족 6명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아들과 함께 탈북한, 지금은 80이 넘은 김영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TV 조선 "대찬인생" 57회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녀의 묘사에 따르면... 그 곳 "요덕 수용소"에서의 9년은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보다 더 혹독하고, 인간으로서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지옥과 같은 형상이었다고 한다.  잠시, 김영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일부 옮기자면, 그녀의 칠순이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3~4살배기 아이들까지도 그곳으로 끌려가 12시간 이상 노동을 해야 했으며, 먹을 것이라고는 쥐나 새, 날고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잡아먹어야만 했고, 그로 인한 질병은 물론, 인간 생명의 존엄성보다 요덕수용소 내 그들은 그들이 재배하는 옥수수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곳에서 아사로 장이 탈장되어 수용소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송장이 되셨고, 어머니도 3년 뒤 먹지 못해 돌아가셨고, 큰 아들은 관계 농업용수를 대다 물에 빠져 익사했으며, 셋째 아들 막내는 수용소를 탈옥하다가 발각되어 총살당했다...  남은 둘째 아들은 수용소를 나온 뒤 그녀와 함께 탈북을 시도하다가 2번이나 북한군에 붙잡혀 다시 북으로 이송되었고, 그 고초로 2kg가 넘는 하열과 함께 기관지 장애를 얻게 되었다.  지금 그는 호흡기 장애인 1급으로 그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너무나 부유하고 유복하게 자란 김영순 할머니...  "이 땅의 지옥을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무용수 ‘최승희’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으며, 6.25때 김일성과 자신의 오라버니가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 요덕수용소에 갇히기 전까지, 김일성과 동일한 반찬과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녀가 이유도 모른 채, 요덕수용소에서 가족의 참상에도 불구하고, 9년의 생활을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이 땅의 지옥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합니다. 20년이 지난 후, 그녀는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의 남편이 영문도 모른 채 어디론가 생사도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간 이유를 북한군에게 듣습니다.  “다시는 성혜림을 안다거나, 성혜림과 김정일이 결혼을 했다거나, 그들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발설할 시 참형에 처하겠노라."고. 그녀는 그제야 6명의 가족과 남편을 잃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영순 할머니는 당시 유부녀였던 성혜림과 나라의 수장인 김정일의 비밀결혼 사실과 그들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지옥과 같은 요덕수용소에서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첩한 저는 대단히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이라크도 아프리카도 아닌 바로 위에 위치한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그리고도 사건을 겪은 당사자에게서 들어볼 수 있다는 건...  2차 대전 종식 후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에게서 들은 현장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한동대 북한인권학회 SAGE의 북한정치범수용소에 관한 전시회에 진열된 그림들인데 수용소의 탈북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요덕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실상들. 그곳에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다.>   첫 번째 그림은 88년 5월 두 여학생이 길을 지나가다 굶주린 경비대 견에 의해 잡아먹히는 장면이고, 두 번째 그림은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에서 탈출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남아 있는 14세 신동혁 씨가 수용소 내에서 불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세 번째 만화는 먹을 것이 없는 수용소에서 쇠똥 속에 있는 옥수수를 먹었다는 이유로 강제로 토하게 만드는 장면이며, 네 번째는 중국에서 아이를 밴 탈북여성을 강제로 유산시키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왜, 그리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태어나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상황에 놓인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들 역시 우리처럼 상상하지 못할 ‘그 때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들(특히, 유태인)은 그곳에서 호흡처럼 여긴 신을 버려야 했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하나 빼앗겼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김영숙 할머니 증언에 비유하자면, 나는 6.25 전쟁으로 지킨 조국을, 나의 가족이 묻혀있는 고향을,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이 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다음은 홀로코스트(북한으로서는 ‘주체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증언입니다. 그는 그가 경험했으나,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을 뺏겼고, 어린 소녀는 가슴에 품은 곰 인형을 뺏겼으며, 이어서 사람들은 몸의 일부, 곧 모든 종류의 털을 빼앗겼습니다. 우리가 빼앗긴 것의 대가는 줄무늬 옷과 이름이 아닌 푸른 문신(숫자)입니다.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그 때 그 곳’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이런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기는 할까요?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아우슈비츠의 집단 광기의 역사를 되풀이 해오고 있습니다. 집단 광기가 정치적 신뢰를 얻으면, 사이코 패스의 연쇄살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유도 모른 채 어디선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의 어둠 속에 조명 받지 못한 채 자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구조적 이념과 사상을 강화하기 위해, 한 집단의 신념이 맹목적으로 추앙 받는 행위, 나의 신념을 위해 너의 신념을 부정해야 하고, 내가 살아야 하기에 너를 죽여야 하는 상황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해 오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시체를 소각하는 장치. 나치가 저지른 만행들을 우리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어두운 과거, ‘관심’이라는 조명으로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어  필자는 나치의 만행,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나 글을 접한 적은 많으나, 아우슈비츠 이 후의 삶이나 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다룬 영화는 많이 접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이 역사, 인류, 평화 이러한 추상적인 단어들이 아닌 그 때 그 곳의 사람들, 개개인, 우리와 같은 생명을 가진 ‘한 사람’의 일생의 삶인 역사의 구성원으로써 그들을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요?  그들도 우리처럼 역사 속에 있었던 사람이었고, 그들도 우리처럼 살고 싶고, 꿈꾸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며, 그들도 우리처럼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기억한다면...  히틀러라는 개인도 역시 두려움에 치를 떠는 한 개인의 광기어린 사람이었으며 그 사상이 그 자신이 아닌 그 주변 사람들로 인해 더 세력화 된 것이었다면, 위와 같은 정치적 만행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현재도 사람들에게 인지되지 못한 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두운 역사는 사람들에 의해 조명 받았을 때 새로운 역사의 한 장으로 진화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의무적으로 한국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경주로 방문하듯 독일의 학생들은 아우슈비치 수용소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아우슈비치의 가장 큰 희생 민족인 유태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게끔 역사연구소 및 박물관, 정기 간행물 발행, 다수의 영화 제작 등을 통한 아우슈비치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의 삶을 알리고 관심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절대 기억되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왕의 업적보다 왕의 과오를 기억하고, 연구 분석되어야 하며, 왕도 한 명의 개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의 통찰은 선진 시민이 되기 위한 한 걸음임을 이 글을 쓰며 필자인 저도 다시금 가슴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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