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블루스를 야부리하다

블루스에 대한 야부리 [1] Chapter 1. 유래  1) Slave Songs  블루스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하는 건 너무 공허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늘어놓으면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이 될 거다. 생각해 보니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단 생각도 든다. 블루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당한 선에서 써 보겠다. 물론 페친 중에는 음악관계자, 평단관계자 등이 계시기에 부담스럽지만 나의 생각을 전한다는 맘으로... 또 종이책에서 못하는 유튜브 링크가 면상책에서는 가능하니까.  지금부터 Blues에 대해 기술한다. 매우 길지도 모른다. 야부리란 말은 중·고딩때 쓰던 은어다. 뻥친다와 비슷한 말일 텐데... 그렇다고 거짓말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맘껏 씨불이는 뜻이 있다.  아프리카 노예들의 무역도. 농업이 중심이었던 미국 남부는 노예제도가 산업의 핵심이었다. 남부의 농장주들은 지속적으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뭐 할 수 없다. 뭔가 썰을 풀려면 해야 된다. 역사 유래... 그러나 이걸 모르면 근본을 모르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블루스? 한마디로 노동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Slave Song이다.  미국에 잡혀온 아프리카 흑인들은 그냥 노동자가 아니다. 노예였다. 그들에게 인권이 있었을 리가 없다. 사고 팔고 채찍으로 때리고 죽여도 되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견디겠나... 노래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공업이 발달한 미국의 북부와는 달리 농업이 중심이었던 남부는 노예제도가 산업의 핵심이었다. 광활한 토지에 작물을 재배한 남부의 농장주들은 지속적으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현장에서 착취할 때 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구호를 외치게 하는 거다. 오래된 전통 아닌가. 하루 종일 부려먹으려면 박자에 맞춰 움직이게 하는 거다. 시키는 자들은 백인이었지만 아프리칸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조로 했던 거다.  민속 연구가이자 민요 수집가인 John Lomax와 Alan Lomax는 1930년대부터 미전역을(주로 미남부지역)을 돌아다니며 구전되는 민요를 수집했다. 어떻게 아냐고? John Lomax와 Alan Lomax라는 사람이 있었다.(뒤에 다시 언급하겠음) 둘은 부자지간인데 민속 연구가이자 민요 수집가다.  1930년대부터 미전역을(주로 미남부지역)을 돌아다니며 구전되는 민요를 수집했다. 픽업에 녹음장비를 싣고 시골을 돌아다니며 노래 좀 하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예를 들어,  "여기서 노래 좀 하는 사람이 누구요?"  라고 시골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음... 여기서 남쪽으로 20마일쯤 가면 농사짓는 멕킨리 모건필드라는 녀석이 있는데 그 친구 노래 좀 합죠."  그러면 찾아간다.  "당신이 멕킨리요?" "그 ...그렇소만... 무슨..."  아마도 해코지하러온 백인이 아닐까 두려워하지만 로맥스는 마이크와 녹음장비를 설치하고 그에게 노래를 청한다. 기타를 맨 맥킨리는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후에 이 사람은 Muddy Waters로 알려지며 시카고 블루스의 위대한 Blues Man으로 기억된다. 영화 Cadillac Records 앞부분에 이 내용이 나온다. 머디를 찾아와 녹음해가는 사람이 바로 John Lomax다.  로맥스 부자는 이런 방법으로 수천 곡의 민요를 수집하고 수많은 블루스 아티스트를 발굴한다. 이뿐만 아니라 흑인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노역을 할 때 부르는 여러 종류의 'Prison Song'도 녹음했다.  이걸 들어보면 노예시대에 시작된 노동요로서의 블루스 원형을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아냐고? 구전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Good God Almighty 1933] [Rock Island Line 1934] [Whoa Buck 1940년대 초. 노래미상] [요기에 무더기로 있네요] 대충 들어 보시면 알거다.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이 바로 스케일(음계)이다. 아프리칸 들이 사용하는 스케일... 그건 누군가 창조한 게 아니다. 그들의 어머니, 또 그 위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구전되어온 그들의 D.N.A인 것이다.  스케일은 변하지 않는다. 집단으로 사용하는 스케일, 그건 정체성이다. 다시 말해 같은 민족은 같은 음계를 사용한다. 선택적으로 혹은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음계가 존재한다.  우리의 아리랑이 100년 전에는 달랐을까? 아니다 그대로다. 백 년 전에 같았다면 200년, 300년 전에도 같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들로부터 구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구전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우리아가"  이 노래를 아실 거다. 이런 노래는 변하지 않는다. 몽골리언 들이 사용하는 공통적인 스케일이 있다. 5음계다. 수천, 수만 년전에 몽골리언 들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대륙에 진출했다.  일부는 북미에 정착하고 어떤 이들은 계속 이동해 중남미에 또 남쪽으로 아마존 까지 수천 년간을 살았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에 따라 먹는 음식도 달라졌을 것이고 생활방식, 의복, 언어도, 달라졌겠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스케일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우리와 같은 5음계를 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그 순수성도 외부의 문화와 충돌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음악의 화학적 결합이다. 몽골리안 계통의 훈족이 유럽을 침공하고 정착한 곳이 헝가리다. 헝가리란 말 자체가 훈가리 즉 훈족의 나라라는 뜻이라 한다. 우리의 한겨레와 같은 말이지 않을까?  그래서 헝가리의 오래된 민요는 5음계가 기본이다. 그러나 유럽인들과 결합하고 이후에 집시들이 유입된다. 이런 과정에서 음악의 화학적 결합이 일어난다. 때문에 헝가리는 유럽이면서도 동양적 정서가 묻어있는 집시 스타일의 독특한 음악이 만들어진다. 오래전 인도의 북부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한다. 이들을 후에 집시라고 불렀다. 유럽전역으로 퍼졌지만 특히 많은 수가 정착한 곳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이다. 이곳의 유명한 음악과 춤을 일컬어 Flamenco라 한다.  그 지방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독특하게도 프리지안 스케일을 닮았다. 프리지안 스케일이란 mode 즉 교회선법에서 유래된 스케일체계다. 이건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면 알텐데 너무 전문적인 거라 설명은 않겠다.  플라멩코가 그런 특징을 가진 것은 집시들이 음악을 공부해서가 아니라 그들 조상이 사용하는 음계가 그와 닮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인도에서 왔으니까. 인도 전통음악을 들어봤다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집시들이 정착하면서 그들도 역시 토착민들과 혹은 침략자들과 음악의 화학적 결합이 만들어졌다. 아랍인, 유대인, 유럽인 등. 그 화학적 결합의 결과가 지금의 플라멩코다. 노예무역이 활발했던 시기에 아프리카 노예들이 북미에만 온 것이 아니다. 남미에도 팔려갔고 쿠바, 자마이카 같은 곳도...  이쯤에서 이해하시리라 본다. 남미에도 같은 아프리카출신의 노예가 왔지만 음악의 화학적 결합으로 인한 결과물은 다르다. 남미에는 삼바와 보사노바, 또 쿠바음악, 자마이카 음악이 있다.  다 그곳의 토착민, 지배계급과의 화학적 결합으로 생긴 결과물이다. 남미에는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지배하지 않았는가...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 하나가 결합하면 물이 된다. 배웠으니 알지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같은 산소라도 산소 두 개와 탄소 하나가 만나면 이산화탄소가 된다. 이것도 배웠으니 알지 누가 예상이나 했겠냐고...  ※ 편집자 주 : 기타리스트 신대철의 '블루스에 대한 야부리' 칼럼은 인사이트에 연재됩니다.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