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 퀴리

“우리 집안 사람들 모두 노벨 상을 탔는데, 저만 못 탔어요.”

주말 특집, 퀴리 부인의 막내 딸 에브 퀴리(Denise-Ève Curie , 1904-2007)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언니와 형부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심지어 남편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자기만 못 받은 것이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 퀴리라는 성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퀴리의 집안 사람들은 정말 거의 백 퍼센트 이과다. 오늘의 부인공 에브 퀴리는 아무래도 어머님 사랑(…압박? 그녀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때문인지 고등학교(참조 1)는 이공계였지만, 그녀의 특기는 아무래도 인문학과 음악이었다. 그래서 피아노 연주회를 꽤 다녔다고 하는데…


어머니 마리 퀴리를 대동하고 다닌 1921년의 미국 여행이 히트였다. 미국인들은 이 프랑스 젊은 미녀에 열광했고 그녀를 “the girl with radium eyes”라 불렀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떴던 건 어머니 사후 작성한 마리 퀴리 전기였다. 어머니를 평생 모셨고 폴란드 친척들도 만나고 했기 때문에 워낙 내용이 풍성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그녀는 곧바로 샤를 드 골의 자유프랑스에 합류, 종군 저널리스트로 활약한다(비시 정부는 그녀의 프랑스 국적을 박탈한다). 북아프리카와 소련(특히 1942년의 모스크바 총공세), 이집트와 리비아, 이란, 자유중국, 폴란드 저항군까지 종횡무진, The Atlantic Monthly에 정기적으로 “French Women and the War”의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드디어 이 짤방의 사진(참조 2)을 설명하자면, 1941년 미국 Vogue 지에 실린 그녀의 모습이다. 안 꾸미는 걸 좋아한다지만 아마 퀴리 가족 중에서는 제일 많이 꾸미는 구성원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 복장으로 속으시면 안 된다. 위에 적었듯이 그녀는 정력적으로 반-독일 활동을 펼쳤고, 1943년부터 전개된 이탈리아 작전에 의무대 자원대원으로 입대한다.


작전에 투입됐다는 의미다. 중위 계급을 받은 그녀는 이탈리아 다음에는 1944년 남프랑스(프로방스) 상륙에 자기 부대를 이끌고 참여한다. 해방 후 그녀는 전쟁십자훈장(Croix de Guerre)을 수여받았다.


전쟁 후 그녀가 알려진 건, “UNICEF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첫 UNICEF 본부장을 남편인 Henry Richardson Labouisse Jr.가 맡았었기 때문이다. 워낙 UNICEF 활동을 그녀도 열심히 해서 레종도뇌르 훈장을 2005년에 받았다. 백 살이 넘어야 받는 상이란 말인가.


하지만 제일 궁금한 건 그녀의 연애담이다.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데, 남편과 50세에 결혼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별 후 재혼, 그녀는 초혼이었다. 어머니와는 꽤 다르게(참조 3) 건실하게 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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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Collège Sévigné 사립여학교인데 1880년에 세워진 이 학교는 종교(가톨릭)가 관여하지 않은 거의 최초급의 여중고였다. 현재는 남녀공학이다. 고등학교도 순위를 매기는 프랑스에서 꽤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2018년 현재, 파리 108개 중 22위, 전국 2,277개교 중 59위-L’Express). 기준은 물론 바깔로레아 성적이다.


Lycee Sevigne - Paris 05 (lycée privé): https://www.lexpress.fr/palmares/lycees/0/lycee-sevigne-paris-5eme-arrondissement_0753598D.html



2. 사진 출처: https://twitter.com/Cha_Faucher/status/1261214383067324416



3. 어머니인 마리 퀴리는 남편 사후, 남편의 박사지도생이자 5살 연하의 한 물리학자(Paul Langevin)와 사랑에 빠졌었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이 남자가 유부남이었던 것. 퀴리부인은 계속 그에게 이혼을 종용했다.


이 사실을 안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가, “불경한” 퀴리 부인이 국왕과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였는데(결국 퀴리는 상을 직접 받았다), 문제의 그 유부남은 결국 이혼을 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따로 있다. 마리 퀴리의 손녀딸(Hélène Joliot-Curie)과 이 유부남의 손자(Michel Langevin)이 결혼한 것이다. 결국 사랑을 이루기는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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