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의 인디언과 카우보이

이사 때문에 좀 늦은 주말 특집, 동독의 인디언과 카우보이이다. 냉전시대는 기묘한 문화현상을 세계 곳곳에 탄생시켰는데 이 사례도 그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탄생시켰던 이탈리아도 아닌, 동독에서 인디언과 카우보이가 유행했으며 한 헐리우드 배우는 동독으로 이주하기도 했었다. 도대체 왜?


사실 독일의 미국 서부에 대한 낭만은 연원이 좀 깊다. 19세기 작가 Karl May의 소설들 때문인데, 그의 소설은 당시 독일에서 토마스 만보다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참조 1). 문제는 그가 미국 서부를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었지만, 곰 이빨로 된 목걸이를 하고다니는 그를 독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대개 고상한 아파치의 리더 형제, 그리고 독일계 미국 이민자의 관계이며, 80여편이나 되는 그의 소설은 영화화도 많이 됐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타란티노의 영화,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2019)”에서 주인공(디캐프리오!)이 아예 이탈리아로 가서 웨스턴이나 찍을까 말하던 것처럼, 마카로니 웨스턴은 알아도 부어스트 웨스턴은 모른다. 그만큼 독일 내에서만 인기였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마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 이후로는 각광받지 못 했는데, 동독에도 카를 마이를 이어받은 Liselotte Welskopf-Henrich의 “위대한 곰의 아들들(Die Söhne der großen Bärin,1951, 참조 2)”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사상적으로 순수하다는 이유였는데, 동독 당국은 1960년부터 1980년까지 12편의 웨스턴 영화를 찍는다. 마치 화면에는 미국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불가리아나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에서 로케했으며, 동독이나 동유럽 배우들이 카우보이와 인디언 역할을 다 해냈다.


그래서 인디언 문화는 동독에서 1973년 Indianistikklubs이라는 코스프레 행사로 발전했고 동독 정부도 오히려 이 움직임에 관여하지 않았다. 사상적으로 인디언은 자본주의의 확산에 따른 피해자였다는 이유다. 서부극에서 백인은 “제국주의 계급의 적”으로서 미국을 상징하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됐다.


이들 동독인은 “민족간 우정을 통한 민족평화(Völkerfrieden durch Völkerfreundschaft)”의 개념으로 이른바 인디아니스트(Indianast)라 잠칭했고, 1980년대에는 천여 명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인디언 캠프 텐트를 만들어서 놀았다. 공산주의 치하의 동독에서 국가가 허락한 취미인 인디언 놀이는 아마 일종의 “해방감” 느낌의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들 인디언 역할만 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카우보이 역할도 있어야 한다. 카우보이는 혹시 제국주의의 첨병 아닐까? 문제 없었다. 자본주의의 희생자로서 카우보이 역할을 내세웠기 때문이다(참조 3). 은행털이를 봤는데, 은행털이는 하루 동안 은행을 털지만 저 은행은 나를 30년간 털어왔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때 진짜 미국 배우가 동독에 등장한다.


서방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콜로라도 출신(!) Dean Reed(1938-1986, 참조 4)는 변변찮은 이력을 갖고 있다가 남미로, 그 다음에는 동독으로 이주한다. 특히 그는 1969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촬영했고, 그의 행적 때문인지 소련과 동독에서 톱스타가 됐다(참조 5). 동독에 살기로 한 그는 1973년부터 스무 편의 영화에서 연기하고 13편의 앨범을 냈다. 그러다가 1986년 갑자기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렇다면 통일 이후에는? 카우보이/인디언 문화를 즐기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매년 컨트리 페스티벌(참조 6)이 열리고 미국 컨트리 음악이 나오며, 다들 카우보이나 인디언으로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난다. 다만 통일 이후는 약간 변화가 있다. 카우보이 쪽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보다 더 독일 문화에 가깝고 실제로 독일계가 많이 건너가기도 했다는 이유다.


위험 느낌이 감지되지 않는가? 여기에 참여하는 독일인들은 미국 내전 당시의 컨페더레이션 깃발 무늬를 한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위에서 얘기했던 자본주의로부터 핍박받는 카우보이를 이제는 서독으로부터 핍박받는 동독으로 치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령 미국에서도 컨페더레이션 깃발이 유명해진 건 1990년대 이후라고 한다.


즉, 동독은 서독으로부터 (여전히) 여러 의미의 자원을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카우보이 역할을 함으로써 동질감과 편안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물론 카우보이 코스프레를 하는 독일인들이 미국이나 트럼프를 좋아한다는 얘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자기들을 비-정치적이라 해도 정치성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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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Socialist Cowboys(2012년 4월 12일): https://www.newyorker.com/culture/culture-desk/socialist-cowboys



2. Die Söhne der großen Bärin 예고편: https://youtu.be/ChHvymU2o9U



3. Das rote Reservat(2008년 5월 31일): https://www.tagesspiegel.de/kultur/literatur/indianer-in-der-ddr-das-rote-reservat/1823294.html



4. Dean Reed : https://de.wikipedia.org/wiki/Dean_Reed 한때 톰 행크스가 딘 리드의 전기에 대한 영화제작권을 가졌다고 하지만 현재 영화제작은 불발됐다.


5. 대표적으로 피의 형제들, Blutsbrüder(1975)이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 그는 1864년 당시 미군의 인디언 학살에 분노하여 인디언으로 들어온 미군 역할을 맡았다. 뭔가 어디서 많이 본 줄거리 아닌가? https://youtu.be/x-BM9wNsUvg



6. Die ostdeutschen Cowboys(2020년 5월 19일): https://www.zeit.de/kultur/2020-05/country-musik-szene-konfoederiertenflagge-suedstaaten-usa-cowboys/komplettansicht



7. 짤방은 피의 형제들, Blutsbrüder(1975) 포스터이다. 오른쪽의 미군이 딘 리드, 왼쪽의 인디언 추장은 유고슬라비아의 배우, Gojko Mitic가 맡았다. 출처는 https://www.pinterest.de/pin/47935195406035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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