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숲_1

간만에 장편인듯 장편아니 장편을 가져왔습니다.

원작자께서 단편으라 하셔서 단편인가 했지만 은근 분량이 많아서 3편으로 나눠 봤습니다.

패랭이꽃님 소설은 믿고 보는 거 아닙니까?



태그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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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썰 카드에 닉넴 태그



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아시죠? ^^**



1.


그들의 불만 가득한 얼굴을 보니 숨이 턱 막혀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 마시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이미 허가가 났습니다. 허가가 났어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무작정 항의하셔도 소용없다고 몇 번 말씀드립니까? 여기 모여서 으쌰으쌰 하셔도 바뀌는건 없다니까요? 정말 여러분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영감 하나가 침을 튀기며 말했다.


“아니, 젊은 양반이 뭘 몰라서 그러시는데 그 숲은 건드리면 안된다니까”


날씨도 덥고, 영감탱이가 말하는 톤도 그렇고 짜증이 솟구쳤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메뉴얼대로 응대해야 하지만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 얼굴에 불쾌감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역시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건 큰 곤욕이다.


‘몰라? 내가 뭘 몰라? 모르는 건 당신들이지. 아둔한 사람들 같으니 왜 이렇게 돈 냄새를 못 맡을까? 못 배워서 그런가?’


그 앞뒤 꽉 막힌 영감은 내 생각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숲은 옛날부터 요기가 흘러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 이 양반아! 그 숲에 들어갔다가 못 나온 사람들이 수두룩해!”


“아, 그렇습니까?”


억지로 귀담아 듣는 척, 거짓 표정을 지어가며 대답했다. 이럴 때마다 터져 나오는 화를 참아내느라 애쓴다.

표정연기를 해야 하는 얼굴 근육과 죽어라 누르고 있는 성질머리에게 항상 미안할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예의고 뭐고 노인네 멱살을 잡아채, 욕이라도 한 사발 부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내 성질에 멱살을 낚아채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테지만.


“영감님 말씀이 백번 맞아요. 나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그 숲은 조심하라고 했다니까요! 그래서 개발을 커녕 아무도 그 숲 근처엔 얼씬도 안 했어요.”


꽤나 나서기 좋아할 것 같은 아주머니가 눈치 없이 영감님을 거들었다.


‘아무도 숲 근처에 얼씬도 안 했다고? 그거야 그 때는 정부의 보호에 묶여있었으니까 아무도 그 명당을 건드리지 않은 거지. 근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어. 그 숲은 더 이상 개발제한구역이 아니거든? 이 못 배운 아줌마야!’


머릿속에 막말들이 맴돌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

욕을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혀를 통제하는 게 꽤나 힘든 일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특히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목구멍을 타고 나오려는 욕을 꿀꺽 삼키고, 다시금 거짓으로 혀를 내둘렀다.


“여러분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물론 충분히 여러분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옛날부터 마을을 지켜주던 숲이고, 너무 갑작스럽게 공사를 시작하는 것도 있고. 근데 여러분이 매번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이미 저희들이 허가가 난 사실을 말씀드렸고, 여러분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드렸습니다. 공사 준비도 다 끝난 상태…”


“아니, 주민들과 상의를 하셨다고요? 보상을 해주셨다고요? 그저 윗사람들끼리 결정을 해놓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주민들이 납득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위에서 허가가 났다고, 느닷없이 숲을 밀어버린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하물며 숲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떡하고요.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까지 밀어버리실 겁니까?”


걔 주에 절머 보이는 청년 하나가 말을 가로챘다. 꽤나 정의의 편에서 말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심히 거슬렸다.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표정, 정말 꼴 보기 싫었다.

특히나 내가 말 끊기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데, 꼭 그걸 알고 콕 집어 그렇게 행동한 것 같았다.

나는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내기위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누가 좋아하겠냐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건 당연히 마을주민 여러분이죠. 숲이 개발되면 당연히 주민 분들이 가장 덕을 보죠. 땅값이 오르고, 삶이 안락해지니까요. 숲 근처에 사시는 사람들이요? 땅 팔고 나가시면 되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사는 게 원래 불법 아닙니까? 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다른 곳은 지금 개발하자고 난리입니다. 허가가 없어서 못하는 거지, 전 정말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됩니다. 이렇게 서로 좋은 걸 왜 반대하십니까?”


이렇게 이를 악물고 그들을 설득하는것도 슬슬 지친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공사를 알리고 나서부터 계속 찾아온다.

항의하는 이들을 상대하는 것도 귀찮다.

왜 항상 주제도 모르고 윗사람만 찾는 건지.

이럴 때면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게 억울하다.

급이 조금만 높았더라도 이런 꼴을 안 봐도 됐을 텐데.

이건 뭐, 수준이 맞아야 설득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매번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니 나로서는 미칠 노릇이다.


“개발이고 나발이고 그 숲은 안 돼!! 화를 부를 거여!!”


지팡이가 있어야 겨우 중심을 잡는 노인네가 분개하며 소리쳤다.

가래 끓는 소리로 소리치는 노인네도 그렇고 그런 노인네의 성질머리에 맞추어 흔들거리는 지팡이도 그렇고 너무나 초라해보였다.


‘노인네가 혈압걱정은 안 하시나? 저러다가 뒷목잡고 쓰러지면 누구 탓을 하려고’


나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김 대리에게 신호를 줬다.


‘빨리 경비 안 부르고 뭐해?!’



김 대리는 내 손짓을 보고 알아차렸는지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시퍼렇게 젊은 놈이 아무것도 모르고 개발은 무슨, 개뿔이다 이것아! 조상님이 물려준 숲을 싹 밀어버리는 게 개발이여? 에라이, 천벌 받을 놈들아!”



“예, 벌 받죠 뭐, 까짓 거”



내가 표정을 찡그리며 무시하는 투로 말하자 노인네가 역정을 냈다.

짜증났다. 내가 왜 이런 사람들한테 욕을 먹어야하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 숲의 규제가 풀리고, 숲 개발 건에 대한 수주를 따낼 때만 해도 신나서 덩실덩실 춤을 췄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물론 공사를 할 때마다 수많은 이익단체 및 시민단체들과 실랑이를 벌여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개발을 해서 땅값을 올려주겠다는데, 물론 숲 근처에 불법으로 살고 있는 몇몇 가구쯤이야 오갈 데가 없어지겠지만.

어쨌든 숲의 저주니 옛말이니 하며 터무니없는 이유로 개발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숲 좀 밀면 어떤가? 내 삶이 편해지는데.

물론 젊은 층들은 그런 미신 따위는 믿지 않고, 실속을 따진다.

그들은 두 팔 벌려 개발을 환영하고 있다. 문제는 살만큼 산 노인네들.

노인네들이 워낙 극성인 바람에 문제가 된다. 매일 찾아와 되도 않는 이유로 항의를 한다.

웬만하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환경단체건 시민단체건 수뇌부들한테 몇 푼 찔러 넣어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인데 이곳의 노인네들은 꽉 막혔는지 돈도 싫단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부르셨습니까?”



김 대리가 부른 경비들이 껄렁거리며 올라왔다. 커다란 덩치에 험상궂기까지 한 경비들이 들이닥치자 소란을 피우던 주민들이 조용해졌다.

간사한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나를 상대할 때는 목소리 높이더니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사실 좋게 말해서 경비지, 돈으로 고용한 순도 100% 용역 깡패들이다.

나이로 위아래를 따지지 않고, 돈으로 위아래를 따지는 놈들이라 내가 참 마음에 들어 하는 친구들이다.

공사를 방해하는 시위꾼들이나 마을사람들을 처리하고 협박하는데 이들보다 좋은 카드는 없기에, 돈이 좀 들지만 종종 고용하고 있다.



“뭐, 뭐여?”



“아니, 뭐야 이 사람들은”



“까, 깡패아녀?”



경비의 모습을 한 깡패들의 등장에 마을 주민들이 수근 거렸다.

딱 보기에도 벌써 말을 더듬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깡패? 아니, 이 노인네가 누구보고 깡패래?!!”


그 중에 귀가 밝은 깡패하나가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묘한 긴장감과 함께 사무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내 말은 콧구멍으로도 듣지 않던 노인네들이라 귀머거리인줄 알았는데, 깡패새끼의 소리는 들리는 모양이다.

노인네들에게 아까 전의 당당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말을 잘라먹던 청년도 고작 한마디에 겁에 질려가지고는 눈을 바닥에 깔고 있다.


마음이 정화된다.

나는 나약해진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저기, 어르신들 부탁입니다. 저희도 강제로 노인 분들을 끌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조용히 돌아가 주세요, 조용히!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로 찾아오지 마세요.”


노인네들의 신경을 긁기 위해 ‘조용히’에 악센트를 주며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노인네와 주민들은 나와 경비들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돌아섰다.

그 씁쓸한 뒷모습을 구경하고 있노니, 왠지 모를 성취욕까지 느껴졌다.


“쯧쯧”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뭐, 혀라도 차세요. 나를 차고 싶겠지만’




2.


“날씨가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원래 더위를 잘 타는 편인데다가 현장에 가기 위해 작업복을 입어서 그런지 더욱 덥게 느껴졌다.


“그러게요, 작년보다 훨씬 더워진 거 같네요. 이러다가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 큰 일이겠는데요. 공사가 빨리 진행되어야 할 텐데.”


김대리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을 올려 보았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 작업복에 작업화까지 갖추고 직접 현장에 나가야 되냐? 어떻게 생각해 김대리? 내가 이러고 회사 다녀야 돼? 차라리 사무실에서 노망난 노인네들 상대하는 게 낫지, 나같은 사람이 현장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위에서 워낙 최부장님을 믿으니까 맡기신 거겠죠. 부장님이 일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지 않습니까? 이번 공사 수주 따낸 것도 그렇잖아요. 그 수 많은 경쟁업체를 뚫고 따낸 거 아닙니까? 솔직히 최부장님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따낼 수나 있었겠습니까? 전부 부장님 덕분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현장 대리인으로 보내진 거고요.”


“아, 그런거야? 이거 나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를 않으니 원 참!”


김대리의 아부용 멘트가 날이 갈수록 진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일때는 말도 못 붙이던 친구가 많이 컸다.

이건 뭐, 삼엽충에서 바로 인간을 진화한 수준이다.

지금은 혀가 풀렸는지 완전 아부 머신이다.

지금 상황만 봐도 알 수 잇다. 김대리의 몇 마디에 짜증이 확 가셨다.

적절히 내가 세운 업적을 들먹이며, 비행기 태워주는데 이거 뜨지 않을래, 안 뜰 수가 없다.


“김대리도 이제 좋은 차 끌고 다녀야지, 아마 이번 공사건만 잘 해결되고 인센티브 받으면 비싼 차 몰고 다닐 수 있을 거야. 승진은 당연한 거고. 이번에는 정말 큰 건이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하하하, 제가 줄을 잘 탄 건가요?”


내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자, 김대리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참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다.


“근데 저게 뭐죠?”


현장에 거의 다 왔을 쯤 김대리가 무언가를 발견하곤 말했다. 그 말에 나의 시선이 김대리의 시선을 따라갔다. 나무를 한창 베어내고 있어야 할 공사현장에 모든 장비들과 사람들 그리고 차량이 일반인 무리에 막혀 멈춰있었다.


“뭐야, 무슨일이야? 작업복 입은 사람들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건데 저 인간들은 뭐야? 옆에 차 세워봐.”


“네”


일반인 무리는 공사현장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공사반대시위든 공사구경이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방해물.

가뜩이나 격주로 사무실에 찾아와 출석도장 찍는 노인네들 때문에 짜증이 났는데 뜻하지 않은 상황에 기분이 더욱 더러워졌다.

나는 차문을 세게 열고 현장으로 뛰어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나는 현장에 있던 인부 중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아, 소장님 저 그게”


“답답하니까 빨리 말해”


“그게 작업 시작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나타나서 방해하는데”


“그래서?”


“근데 갑자기 숲에서 누가 나타나더니”


“뭔 소리야? 숲에서 누가 나타나?”


“좀 정신 나간 사람 같은데 전기톱을 들고”


“정신 나간 사람? 전기톱?”


나는 현장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소란스런 공사현장의 주변에는 인부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서있었다.

사람들은 빙 둘러서 원을 만들고 서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하나가 전기톱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꺼져! 꺼지라고!”


그 남자가 전기톱을 휘두를 때마다 사람들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봐, 철민이! 진정해”


“철민아, 정신차려”


‘철민?’


아마도 정신이 나간 그의 이름 같았다.


“아이고, 이게 다 이 공사 때문이여 철민아, 공사 못하게 막을 테니까, 제발 진정 좀 혀”


마을 사람들이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그는 아까보다 더욱 세게 전기톱을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위이이잉!!!"


"안 꺼져? 빨랑 꺼져!!”


“으아아아~!!”


실제로 그가 사람을 해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위협적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모습에 놀라 흩어져 달아났다.

나 역시 그를 피해 차가 있는 곳으로 달아났다.


“부장님, 어떻게 할까요?”


뒤따라온 김 대리가 물었다.


“어떡하다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철민이란 그 사람이 전기톱을 쥐고 어떤 나무 주변을 배회했다.

마치 나무를 보호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이 숲은 안 돼! 이 나무는 절대 안 돼!!”


순간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영감 하나가 철민이란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콧수염이 꼭 족제비처럼 난 영감이었는데, 그 영감은 위험하게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맨몸으로 철민에게 다가갔다.

나와 김 대리는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봤다.


“이보게, 철민이 진정해”


영감은 철민이 흥분하지 않도록 조금씩 다가가며 타일렀다.


“저리가요!”


철민이란 사람은 영감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기톱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전기톱이 영감의 몸뚱이에 닿을 랑 말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질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영감은 그런 상황에서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제발 진정하게, 어머니 앞인데 부끄럽지도 않나?”


소리를 꽥꽥 지르며 전기톱을 휘두르던 그가 ‘어머니’란 말에 반응했다.

그는 휘두르던 전기톱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럽게 변한 그의 태도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적잖게 놀랐다.


“그래, 잘 생각했어. 자네가 사랑하는 어머니 앞이지 않은가? 응, 그렇지? 어머니는 자네가 이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게야, 그러니까 그 위험한 물건은 그만 내려놔”


그의 행동이 잠잠해지자 주변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천천히 모여들었다.

나도 조금씩 다가갔다.

그리고 내 뒤에 찰싹 붙어 있는 김 대리에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했어?”


“아뇨, 아직”


김 대리가 멀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뭐한 거야? 미친놈이 전기톱 들고 날뛴다고 빨리 신고해, 저런 것들 때문에 작업을 늦출 수는 없어!”


“예? 핸드폰을 차에 두고 왔는데”


나는 김 대리에게 신고하라고 핸드폰을 툭 던져줬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영감과 철민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어머니가 싫어해요?”


갑자기 철민이란 사람이 어린아이의 말투로 말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하여튼 어딜 가나 저런 미친놈들이 한 놈씩 있다니까’


“그래, 어머니가 싫어하지. 그러니까 빨리 그 위험한 물건은 내려놔”


족제비 수염이 난 영감의 타이름에 철민은 덜덜 거리던 전기톱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약간 울먹이더니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후우우”


“그렇지, 잘하고 있어 이제 바닥에 내려놔”


철민은 아까와는 너무나 다른 표정으로 영감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랐다.

영감의 말대로 바닥에 전기톱을 내려놓자 영감이 다가가 철민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그래, 잘했어”


“드르르르릉 위이이잉~!!!!!”


순간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전기톱의 전원이 제멋대로 켜졌다.

그 포악한 작동소리에 놀라 모두가 움찔했다.


‘뭐야, 저거 저러다가’


전기톱은 이내 야생마마냥 미친 듯이 날뛰었다.


“끄으아악!!!!”


날뛰던 전기톱의 날이 철민의 다리몽둥이를 집어삼켰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꼭 다리가 전기톱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위이이잉~!!!”


전기톱에 썰린 다리에서 피와 살점이 튀었다.

사방으로 뿜던 피와 살점이 내 얼굴에도 튀었다.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그 쇼크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버렸다.


“이봐 철민이!!!”


영감은 상황도 모르고 쓰러지려는 철민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영감은 확실히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전기톱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바닥에서 뱅글뱅글 돌던 전기톱이 무슨 힘에 의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튀어 올랐다.

참 웃긴 게 튀어 오른 그 높이가 딱 쪼그려 앉은 영감의 모가지 높이였다.


“촤악!!!”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영감이 털썩 쓰러졌다.

영감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영감의 머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려 했으나, 머리가 꽤나 멀리 날아가 보이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란스러웠다.

근데 정작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전기톱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히 누워있었다.




3.


붉은 피와 초록의 풀빛이 비정상적으로 어우러진 적막한 숲에는 묘한 기운이 흘렀따.


“뭐야, 다들 어디 갔어?”


참혹한 참극이 일어난 현장치고는 너무나 고요했다.

공사를 하던 인부들도 구경하던 사람들도 전기톱을 들고 설치던 남자도 목이 달아난 영감도 없었다.

시체라도 보여야 할 것인데, 풀 언저리에 핏물만 고여 있을 뿐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잠깐 눈을 깜박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 숲에 인간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나 혼자 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하늘과 사방을 시커멓게 뒤덮은 나무가 전부였다.


“휘이잉”


피부를 파고드는 스산한 바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부스럭”


순간 숲 옆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풀숲에 숨어서 내 쪽을 바라보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 누구야? 김 대리야?”


나는 풀숲의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제발 김 대리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그것은 내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기분 탓인지 그 무언가도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천천히, 그것과 조금 가까워지자 그것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확실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왠지 낯익은 그것은 풀 사이로 얼굴만 들이민 채, 아주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


왠지 낯설지 않은 그 사람은 대답은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멀뚱히 바라봤다.

족제비를 연상시키는 콧수염이 너무나 거슬렸다.


“이봐요, 아!”


순간 기억나버렸다. 족제비 콧수염, 그 사람의 얼굴이.


“당신 아까 머리가…….”


“…….”


분명히 전기톱에 머리통이 잘려나간 영감의 얼굴이었다.

순간 나를 보던 얼굴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뭔가 불쾌해하는 얼굴.


“…….”


“어, 어떻게…….”


영감의 머리통은 내가 말을 끝낼 틈을 주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붕-하고 허공을 가로지른 머리통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4.


“으아아아!!!!”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 눈에 들어왓따.

나는 작은 침대에 누워있었고, 주변에는 얇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

우선 숲이 아닌,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악몽이었나?”


“다다닥”


순간 바깥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나는 그 소리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웅크렸다.


“부장님, 일어나셨어요?”


김대리가 커튼을 젖히고 불쑥 나타나 말했다.

머리만 불쑥 내민 모습에 약간 놀랐지만, 그래도 간만에 마주한 것 같은 김대리의 얼굴에 심장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어, 김대리”


긴장이 풀어져 힘 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괜찮으세요?”


“여기가 어디야?”


“여기 병원이에요”


병원이라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숲보다는 훨씬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휴우, 근데 내가 왜 병원에 있어?”


“기억 안나세요? 오늘 현장에서”


불현듯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올랐다.

목이 잘린 채 분수대가 되어버린 몸뚱이.

꿈과 함께 오버랩 되는 기억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끔찍한 기억에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현장에서 기절하셨잖아요”


“내가?”


“예”


왠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김대리가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김대리는 별로 걱정을 안 하는 눈치였다.

해병대를 나와서 꽤나 남자답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 강심장일 줄은 몰랐다.

확실히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외모만 보면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만 가도 오줌을 지릴 것 같은데.


“부장님이 기절하셨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정말내가 기절을 했다고?”


“네, 사고 직후 바로 기절하셨는데요.”


평생동안 기절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내가 기절을 했다는 사실도 좀 충격이었다.

뭐, 흔히 볼 수 있는 사고가 아니긴 했지만 앞 뒤를 따졌을 때 확실히 김대리의 말이 맞는 거 같았다.

악몽도 그렇고, 그 사고 이후로 생각나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아!”


순간 궁금해졌다.


“부장님 왜그러세요?”


“어떻게 됐어? 내가 기절한 다음”


“아, 경찰이랑 구급차가 와서 해결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뭔가 망설임이 묻어 나오는 김대리의 얼굴을 보니 대충 짐작이 갔다.


“나이가 많은 분은 즉사했고, 그 전기톱을 들고 있던 남자는 이송 중에 과다출혈로….”


“아, 알았어. 그럼 공사는?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어?”


두 사람의 죽음도 궁금했지만 공사 또한 중요했다.

사실 내게는 그 두 사람의 생사보다 공사현장이 더 중요했다.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로 인해 공사예정에 차질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그게 오늘 사고 때문에 당분간은 경찰들이…”


김대리가 말끝을 흐렸다.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김대리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감은 경찰들이 공사하지 말래?”


“경찰들이 아직 못 찾았다고”


김대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뭘 못 찾아?”


“그게, 머리요”


“머리?”


“예, 그 사람 머리”


숨이 턱 막혀왔다.

방금 전 꿨던 꿈에서 나를 향해 날아왔던 영감의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다.

온몸의 땀구멍이 순식간으로 커졌는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김대리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그 미친놈 때문에 자질이 생겨버렸잖아. 미친새끼”


내가 생각해도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이었다. 뭐 상관없다.

죽은 인간이 듣는 것도 아니고. 그 놈 때문에 공사일정에 차질이 생겼으니, 욕을 먹을 만하다.


“저 그게 그 사람이요, 전기톱 휘두르던 사람”


“그 사람이 왜?”


왠지 김 대리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아까 그 사고 때문에 경찰서에 갔거든요. 거기서 마을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사람 원래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래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 사람을 숲에다 버리고 도망갔는데 그 후로 항상 숲에 엄마가 있다며 숲을 돌아다녔대요. 어떤 날은 엄마 찾았다고 막 소리 지르고 다니고, 그렇게 미친듯이 날뛴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래요. 뭐, 결국에는 아버지가 죽고서 마을을 떠나 그 숲에 들어가서 혼자 살았는데, 그 후로는 마을에도 아는 사람이 별로….”


원래 남의 가정사를 듣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더 들어봐야 머리만 아플 거 같았다.


“미친놈 맞네, 경찰에는 확실히 말했지? 우리 쪽에서는 잘못 없다고, 괜히 트집잡히면 곤란해. 아니, 아예 이번기회에 마을 사람들이 현장에 얼씬도 못하게 그쪽에 말 잘해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사일정에는 차질이 생기겠지만 이 사건이 오히려 공사에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마을 사람이나 공사반대 시위자들을 현장에 못 오게끔 만드는 좋은 구실이었다.

그 생각에 왠지 가슴 한 구석에 미소가 지어졌다.




출처 : 웃대, 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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