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애플 서체의 역사

WWDC 2020이 있었으니 당연히 관련 주제 썰을 풀어야겠지만(참조 1), 오늘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의 기사가 떴다. 서체로 보는 애플 역사이지만 내용은 디테일이 매우 약한데, 우선 1976년 애플이 처음 사용했던 서체인 Motter Tektura를 보자. 아마 Reebok의 로고서체로 기억하실 분이 더 많을 듯 하다. 일단 아래 링크의 본 기사를 읽어 보자.


Apple Font History 〜書体で見るAppleの歴史1〜(2020년 6월 23일): https://note.com/wowinc/n/nd626c70f43ef

이 서체는 오스트리아의 서체 디자이너인 Othmar Motter(1927-2010)가 만든 서체로서, 이 서체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원글에 나온 것처럼 소문자 a의 왼쪽 곡선이, 애플 로고의 베어먹은 사과에 있는 오른쪽, 음푹 페인 곳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참조 2). 물론 현재는 이 서체를 다들 잊었다.


그러나 1984년 매킨토시와 함께 애플 가라몽(Apple Garamond, 참조 3)이 출현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애초에 출판을 염두에 두기도 했고, 잡스 스스로가 대학 시절 배웠던 서체 수업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서체는 오랜 기간동안(2000년대 초까지) 애플 로고는 물론 광고, 상품 상자에도 쓰였기 때문에 익숙하다.


다만 시스템(당시는 OS를 그냥 시스템 X.X라 불렀다) 서체는 좀 달랐다. 화면용 서체는 비트맵이어야 한다는 당시 기술적 한계때문에, 가독성을 위해 산세리프형의 시카고 서체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단순히 스티브 잡스가 도시 이름으로 서체명을 지으라는 지시가 있어서라고 썼는데, 결론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이야기는 좀 더 풍부하다.


당시 매킨토시 그래픽 디자인 전부를 담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수잔 캐어(Susan Kare)가 (역시나) 이 서체를 만들었었다. 그녀는 매킨토시 개발을 이끌던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와 고등학교 동창인지라, 둘이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전철 노선도 이름에 따라 서체 이름을 지었었다.


그때 매일같이 퇴근할 때마다 얼굴을 비죽 들이밀던 스티브 잡스가 서체 이름 목록을 봤고,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도대체 그 이름이 뭐냐,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세계구 급의 도시 이름으로 서체 이름을 지어라고 명령한다(참조 4). 그리고 잡스의 이 명령은 의도치 않게 일본과 한국의 매킨토시용 서체 이름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간지토크(시스템의 일본어 명칭) 기본 서체 이름이 오사카인 것이다. 서체 이름이 도쿄가 아닌 이유도 물론 있다. 시카고의 자매도시가 오사카였기 때문이다. 이 서체를 본받아 서울 서체가 만들어졌고, 뒤이어 일본에서는 사포로 서체, 한국에서는 한강 서체가 매킨토시용으로 나왔다.


시스템과는 달리 하드웨어에 박혀 나오는, 그러니까 키보드 상의 서체는 변경이 잘 안 됐다. 각진 이탤리식 Univers 57이 쓰이다가 1999년 아이북부터 둥그스러워진 VAG Rounded 서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 VAG Rounded(참조 5)는 폴크스바겐 그룹이 만든 서체다. 메르세데스로부터 아우토유니온을 인수, Audi 브랜드를 그룹 산하에 집어 넣으면서 기업 정체성을 바꾸기 위해 고안한 서체였다.


왜냐, 종래의 폴크스바겐처럼 산세리프(정확히는 Futura)를 쓸 것도 아니고, 종래의 아우디처럼 세리프(정확히는 Times)를 쓸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끝이 둥글둥글한 서체를 고안한 것인데, 이왕이면 재빠르게 전세계 마케팅용 배포를 하기 위해 라이선스를 아예 없앴다. 질 좋은 서체가 공짜로 나온다? 그럼 써야 한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서체가 나오면서 애플은 키보드에 찍힌 활자부터 애플워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체를 샌프란시스코로 통합하지만 말이다. 일단 이 기사의 두 번째 이야기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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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오늘까지(WWDC 세션은 보통 1주일간 열린다) 새로 소개된 타이포그라피용 WWDC 발표 내용은 SF Symbols 2이다. 2015년 WWDC에서 등장한 샌프란시스코 서체를 계속 확장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https://developer.apple.com/videos/play/wwdc2020/10207

2. 서체 이야기이기 때문에 주석으로 뺐는데, 베어먹은 사과는 당시 애플컴퓨터의 디자인 실장이었던 Rob Janoff가 흑백 사과 실루엣을 갖고 작업하다가 나왔다. 그냥 사과 그림만 갖다 놓으면 방울토마토랑 다를 게 뭐냐는 이유였다.


베어먹은 편이 낫다는 의미로서, 여기에 6가지 색상을 도입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위 내용은 Owen W. Linzmayer의 Apple Confidential 2.0: The Definitive History of the World's Most Colorful Company(2004)에 나온다. 3. 서체의 꽃, 가라몽(2016년 1월 30일): https://www.vingle.net/posts/1382075

500년간 살아남은 '가라몽 서체'(2020년 3월 14일):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21

4. World Class Cities(1983년 8월): https://www.folklore.org/StoryView.py?project=Macintosh&story=World_Class_Cities.txt

5. VAG의 의미는 단순히 폴크스바겐 악티엔게젤샤프트(주식회사)의 약자로 생각할 수 있는데, 찾아보면 정확한 뜻을 공개한 적이 없다고 한다. VAG Rounded는 당연히 독일어 명칭(VAG Rundschrift)이 있지만 아무도 가라몬드를 가라몽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누구도 이 서체를 룬트슈리프트라 부르지 않았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1990년부터 이 서체를 그룹서체로 통일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2015년부터 폴크스바겐 그룹 차원에서는 TheSans와 TheAtiquaB를 사용 중(아래 첫 번째 링크)이지만 가령 아우디 그룹은 아우디 타입을 별도로 개발해 놓았다(아래 두 번째 링크). https://www.lucasfonts.com/custom/volkswagen-ag

https://www.audi.com/ci/en/intro/basics/typograph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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