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박스 접는 달인 영상으로부터 약 100년 전.

https://youtu.be/nPf309OP-Zk


뭘 이제 와서야, 싶긴 하지만 문득 떠오른 오래된 화제 하나를 우연찮게 떠올려 봅니다. <기생충> 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타고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영화 속에 나온 유튜브 영상 하나도 주목을 받았었죠. 피자 포장 박스를 접을 뿐인 짧은 영상이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 둘 척척 접어 만들어내는 그 동작이 낭비 하나 없이 숙련되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이걸 보고 따라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요? 영화 속 얘기라지만 너무 무리수 아닙니까?


사실 이건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달인들 영상 중 불과 하나일 뿐입니다. 가끔씩 보다보면 정말 저 사람이 나와 같은 인간일까, 싶은 영상들도 있죠.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방에서, 사무실에서 편히 앉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놀라운 재주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예술, 아니 마술과도 같죠.


여러분께 한 가지 예술을 더 보여 드릴까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미국에서 찍힌 사진들입니다.



의아하신가요? 위 사진들은 흡사 오늘날 전시회에 걸려 있는 예술 사진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사실 순수하게 연구 목적으로 찍힌 사진들이죠.


이른바 사이클그래프라는 연구 방식으로 찍힌 사진들입니다. 작업자의 몸 곳곳에 작은 전구를 달고, 방을 다소 어둡게 한 상태에서 평소 하던 작업을 그대로 해보도록 시킵니다. 노출을 길게 해 카메라로 촬영하면, 작업자의 움직임이 마치 빛의 궤적처럼 긴 실선으로 사진 위에 그려지죠. 위 사진들에서 보이는 것처럼요.


알기 어렵지만, 왼쪽 실선 궤적이 위에서 언급한 사이클 그래프 방식. 오른쪽 점선 궤적이 아래서 적은 시간까지 표현한 방식. 제가 이해한 건 딱 그 정도네요.


만약 몸에 붙인 전구들을 일정 시간 간격으로 깜빡이게 하면, 궤적은 완전한 실선이 아니라 점선처럼 될 겁니다. 대신 각 점선의 길이가 동작 구간별 속도에 따라 달라지겠죠. 빨리 움직인 부분에선 점선이 길게, 느리게 움직인 부분에선 짧게 끊어지는 선이 여러 개 나타나는 식으로요. 사진이라는 정지된 그림 위에 시간 흐름을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장도리 부분으로 못을 뽑는 작업자의 손 사진. 팔을 따라 이어진 전선과 중지에 끼운 반지 같은 것이 보이시나요? 촬영을 위해 전구를 단 부분입니다.
위쪽 사진은 의사가 환자를 봉합하며 매듭을 묶는 동작이 궤적으로 표현된 거고, 아래쪽 사진은 일류 골프 선수가 스윙 동작하는 것을 같은 방식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소개한 사진들은 1910년대에서 20년대 사이, 프랭크 길브레스와 릴리언 길브레스 부부가 수행한 동작 연구의 일부분입니다. 연구를 창안한 프랭크 길브레스는 숙련된 작업자의 동작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하거나 불편한 도구 자세 등을 바꾸는 등 개선을 통해 작업자의 피로와 부상 위협을 줄이면서 생산성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죠. 마치 <기생충>에서 송강호 씨 가족들이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박스 접는 방법을 배우려 했듯, 길브레스는 다만 그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모든 사람이 익힐 수 있도록 평생 동안 연구했습니다.


프랭크 길브레스가 동작 연구를 개창했다면, 아내 릴리언 길브레스는 이를 오늘날 산업 공학의 형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19-20세기 사회적 성 역할 관념이 굉장히 굳건하게 뿌리박혀있는 시기이기에 보통은 부인 쪽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평가절하하게 되는 일이 많겠습니다만, 릴리언 길브레스만은 아마도 그런 시각으로 보기 힘들 것입니다. 1924년 남편이 급사한 후로도 부부의 공동 연구를 그대로 계승해 1972년 93세로 사망하기까지 왕성한 사회 활동을 했으니까요.


1921년 미 산업공학회 첫 여성 회원
1926년 미 기계공학회 두 번째 여성 회원
1950년 여성엔지니어협회 첫 명예회원
1965년 국립공학 아카데미 첫 여성 회원
1966년 여성 최초로 후버 메달 수상
프린스턴, 브라운 대, 미시간 대 등 23개 대학 명예 박사 학위


릴리언 길브레스 한 사람이 받은 영예만도 이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산업 공학계의 퍼스트 레이디'였을까요?


그렇지만 역시 릴리언 길브레스 얘기를 하자면 필연적으로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요한 부부 얘기는 이후 다른 글에서 천천히 풀어 보죠.


https://youtu.be/8iTOSgAnJ54

길브레스 부부가 타자 치는 여성을 촬영한 활동사진영상. 영상은 세 파트인데, 첫 파트는 타자를 치는 전체 모습을, 둘째 파트는 작업 중인 여성의 시선 움직임을 찍었고, 마지막 파트에선 타자기 위 손 동작에 집중해 촬영합니다. 낭비되는 동작을 찾아내 개선점을 확인하기 위한 거죠.
타자 치는 여성 옆 선반에 올려놓은 특이한 시계는 길브레스가 고안한 장치입니다. 당시 활동사진 촬영이 수동으로 크랭크를 돌려가며 찍는 방식이다보니 단순히 찍힌 필름만 가지고는 시간 흐름을 파악할 수 없어서 시계를 놓고 같이 찍게 되었다고 하네요. 마이크로 크로노미터라는 저 시계는 1/2000분까지 측정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길브레스 부부가 촬영한 여러 영상을 빨리감기 형식으로 합쳐놓은 영상도 있던데 한 영상당 15분 길이라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15분은 너무 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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