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발리에 데옹

주말 특집, 18세기의 트랜스섹슈얼, 슈발리에 대옹(Chevalier d’Éon, 1728-1810)이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나오는 오스칼의 일부는 이 캐릭터를 본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무척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여성”이다. 외교관이자, 기사이자, 작가이면서 칼로 여러 남자들을 쓰러뜨렸다. 여자 옷을 입은 채로 말이다.


때는 루이 15세 시절이다. 루이 15세는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정보조직을 하나 만들기로 하고 이름을 “국왕의 비밀(Secret du roi)”로 정한다. 왕비의 자선관(참조 1)인 Fleury 추기경을 수장으로 하는 이 국왕의 비밀은 32명의 요원으로 시작됐다. 뭔가 파이브스타스토리의 미라쥬 기사단을 떠올리게 하는 이 조직은 나중에 루이15세의 서거로 해체된다고 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소수가 남아서 계속 활동을… 읍읍)


이 국왕의 비밀이 거둔 업적은 꽤 많다. 7년전쟁(1756-1763) 당시 러시아를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폴란드 국왕을 이른바 택군(擇君)했으며, 루이 16세 때는 미국 독립운동에 결정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영국을 침략할 계획을 세운다…


슈발리에 데옹이 이 비밀스러운 집단에서 제일 잘 알려진 인물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Chelsea Manning(1987-현)과 상당히 유사한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비밀 임무를 많이 폭로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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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곱게 태어나고 여리여리했던? 슈발리에 데옹은 한 가장무도회에서 루이15세의 눈에 띈다.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왕은 그를 곧바로 고용, 러시아로 보낸다. 차리나 옐리자베타(Елизавета Петровна, 1709-1762. 참조 2)의 주변에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여자 황제였기 때문에 여장을 해서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이 전략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프로이센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슈발리에 데옹이 옐리자베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옐리자베타의 별난 취미 중 하나가, 남자는 여자 옷으로, 여자는 남자 옷으로 입혀서 무도회를 개최했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남자 옷을 입은 데옹은 너무나 여성스러웠기에 모두들 모습에 홀렸다는 전설이 있다.


만약… 옐리자베타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7년전쟁의 유럽 전선은 프로이센의 멸망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7년전쟁은 어떻게 보면 근대 이후 첫 세계대전(참조 3)이라 부를 정도로 중요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옐리자베타 사후의 러시아는 프로이센으로 편을 바꿨고, 슈발리에 데옹은 이제 영국으로 파견된다. 7년 전쟁 종료 후의 협상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였다.


런던에서도 슈발리에 데옹의 매력이 빛났다고 한다. 영국측 협상 담당자를 꼬셔서 음식과 입담으로 한껏 흥분시킨 다음, 그가 갖고 있던 문서를 훔쳐냈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영국측의 종전 협상 전략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물론 슈발리에 데옹의 자서전에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부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국왕의 연금이 늘어난 걸 보면 뭔가 얻기는 얻어냈던 모양이다.


그래서 국왕은 이번에 그/녀에게 아예 영국 침략 계획을 기안해 보라 시킨다. 7년전쟁 결과로 인해 해외식민지를 대거 빼앗긴 프랑스로서 뭔가 복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 주영 프랑스 대사 자리가 비었고, 그/녀는 임시로 대사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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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가 그녀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리셉션이 매일같이 열리고 국왕 조지3세를 비롯하여 영국 친구들이 끝없이 늘어났다. 그러나 예산 지출이 너무나 많아서인지 결국은 제동이 걸린다. 정식으로 대사를 임명하여 그녀를 차석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아예 직위해제까지 해버렸다. 덤으로, 영국 침략 계획도 포기했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갖고 있던 비밀서류 몇 가지를 폭로하고, 영국 내에서 소송도 제기한다. 신임 프랑스 대사가 자기를 납치하고 죽이려했다고 말이다. 이 또한 과장이 있기는 해도 증언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던 듯 하다. 둘의 사이는 워낙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인데, 영국 정부와 경찰은 그녀를 보호했다. 이때부터는 영국 내 일반 대중에도 유명해졌다. 여자인데 기사이고, 외교관이고, 결투도 한다고 말이다.


프랑스 정부로서는 괴로운 일이었다. 남자인 거 다 아는데 이제 좀 그만 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의사들의 진단서를 증거로 자기가 여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원래 여자인데, 상속 때문에 아버지가 잠깐 남자로 키웠을 뿐이라고 말이다(오스칼?). 결국은 14개월에 걸친 협상이 시작된다. 관련 문서를 다시 프랑스 정부로 넘기고, 데옹은 프랑스 귀국을 조건으로 하고 말이다.


이때 프랑스 정부에 내민 슈발리에 데옹의 조건은? 법적으로 자기를 여자로 인정하라였고, 프랑스 정부는 쿨하게 ㅇㅋ한다. 다만 입국하면 여자 옷을 입고 다녀라고 했으며, 심지어 Rose Bertin(참조 4)이 그녀에게 드레스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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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쓴 후 그녀는 1785년 다시금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런던을 떠나있는 8년 동안 집세가 밀려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이건 좀 과장 같다). 순식간에 빚쟁이가 된 그녀는 남은 인생을 펜싱 결투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짤방(참조 5)도 거기서 나온 것.


시합은 대부분 그녀의 승리였다고 한다. 때마침 일어났던 대혁명에 대해 그녀는 찬성, 아무래도 왕실과의 인연이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다. 합스부르크를 상대로 자기가 여자들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겠다고 혁명의회에 제안했으나 의회 내 군사위원회는 이 제안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가난에 허덕이다가(국왕 조지3세가 허용한 연금밖에 없었다), 1810년 런던에서 사망한다. 그런데 영국 의사회가 기어이 그녀의 성별을 사망 후에 확인하고 말았다. 남자라고 발표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대영박물관이 그녀의 작품들을 전시(참조 6)하고 있기는 하다.


물론… 유달리 프랑스 근세를 좋아하는(참조 7) 일본도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만화와 아니메, 슈발리에(シュヴァリエ 〜Le Chevalier D'Eon〜, 참조 8)를 내놓기는 했는데 아마 너무 사실에 근거해서 그려서 인기는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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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백성에게 직접 보조금을 제공한다 하여, 자선관(aumônier, 영어로는 almoner)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역할은 왕실 살림을 관리하는 최고 종교 관계자이다. 영국 왕실은 지금도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성공회 주교, John Inge(1955-현)가 맡고 있다.


2. 어떻게 보면 예카테리나 대제의 시어머니 격이라 할 수 있겠다. 2019년 나왔던 HBO 드라마, Catherine the Great (2019)에서 잘 묘사된다. https://youtu.be/bNSacMPj1tE



3. 유럽은 물론 북미 대륙과 인도에서 전쟁이 났다. 물론 해외에서의 전쟁은 주로 영국과 프랑스, 유럽에서의 전쟁은 주로 프로이센 vs. 나머지였으며, 이때 프로이센이 멸망했다면 영국은 결코 종전협상에서 북미대륙이나 인도를 전부 얻지 못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대체역사의 훌륭한 시작.


4. 로즈 베르탱(1747-1813)은 마리 앙투아넷에게 드레스를 만들어준, 요새 개념으로 보면 오뜨 쿠뛰르를 착안해낸 최초의 패션디자이너라고 봐도 과장이 아니다. 그녀의 인생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5. 1789년, 생조르주와 슈발리에 데옹의 펜싱 결투를 묘사하고 있다. 출처는 위키피디어. https://fr.wikipedia.org/wiki/Charles_d%27%C3%89on_de_Beaumont



6. 사후 조사를 기록한 그림도 있다.


대영박물관: 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term/BIOG52143



7. 40년만의 베르사이유의 장미(2019년 10월 7일): https://www.vingle.net/posts/2680244



8. https://youtu.be/Vlz_eDIfN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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