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장군 이사부는 우산국을 어떻게 정벌하였을까?


혹시 이사부 장군의 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사부 장군이니 당연히 이씨라고요? 그것도 경주 이씨?

이사부(異斯夫)는 《삼국사기》에는 김씨, 《삼국유사》에 는 박씨 성으로 나옵니다.

즉, 김이사부이거나 박이사부. 우리가 지금 그분을 성을 빼고 이름만 막 부르는 거예요. 이런 실례가…….

《삼국사기》에선 내물왕의 4세손이 김이사부로 나오는데, 태종이란 이름도 있었다네요.

《삼국유사》에선 이상하게도 동일 인물인데 박이종(朴伊宗)이라고도 나옵니다.

또한 《일본서기》에선 ‘이질부례’ 로 적혀 있다네요.

실제로 신라의 충신 박제상도 《삼국사기》의 기록이고, 《삼국유사》에서는 김제상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일연 스님이 본 옛 사서에 문제가 있었거나 신라 왕위를 서로 주고받은 박, 석, 김씨 왕 족 가문이 상호 혼인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성씨를 혼용해서 썼을 수도 있다고 여겨지지요.

지금 우리가 유교적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이해가 안 되지만, 일본에는 지금도 데릴사위를 들여 자녀들이 어머니 성씨를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여기서는 《삼국사기》 버전으로 표기할게요.

김이사부 장군은 우산국(울릉도와 독도)을 정복해 독도까지 우리 땅으로 만드신 위인으로 유명한데, 어떻게 우산국을 정복했는지는 다들 잘 모릅니다.

먼저, 김이사부 장군은 내물왕의 4대손이니 금수저 왕족 출신이었습니다.

생년이 정확치는 않으나 505년 실직성(삼척) 군주(軍主)로 처음 임명된 것으로 보아 485년경 출생했다고 여겨지므로 512년(지증왕 13년) 27~28세 젊은 나이에 지금의 강릉인 하슬라(또는 아슬라) 군주로 부임합니다.

그 두 지역은 신라의 고구려 방어 최전선이자 신라 수군의 중요한 군사항구였어요.

이처럼 당시에도 중요하게 여겨진 강릉은 그 후로도 번성해 조선 시대 지방 행정구역을 팔도로 개편할 때에도 강원도의 첫 글자로 쓰일 정도로 큰 고을이었고, 지금도 강원도에서 원주와 함께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참고로, 원주 역시 통일신라 5소경 중 하나였으니, 강원도의 대도시 두 곳은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네요. 하지만 당시 동해 바다에는 우산국(울릉도)과 대마도 해적들이 날뛰고 있어 어선을 공격할 뿐 아니라 때때로 상륙해 주민들을 납치해 가고 있었고 신라 수군은 패배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평생 해적질로 단련된 섬사람들과 맞상대해선 이기기 힘들겠다고 여긴 김이사부 군주는, 수군과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공표합니다.


김이사부 : “친애하는 백성 여러분. 나 쫌 보이소.

이번 주말에 ‘라이온 킹’ 영화를 단체 관람하면서 사자를 자세히 관찰한 뒤 각자 나무로 사자를 하나씩 조각해 오이소.” 


주민과 수군 : “엥. 저기요? 군주님. 아침에 뭐 잘못 드신게 아니요?” 


김이사부 : “이번에 우산국 해적 글마들을 무찌를 신의 한 수이니 쫌 만 기다려주시요.” 


주민과 수군 : “어째 새파란 젊은이가 군주라고 오더니 분위기가 좀 쌔하드래요.”


왜 갑자기 사자가 등장했느냐면, 당시로선 아주 힙한 인도산 종교 불교가 전래되면서 ‘부처님이 고함을 치면 사자의 울음소리로 커져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마치 21세기 마블 유니버스 세계관 마냥 알려지던 때인지라 글로벌 얼리어답터 김이사부 장군은 일반 백성들로서는 세상 처음 보는 인도 사자를 이용한 심리전을 구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자와 관련해서 잠깐 삼국의 불교 전파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해야겠네요.

당시에는 인도 에서도 역시 불교가 체계화되지 않았는데, AD 1세기에 중국 후한 (後漢)에 전래되면서 황실에서 크게 환영받게 됩니다. 원래 초기 불교는 개인의 자기 수양을 중요시했는데, 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르면 덕을 쌓은 이일수록 더 높은 신분으로 태어난다는 점에 착안해 중국에서는 왕즉불(王卽佛), 즉 왕이 곧 부처라는 사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즉 귀족이나 백성들보다 왕 자신이 전생에 더 덕을 쌓았기에 황제로 태어났다고 강조함으로써 감히 반역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데 요긴하게 이용됩니다.

이후 중국 위촉오 삼국시대와 5호 16국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며 백성들도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불교에 의존하게 되고, 남북조 각 왕실마다 한자로 번역된 불경을 보급함과 동시에 중국식 불당과 불상, 불탑 등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체계를 정립하지요.

이처럼 300여 년간 중국에서 숙성한 불교는 우리나라로 전래되는데, 우선 372년 중국 북조 전진(前秦)에서 고구려로 순도 스님이 찾아오고, 뒤이어 394년 중국 남조 동진(東晉)에서 인도 출신 마라난타 스님이 백제로 오면서 불교가 전래됩니다.

당시 마라난타 스님이 도착한 곳이 지금의 전남 영광군 법성포(法聖浦)라네요.

이처럼 당시 우리나라 임금들 역시 왕즉불 사상이 권력 안정화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그러나 중국과 직접 교류가 불가능했던 신라에는 고구려 승려 묵호자를 통해 400년대 초에 전래되지만 곧 격렬한 저항에 부딪힙니다. 당시 3개 성씨의 성골, 진골 왕족뿐 아니라 각 귀족들도 나름의 가문 탄생 신화를 가지고 있었고, 별도의 사당도 운영하던 상황에서 왕만 더 돋보이는 불교는 아무래도 껄끄러웠던 거지요.

그러나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쯤 되는 사인(舍人) 이차돈이 527년 법흥왕과 모의해 사찰 건립이 늦어지게 했고, 법흥왕이 일부러 신하들 앞에서 “누가 감히 왕의 명을 어기느냐?”고 이차돈의 목을 치게 하자 하얀 피가 솟구치고 꽃비가 내리고 지진이 일어나는 기적을 일으키니, 이를 본 귀족들도 마지못해 불교를 수용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이 이차돈 역시 이사부 장군처럼 성이 이씨가 아니라 이름이 이차돈이에요. 성은 김 또는 박이고요. 이차돈의 순교 이후 신라는 원효, 의상 등 많은 스님들의 대활약으로 백성들까지 독실한 신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삼국 중 가장 독실한 불교 국가로 거듭나게 되지요.

따라서, 김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러 가던 512년은 이차돈이 순교하기 15년 전이어서 아직 불교가 신라 왕족들에게만 알려진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신라 백성이건 우산국 사람들은 아직 인도 사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였기에 이걸 활용한 겁니다.


이에 김이사부 장군은 512년 6월(당시20대), 배마다 사람보다 큰 사자 조각상을 태우고 한달음에 130  km 바닷길을 가로질러 울릉도 앞바다로 몰려갑니다.

따라서 많은 어린이 역사 위인전 그림에 나오듯이 김이사부 장군이 수염을 휘날리며 배를 몰고 가는 할배 장군으로 묘사되는 건 가리지날~.

멀리서 이 광경을 보던 우산국 주민들은 신라 수군 배 앞머리에 괴상한 생물이 떡 하니 앉아 연기를 토해내는 것을 보며 경악하지요.

이때 김이사부 장군 스피커를 켭니다.

김이사부 : “아아, 우산국 아재들요. 나 좀 보입시다. 우리 신라가 해외 직구한 이 인도산 사자를 풀어서 다 잡아 먹어삐리라 할낀데 항복할끼요, 싸울끼요? 우짤란교?”


우산국 우해왕 : “허걱, 저게 뭐꼬? 항복하겠다요.”


울릉도 전설에 의하면 과거 대마도 해적들이 우산국에 수시로 침입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우해왕이 자신의 수군을 이끌고 대마도로 가서 대마도주를 위협해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고, 대마도주의 셋째 딸 풍미녀를 아내로 맞아 혼인 동맹을 맺었던 용맹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데려 온 풍미녀의 사치가 심해 우산국 백성들의 원망이 치솟고 있었으니 신라로서는 우산국을 제압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죠.

이처럼 재치로 적을 굴복시킨 김이사부 장군은 우산국 자치를 허용하고,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는 속국이 되도록 하는 선에서 타협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한반도 주변 섬들과 대마도, 유구국(오키나와), 타이완, 필리핀까지 그들만의 해상 네트워크가 존재했기 때문에 무력으로 진압을 했다면 위기감을 느낀 이들과 지속적으로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이 정도 선에서 절충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신라는 중국에만 머리를 숙이고 주변 국가들로부터는 미니 황제국으로 대접받고자 했기 때문에, 탐라국(제주도), 우산국(울릉도), 대마국(대마도) 등 주변 섬들을 직접 지배하지 않고 매년 조공을 받고 금 품을 하사하는 형식으로 자치를 허용했습니다.

어쨌거나 김이사부 장군에게 우산국이 종속을 다짐함으로써 그후 150여 년간 침입 기록이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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