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 이민숙
하얀 밤 맑아지는 머리를 조아리면
서늘한 가슴은 따스한 온기가 감돌고
묵향으로 번져 나가는 까만 글자는
헝클어진 실타래가 풀려나가듯
흰 백지를 채운 수 만큼
산란한 머리는 어느새 개운하다
헛헛하고 텅 빈 마음에
성냥을 그어 촛불을 밝히는 날에는
금세 나를 두른 글 꽃은
심지를 태우면서 다시 피어난다
나만의 세상에서 우주를 여행하다
심연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어를 손에 꼭 쥐고 육지로 나가면
때론 칼날 같은 활자들이
때론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보드레한
글자들이 연거푸 춤을 추면
대어를 낚아챈 어부의 심정으로
벌써 저녁상이 푸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