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공기총과 자유의지

제목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

감독 :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슈아 브롤린 등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22분



코엔 형제


미국 영화감독들 중엔 유명한 두 형제가 있었다. "있었다."의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한 형제가 형제에서 남매로 남매에서 자매가 되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형제의 시간차 성전환 수술,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과거형)다.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 영화의 감독 코엔 형제,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려운 영화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뭐 하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영화인데, 코엔 형제의 영화와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난해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 혼돈과 인간의 유약성. 이것들이 코엔 형제의 영화들에서 주구장창 되풀이되는 주제다. 인간은 누구도 다가오는 불운을 예측할 수도 피해 갈 수도 없다.


불운에 대비하고 대처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결국 무위로 돌아간다. 이는 이 영화의 후기작인 2009년도 작품 <시리어스 맨>에 보다 명징하게 드러난다. <시리어스 맨> 에서 불운은 '폭풍'으로, 앞일을 예견하고 불운을 피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칠판 가득 빼곡히 적힌 '불확실성의 원리'로 표현되어 있다.


칠판 가득 빼곡히 적힌 공식, '불확실성의 원리' 에서 도출할 수 있는 내용은 결국 앞 일은 불확실하고 인간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결과뿐이다.

모든 걸 집어삼키는 태풍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온다.


말하자면 인간은 닥쳐오는 파멸 앞에 구둣발에 밟히는 개미처럼 무력하다는 냉소적인 시선이 코엔 형제의 주요 관점이라 하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해석 - 공기총과 자유의지



본격적으로 코엔 형제의 관점으로 영화를 보자.

늙은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과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는 각각 대비되는 하나의 상징이다. 벨은 질서를, 안톤 쉬거는 혼돈을 상징한다. 질서는 예측 가능하고 선한 것이지만 반대로 혼돈은 예측 불가능하고 악하다.



<시리어스 맨>에서 불운을 '폭풍'으로, 폭풍을 피하려는 인간의 시도를 '무위에 그치고 마는 몸부림'으로 그렸던 것처럼 불운을 몰고 다니는 안톤 쉬거는 젊고, 악랄하고 기운이 넘치지만 질서를 표상하는 보안관 벨은 늙고 기력이 쇠해간다.


'노인'


벨은 쉬거를 막고 불운으로부터 르웰린 모스(조슈 브롤린)를 보호하려 하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 만다. 선함과 질서가 쇠한 틈을 타 혼돈과 악함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선함과 예측 가능성으로 표상되는 질서만으로 굴러가는 만만한 세상은 없다는, 코엔 형제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를 내포하는 제목이다.


"원칙 때문에 죽게 되면 원칙 같은 게 다 무슨 소용이냐."


쉬거의 살인에는 명백한 이유가 없다. 동전은 그저 대외적인 명분에 불과하다. 쉬거는 그냥 죽이고 본다. "신경에 거슬리면 죽인다." 도 합당한 설명은 아니다. 철교 위의 까마귀도, 수다쟁이 주유소 아저씨도 신경에 거슬려서 죽이려고 했지만, 둘 못지않게 신경을 거스르게 한 트레일러촌 관리사무소 아줌마는 그냥 살려준다. 그렇다고 여자라서 살려준 것도 아니다. 그저 무원칙이 쉬거의 원칙이다.



그는 마치 무작위로 찾아오는 불운처럼 예측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다. 쉬거는 불운과 혼돈 그 자체다.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혼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질서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쉬거란 혼돈은 어떤 질서로도 설명되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쉬거의 총이 도살에 쓰이는 도구라는 점도 인상 깊은데, 마치 예고치 않게 닥쳐온 불운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뜻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동전의 앞뒤와는 상관없이 어차피 정하는 건 당신."


혼돈 그 자체로 생각됐던 쉬거지만 그도 혼돈은 아니었다. 혼돈은 뚜렷한 의지가 없다. 칼슨 웰스를 죽이고, 공기총으로 사람들을 죽여가며 원칙과 자유의지를 비웃은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살인은 그의 자유의지였다. 그도 유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불가해하고 해석될 수도 피할 수 없는 혼돈인 척하는 그에게 때마침 불운이 닥쳐 제대로 가르쳐 준다. 예견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거대한 폭풍 같은 불운이 그의 팔을 부러뜨림으로써. 차 사고로 삐죽 비져나온 팔 뼈의 고통에 신음하는 유약한 인간은 목격자인 소년들에게 자신을 봐도 못 본 것이라며 당부한다. 남자의 당부가 뻘쭘하리 만큼 소년들은 사고가 난 남자보다 넉넉히 받은 셔츠의 값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국경에서 모스에게 점퍼를 팔았던 청년들처럼 아이들의 관심은 그저 돈에 쏠려 있다. 모스의 돈 가방은 어디로 갔을까? 가방을 숨기기에 모텔의 환풍구는 너무 비좁았다. 아마 코엔 형제의 전작 <파고>의 돈 가방처럼 가방은 죽은 사람만 아는, 아무도 모를 눈밭 같은 장소에 숨겨졌을 확률이 크다. 그러나 돈은 중요하지 않다. 돈은 우리 앞에 닥쳐올 거대한 혼돈을 해석해 주지도, 막아주지도 못한다. 결국 혼돈을 피해 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선의와 자유의지가 때론 혼돈 앞에 무력할지 몰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 몰라도 쉬거가 '노인'이 되어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앞날은 예측 불가능하고 불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지만 특히나 자만하는 이들에겐 잊는 법 없이 꼭 찾아온다. 패배를 모르던 자신만만한 총잡이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다가 결국 허망한 죽음을 맞게 된 것처럼(카우보이의 노래) 쉬거도 제 명을 다 살다 가진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도 혼돈이나 불운 그 자체가 아니라 총에 맞으면 다리에 구멍이 뚫리고 차에 치이면 팔 뼈가 튀어나오기도 하는 유약한 인간들 중 하나니까.



결국 다시 '노인'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 관한 코엔 형제의 관점은 다소 냉소적이지만 염세주의적인 시각으로까지 흐르진 않는다. 불운과 불행을 극복할 수 없다 해도 그들은 질서를 세우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마저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진 않는다. 행여 그 시도가 무위로 끝이 난다고 해도.


<파고>에서는 살인범들을 쫓는 이는 임신한 보안관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이렇듯 짓밟히지 않는 가능성으로, 이 영화에서는 '꿈'과 '이야기'라는 원형으로 존재한다. 약탈자들에게 맞서 불의의 죽음을 당하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총을 찾았다는 보안관 벨의 삼촌의 이야기와 바로 이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벨의 꿈이다.


꿈에서 벨은 자신보다도 젊은 아버지가 횃불을 들고 말을 타고 산길을 달려 가고 있는 걸 본다. 자신을 앞질러 가셔서 먼저 어둠 속에 도착해서 어둠을 몰아내고 불을 밝히고 계실 거란 사실을 안다고 벨은 이야기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온갖 악한 것들이 튀어나온 뒤에 마지막으로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희망이 튀어나왔다는, 그러나 그것은 가장 작지만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는 희망의 비유.


먼저 가 횃불을 밝히고 계실 영원한 젊음의 아버지(통상적으로 아버지는 질서를 상징함.)처럼, 불운과 불행의 폭풍이 미처 꺼뜨릴 수 없는 불씨가 있다. 혼돈에 맞서싸우며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세우려 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때론 무위로 돌아가더라도 헛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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