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전하, 각하 등 호칭 이야기

(하나라, 상나라 시절 궁궐 상상도)


옛날 처음 나라가 세워지던 시절 상나라, 주나라는 결국 도시국가 였습니다. 천하를 통치하는 왕이 존재하지만 왕이 직접 다스리는 지역은 도성과 그 주변 일부 지역일 뿐이고 나머지는 제후들이 다스렸죠


왕은 자그만한 성을 쌓아 도시를 세웠고 그 안에 궁궐을 지었으니 그것이 나라 국 (國)입니다


이 시대 국인이란 말은 곧 성안에 거주하는 백성만을 지칭했죠

성 밖에 살면 야인이라 했습니다. 


이런 작은 나라들이였다고 하나 그렇다고 왕이란 존재가 나름 하늘의 대리자인 천자라고 하는데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서 노숙하고 밥먹을 수는 없죠

왕이 사는 공간과 그 주변을 배치하는데 나름 법도와 예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야 좀 뽀대가 나거든요

(청나라 시대 궁궐 배치 예법, 궁중 예법은 주나라 시대 정비된 주례를 기준으로 모든 왕조가 따랐습니다)


왕이 사는 집의 안쪽에는 육궁이라 하여 왕비와 후궁이 거주하고 왕이 휴식을 취하며 생활하는 공간은 내조와 연조라 부릅니다

내조의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왕의 침전을 함부로 넘어오지 못하게 경비초소와 같은 망루를 세웠으니 그것을 궐(闕)이라 합니다


궁(宮 왕의 침전) + 궐(闕 왕의 침전을 지키는 망루)

우리가 흔히 부르는 궁궐이란 말이 여기서 나오죠

왕이 신하들과 만나서 정무를 보는 건물과 그 공간을 치조라 부르며 신하들에게 각자 주어진 업무를 보는 공간을 외조라 부르죠

(상나라 궁궐과 그 앞의 조정)


초기 도시국가 시절에는 이런식으로 치조를 만들고 좌우에 공간을 두어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였으며 가운데 큰 돌로 길을 만들어 지나게 했습니다. 기둥 몇개로 만든 문을 지나면 앞에 신하들이 정무를 보는 공간인 외조가 나오는 수준이죠


사실 그 당시 외조라는 것도 별개 아닙니다. 왼쪽에 느티나무를 3그루를 심어 삼정승이 그늘에 앉아 쉬게 했고 오른 쪽에 가시나무 9그루를 심어 9경이 그늘에 앉아 쉬게 했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작은 나라의 실무를 보았으니 나중에 국가의 삼정승을 다른 말로 삼괴 三槐 라고 부르게 됩니다. 정승이 앉아 있는 나무 세그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간의 개념은 이후 건물의 크기와 배치 숫자의 차이만 있을 뿐 수천년 간 동아시아 궁궐 건축 및 국가 기관 설치의 기본이 됩니다. 유교를 국시로 정한 조선시대에 경복궁 내에 만든 외조와 치조의 구분 또 한양 도성 전체 종묘, 사직단, 광화문 거리와 같은 배치에도 영향을 주죠

(동아시아의 모든 수도 도시 구획, 궁궐 건축의 표준이 됩니다. 조선 한양에 경복궁 앞으로 광화문 광장이 있고 좌우 6조 관아 서쪽에 사직단 동쪽에 종묘가 세워지는 것도 주례 법도에 따른거죠)


(상나라 궁궐 복원 건물)


이 시절 나라의 통치를 어찌했느냐?

이렇게 왕이 정무를 보는 치조 건물 앞에 넓은 뜰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 뜰 가운에 큰 건물에 왕이 서 있고 그 밑으로 신하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것이죠


천자가 정무를 보는 것은 하늘의 뜻을 전하는 것이기에 하늘의 기운을 받고자 해가 뜨는 아침에 모두 모여서 예를 표하고 정무를 시작했으니 아침마다 왕과 신하들이 모이는 뜰을 조정(朝廷) 이라 부릅니다. 사극에서 흔히 말하는 조정에서 어쩌고의 유래입니다

(조선시대 궁궐 앞의 뜰 )


우리가 청와대에서 어쩌고 하면 행정부의 정책이라 이해하듯 실제 공간을 지칭하던 것이 정부 라는 의미로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죠


제목은 폐하, 전하 등 호칭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이리 잡소리가 길어? 싶은데 이제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궁궐 정전 앞의 계단과 섬돌 폐(陛))


왕이 뜰앞에 모여서 신하들과 이야기 할 때 그래도 왕인데 얼굴 마주대고 다이 뜰수는 없거든요


왕은 건물 위에서 내려다 보고 그 위엄을 더 하고자 공간으로 구분했으니 왕이 정무를 보는 건물은 계단을 두어 높힌 후 그 앞에 돌판으로 이쁜 장식을 박아 왕의 위엄을 더하게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저 돌 계단을 바로 폐(陛) 라고 부르죠


네 우리가 폐하(陛下) 라고 부를 때 그 '폐' 자입니다.


주례에 따르면 왕이 정무를 보는 건물에 있을 때 그 계단 밑에는 반드시 왕을 호위하는 신하를 세우라 했으니 그것이 왕의 예법이라고 나옵니다

(고대 조정에서 왕과 신하가 대화하는 구조 )


때문에 조정에 모인 신하들이 왕에게 어떤 말을 걸때 "야 임마! 일루와바~" 하며 바로 직접 말을 걸어선 안되는 것이죠


예법에 나온 그대로 섬돌 밑에 서있는 사람에게 "~~이러 이러한 일이 있으니 왕에게 아뢰어 주십쇼" 하고 부탁을 하고 그 신하가 대신 말을 전하게 됩니다.


이런식이 되는 거죠

"폐하~(섬돌 아레 서있는 신하를 부르며) 이러 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로 섬돌 아레 있는 신하를 불러서 대신 말을 전해 달라고 부르며 쓴 '폐하'라는 말인데 그럼 신하 없이 왕과 직접 대면하게 되면 어찌 될까요. 한번 정해진 법도는 그 것이 예법임으로 불변하게 되는 것이죠


왕에게 바로 직접 말을 거는 것은 결코 안되고 예법도 절대 생략할 수가 없기에 말을 건네어주는 가상의 신하가 있다는 가정 하에 그럼에도 폐하~ 어쩌고 앞에 붙여서 말을 전하게 됩니다.


이 짓거리를 한 수백년을 반복하다 보니 폐하~ 라는 말이 섬돌 밑의 신하를 부르는 용어가 아니라 2인칭으로 왕을 부르는 용어로 대신하여 변하게 된 것입니다.


주나라때 만들어진 이런 예법은 수백년간 점차 변하여 전국시대를 지나면서 그 시기에는 아예 왕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고 진나라 시절에는 진시황을 지칭하는 2인칭 단어로 일상화 됩니다.


사기 진시황 본기에 폐하를 2인칭으로 쓴 이런 기록이 등장합니다

"지금 폐하께서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나머지 적들을 베고 천하를 통일하셨다"


우리가 지금도 쓰는 '폐하' 라는 호칭의 용법이 이 시기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


그럼 '전하' (殿下) 라는 호칭은?

역시 폐하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2인칭화가 된 것이죠


다만 용법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춘추전국 시대 시절에만 하더라도 폐하, 전하는 모두 왕을 지칭하는 용어였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殿)


건축에서 전(殿)은 가장 중요한 건물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전하(殿下)라는 호칭에서의 전은 바로 궁전(宮殿)의 전(殿)을 말하는 것이죠


왕이 정사를 보는 근정전, 편전과 같은 치조에 붙이거나 왕이나 왕비가 침소를 드는 건물 같은 중요한 급에만 붙이는 용어죠. 때문에 폐하나 전하나 그 의미는 같은 것이죠


이것이 한나라 시절을 거치면서 황제와 왕의 구분이 명확해지게 되고 용어역시 정리가 되면서 황제가 정사를 보는 건물에 반드시 있는 통치자의 위엄을 상징하는 계단인 폐(陛)가 있는 건물과 구분하여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즉 한나라 시기를 거치며 신분예법이 보다 세밀해지자 황제에게만 폐하라는 호칭을 쓰게 되고 황태자, 왕자, 황후, 왕비 등은 다른 중요 건물인 전하라는 표현으로 지칭하게 된 것이죠


그럼 황제와 다른 황족을 구분했으니 신하와도 구분해야 합니다


이 전(殿)이라는 건물은 중요한 건물을 뜻하기 때문에 불교 사찰에도 대웅전과 같은 전이 존재를 합니다. 재상인 승상이 정부를 보는 승상부에도 역시 전(殿)이 있었기에 초기에는 승상에게도 '전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구분을 하게 되면서 한나라 시기를 거치며 '전하' 라는 표현은 모든 건물의 전을 지칭하는게 아니라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오직 궁전(宮殿)의 전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죠


때문에 전하라는 호칭은 황태자와 왕들 같은 황족과 황후들에게만 사용하는 용어로 바뀌게 됩니다.


이쯤 알게 됩니다

폐하, 전하, 저하, 합하, 각하 등등이 전부 건물과 관련한 호칭이란 것이죠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극에서 많이 나오는 세자를 지칭하는 저하(邸下) 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 철종의 강화도 잠저)


집 저(邸) 라는 단어는 그냥 평범한 집이 아니라 귀한분이 조용히 거처하는 고귀한 집을 말합니다. 우리가 좋은 집을 저택이라 하죠 그 저택의 '저'자를 말합니다


때문에 본래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으나 반정이나 갑작스런 계승으로 왕이 되어 지존에 오른 경우 이전에 거주하던 민간의 집을 잠저(潛邸) 라 부릅니다. 


원래는 황족과, 왕이 아닌 공작 이하 귀족에게 저하 (邸下)라 호칭하였는데 조선의 경우 황제가 아닌 왕으로 칭하며 왕을 폐하가 아닌 전하라 호칭하였으므로 왕의 아들인 세자의 경우 한 단계 아래인 '저하' 라는 호칭으로 부른 것이죠


대원군을 합하(閤下)라 불렀죠 풍신수길의 경우도 합하라 불렀고 고려시대 무신 정권 때 최씨 무신정권의 수장도 역시 합하라고 불렀습니다


합하(閤下)는 정1품의 아주 높은 관료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여기서 합(閤)이 말하는 건물은

(경복궁 건청궁 곤녕합 閤)


궁궐의 중요한 건물인 전의 옆에 붙어 있는 부속 건물 합閤을 말합니다.


황제나 제왕급만 거주할 수 있는 궁궐에 붙어 있는 건물이니 매우 급이 높고 귀한 건물을 말하는 것이며 그런 건물에 사는 인물이란 뜻이니 그 신분이 매우 존귀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죠


때문에 '합하' 라는 말은 곧 왕의 건물인 '전' 바로 옆에 있는 '합' 건물의 주인 황제와 왕을 측근에서 좌지우지 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각하라는 용어로 한동안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각하 (閣下) 라는 말 역시 동일하게 건물에서 유래합니다.

(제주목 관아 연희각)


각 閣 이라는 건물은 궁궐의 전, 당과 같은 급의 건물은 아니지만 그 다음 중요한 공식적인 건물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관공서의 경우 해당 관청의 수장이 거처하는 건물을 지칭합니다. 중앙의 삼정승, 6조의 수장이 기거 하는 집무실, 각 지방관청의 목사, 부사, 군수 등이 기거하는 집무실 등이죠


즉 각하(閣下) 라는 말은 특정 조직과 부서의 최고위 수장을 지칭하는 말이 됩니다. 정 2품 이상의 관료에게 지칭하는 호칭으로 왕족이나 최고위 귀족은 아니지만 관료 중에 가장 높은 수장급에게 지칭하는 호칭이 됩니다


일본의 경우 일왕이 임명한 관료나 총독, 장군들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 하였고 대한민국의 경우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 또는 장군들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는 ~~하의 용법이 아렛사람이 윗사람을 받들며 극존칭으로 사용하는 것임에서 알듯 신분제와 권위주의가 반영된 호칭이죠 대한민국에서는 전 근대적인 용어라고 폐지되었습니다


참고로 건물의 격식의 순서는


전(殿)- 당(堂) -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정(停) 의 순서입니다 


전 : 궁궐이나 공식적인 중요 건물에만 붙이는 이름

*민간에서 전이란 이름을 건물에 사사로이 칭할 수 없음


당 : 궁궐급 또는 공식적인 건물에 붙이나 전보다 한단계 낮은 건물


합 : 궁궐의 중요건물에 붙은 부속 건물


각 : 중요건물의 부속 건물 또는 수장급의 인물이 기거하는 건물  


재 : 귀한 신분이 기거하는 생활 공간


헌 : 대청마루가 있는 생활 공간


루 : 2층 이상의 구조로 된 휴식공간


정 : 단층 구조의 휴식 공간


건물의 격식은 그 중요도와 크기에 따라 구분됩니다


성균관에 있는 건물을 예를 들어 보면 공자를 모신가장 핵심 건물의 이름은 대성전이고 성균관의 유생들이 공부를하는 건물의 이름은 명륜당이 되죠


창덕궁에 민가의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궁궐안에 후궁들이 기거하게 만든 집은 비록 궁궐에 있지만지어진 형태와 목적이 궁궐의 법도가 아니기에 당이 아닌 재라 칭하여 이름이 낙선재가 되는 것이고 율곡 이이를 낳은 강릉의 대저택은 민가의 사택이니 오죽헌이 되는 것이죠


이런 건물의 특징과 그 격식에 따라 건물의 중요도가 달라지듯이 존칭으로 쓰는 호칭도 그에 맞춰서 부르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예절에서는 상대방을 직접 호칭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보죠


때문에 이름을 피하기 위해 왕의 이름은 함부로 적지도 못하게 피휘하였고 일반인들도 호와 자를 지어서 대신 부르곤 했습니다


상대방을 부를 때 역시 사는 지역 또는 사는 집을 지칭해서 부르죠

귀댁에 어쩌고 저쩌고 처럼 말이죠

댁(宅)이 말이야!! 응~

느그 서장 남천동 살재~

이건 아니고


사극에서 왕비를 중궁전이란 건물로 부르고 세자를 동궁전이란 건물로 부르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존귀할 수록 더욱 돌려서 기거하는 공간으로 지칭하는 것이 곧 예의였던 시절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족하 (足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안쓰는 용어인데 과거 제후들 끼리 또는 친구처럼 친근한 사이에 부르던 호칭이죠


춘추시대 진문공이 개자추를 불태워 죽였을 때 극심하게 후회를 하며 그가 죽은 산의 나무로 나막신을 만들어 신고 다녔고 개자추를 족하~ 라고 부르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폐하, 전하가 건물 아레에서 부르는 호칭이듯 족하의 경우 발 아래에서 부른다는 뜻으로 자신이 개자추 발 아래에 있다는 지극히 겸손한 존칭이죠


이것이 수백년 천년의 세월을 지나면서아주 친근하고 친한 사이에 부르는 호칭으로 변질되었고 한국에서는 아예 그 의미가 전혀 바뀌어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삼촌이 부르는 '조카' 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끝.


출처



아주 재밌구려. 다 건물에서 나온 호칭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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