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지구의를 돌리다가 멈추는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가 바로 북위 33도, 동경 117도야!!!"라고 말하며 웃던 어린 시절엔 잘 몰랐지요. 그 줄을 그으려고 사람들이 무슨 고생을 했는지. 앤드류스와 소벨의 '경도'는 이 줄들을 제대로 '긋기' 위해서 일평생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의 부제는 '한 외로운 천재의 이야기'이지만, 책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경도에 관련된 사람이 이 외로운 천재 혼자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이 책의 주인공은 천재적인 시계공 존 해리슨입니다. 경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항해술의 발견보다는 바다 위에서도 정확하게 현재 시간을 잴 수 있는 시계의 존재가 더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죠. 바다를 누비던 영국 함대는 정확한 해도가 필요했고, 정확한 해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로와 세로 구획을 정확히 나누는 게 중요했습니다. 다행히도 가로줄은 태양만으로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위도였죠. 하지만 세로줄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정확한 경도를 그리는 사람에게 2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었고, 해리슨 같은 시계공이 경쟁에 뛰어듭니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갖은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동안 이 경쟁자들은 서로에 대한 시기어린 비난, 혹은 모멸감으로 가득찬 욕설을 퍼부어대고, 그 와중에도 수많은 선원들은 바다를 직접 헤매다가 결국 길을 잃고 난파당하며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킵니다. 그 시기, 인류에게 바다는 말 그대로 미래였으니까요. 그들은 미래를 향해 항해했던 겁니다. 다른 수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역시 주인공은 천재 존 해리슨입니다. 어찌 보면 천재라기보다는 오기투성이 고집쟁이로 보이기도 하지만. H-1이라고 이름 지어진 대형 해상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존 해리슨은 마침내 경도 측정 방법을 만들어내면 상으로 2만 파운드를 내리겠다던 영국 정부의 약속에 의해 궁극의 휴대용 선상시계 H-4를 제작하여 상금을 받아냅니다. 바다에 오르면 뱃멀미로 고생하느라 정신없던 해리슨이었지만, 바다를 향해 떠나는 뱃사람의 정신만큼은 시계를 만드는 그의 뒷모습에서도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천재들이 그렇듯, 존 해리슨도 살아생전에는 오직 시계만 알고, 시계만을 위해 살았었죠. 그런 탓에, 당연히 생전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식과도 같은 시계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오히려 경쟁자에게 빼앗겨 버리는 일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첫 시계 H-1은 떨어져 망가지기까지 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슨의 시계들과 그 원리 만큼은 최후까지 살아남아 마지막 시계를 만드는 밑거름이 됩니다. 아직도 영국 시계학자들 중 일부는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건, 존 해리슨의 시계 덕분에 영국이 바다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만들어 낸 시계의 이야기. 재미있는데도 책은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책은 중고등학생들이 필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아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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