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나무, 그리운 꽃 / 서흥수
붉게 타는 속살 더 짙게 채색(彩色)하려
한여름 천둥 치던 들판에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그리
우두커니 서 있었니
그토록 아끼던 네 꽃을
눈처럼 눈물처럼 떨어뜨리고 나서
푸른 녹음(綠陰)마저 삼키고 만든 색깔들로
가지 마디마디마다 붙어있는 이파리들
참 곱게도 물들였구나
강물은 하늬바람 부딪쳐도
잔잔한 물비늘을 만들고
길섶에서 온몸 들썩이며 노래하는
억새풀잎 끝에
햇빛 부스러기들 황홀하게 쏟아지는
아름다운 들녘에 어이 너는 혼자 서 있나?
그리워하던 이
어디 가고 이리 아름다운 가을에
너는 홀로 나무 되어 울고 있나?
네 단풍잎을 모두 낙엽(落葉)으로
마저 떨어뜨리고
하얀 눈 소복소복 내리는 차가운 겨울 오더라도
나무야,
그리 서러워 말아라
내년에 봄이 오면
너의 가지에도
네 그리운 꽃이 활짝 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