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새해가 훌쩍 지나고 나서 인사를 드리네요!
덕분에 올해의 빙글러라는 타이틀도 얻어보고, 제 실력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즐거운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다들 너무 감사드려요!
사실 저는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장 편 연 재!
국어국문학과를 나와서 모자란 실력에 짧은 글들만 올렸었는데, 예전부터 장편을 꼭 연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근데 아무리 써봐도 전혀 재밌지가 않아서... 몇 번을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그렇게 단편만 써 오다가 새해를 맞아 '일단 쓰고 보자'라는 마음이 들어서 연재를 해볼까 합니다!
원래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난 반은 해따!
아무튼! 많은 피드백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1.
"여보. 당신 이름으로 편지가 왔는데?"
"편지?"
나는 아내에게 되물었다. 요즘 시대에 편지라니. 그것도 손편지.
"응. 보낸 사람이 유..태...석...? 아버님?"
"...뭐라고?"
나는 아내의 손에서 편지를 받았다.
보내는 사람 유 태 석
받는 사람 유 시 안
아버지였다. 아버지라고도 부르기 싫은 그 사람이 내게 편지를 보냈다. 11년 만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내게 시골에 들어가서 살자는 뚱딴지같은 소리만 해대던 양반이었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서 고통과 싸우고 있을 때, '엄마를 살리겠다'며 밖으로만 돌던 사람이었고.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애타게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그때도 자리에 없었지만...
나는 어머니 장례식 이후로 그 사람과 지금까지 인연을 끊어왔다. 집, 차 재산... 모든 것을 두고 떠나버린 아버지는 그렇게 연락이 끊겼고, 나는 빌어먹게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내 명의로 돌려놓고 떠난 집에서 아내와 살고 있었다. 이런 편지가 올 줄 알았더라면 돈에 굴복하지 말고 떠나버렸어야 했는데...
"여보... 그래도 한 번 읽어봐..."
낡은 편지봉투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려던 찰나, 아내가 편지를 쥔 내 손을 잡았다.
"그래도 아버지잖아..."
"..."
나는 뭐라 할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편지봉투를 쥐고 소파에 앉았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을 거울로 봤다면, 분명 내가 정말 싫어하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미안하다 아들아.
나를 버리고 간 아버지에게 11년 만에 처음 듣는 말은 '미안하다'였다.
세월이 지난 후 이제서야 저열한 고해성사라도 하려는 걸까. 역겹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구나. 왜 조금 더 빨리 너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서야 후회가 든다.
어줍짢은 신세 한탄과 한풀이는 그만 뒀으면...
잠깐.
"죽음을 앞두고?"
나직하게 뱉은 혼잣말에 아내의 동공이 커졌다.
이 편지가 네게 도착할 때 쯤. 나는 아마 죽었을 거다. 참 간단한 죽음이구나. 니 엄마. 내 아내를 살리고 싶었고, 방법을 찾았을 때도 이미 늦었었지. 너한테 이렇게 힘겹게 펜을 들 때도 나는 늦었구나. 평생 늦기만 하다 바스러지는 내가 원망스럽다.
편지지를 쥐고 있는 손에 떨림을 느꼈는지, 아내는 내 손을 자신의 불러온 배에 올렸다.
"쿵...쿵..."
조용하지만 힘차게 느껴지는 새 생명의 발길질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아마 이것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아이 앞에서 침착한 아버지가 되길 바라는 아내의 마음일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내 시간이 멈춘 듯 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시간은 빠르게 내 손에서 벗어났구나.
애비가 되어서 염치없게 마지막 부탁을 하고자 편지를 썼다. 미안하다. 아들아. 내 시신을 수습해 다오. 마지막 가는 길에 네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한참동안 이어진 후회와 반성, 부탁 밑에는 아버지가 살고 있던 마을 주소와 복잡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죽어가는 몸을 끌고 간신히 썼는지, 마지막 지도는 점점 흐릿해져 갔다. 마치 아버지의 생이 꺼져가는 것처럼.
"...끝까지 이러시네."
편지를 쥐고 있는 손이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만큼, 내 볼을 타고 눈물이 떨어졌다.
"여보..."
"끝까지 이기적이고, 끝까지 나한테 무거운 짐을 씌우네."
어느새 나의 분노는 슬픔으로 변했고, 내 인생에 남아있던 유일한 과거가 사라졌다는 생각과, 원망과 혐오에 가득 차 절연했던 11년의 후회가 얼굴을 지나 편지지에 떨어졌다.
"..가야겠지...? 마지막 자식 된 도리는 해야겠지...?"
"응... 가야지... 아버지잖아."
나는 내 등을 토닥이는 아내의 손길에 맞추어, 그간의 슬픔을 토해내듯 나는 큰 소리로 울음을 토해냈다.
2.
그 마을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차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도로. 구불구불한 길을 끊임없이 지나갔다.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불안한 표정으로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여보. 저기 좀 봐."
험한 산길을 덜컹거리며 한참을 지나갔을까. 쭉 뻗은 단단한 흙길과 함께 장승이 보였다.
"아마 마을 입구겠지."
나는 이제 더이상 험한 길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내와 배를 쳐다봤다.
마을 입구에 차를 잠시 멈추고, 유리창을 통해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전경을 바라봤다.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어릴 적 봤던 '웰컴 두 동막골'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 문명의 혜택을 스스로 거부한 듯 자연에 휩싸인 작은 마을.
"들어가도 괜찮겠지?"
아내의 배에 손을 올리며 물어봤다.
아내한테 묻는 것인지, 아이한테 묻는 것인지, 나한테 묻는 것인지 모를 물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를 보며, 나는 마을 안으로 차를 몰았다.
-부웅
처음 온 마을이라서 그런 건지, 이 길의 목적지에 아버지의 시신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는 차를 천천히 몰았다. 엑셀에서 발을 놓고 천천히.
"여보. 저기 앞에."
마을 한가운데 있는 길을 따라 차를 몰다 보니, 어린아이가 길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아이한테 한 번 물어볼까?"
"글쎄... 많아야 7살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버지 이름을 물어봐도 알 수 있을까?"
나는 아내의 의견을 불신하면서도 창문을 열어 아이를 불렀다.
"저기... 꼬마야!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내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굉장히 굳은 표정으로.
"뭔데."
'무슨 애 눈빛이...'
"그.. 그래. 혹시 유태석이라는 분 알아?"
물어보면서 나도 모르게 살짝 피식했다. 내가 7살 때, 옆집 할아버지 이름을 알았던가? 내가 생각해도 웃긴 상황이다.
"아~ 태석씨? 엊그제 죽은 양반?"
뜻밖의 대답. 뜻밖의 말투였다.
"태..태석씨?"
"그래. 퀭해갖고 말라비틀어진 양반. 엊그제 죽었지 아마."
...우리 부장님이 쓰는 말투 같은데.
"에잉... 그 양반이 바둑은 잘 둬서 같이 바둑두는 재미는 있었는데... 안타깝게 됐어. 근데, 태석씨는 왜 찾어?"
"그... 아저씨가 유태석씨 아들이거든..."
"아~ 니가 태석씨 아들이야? 그러고 보니 닮았구만?"
"...니가?"
점점 막나가는 꼬맹이의 말투를 들으면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래. 너 말이야. 기껏해야 서른이나 먹었을 거 같은 놈이 반말이나 찍찍 해대고... 저어기 골목 지나 세 번째 집이니까, 가서 아버지 챙겨라. 예의 좀 차리고."
일곱 살이나 먹었을 거 같은 작은 꼬맹이는 내게 예의에 대한 훈계를 늘어놓은 후, 쪼르르 달려서 들판으로 사라졌다.
"...뭐야. 어린 놈이 버르장머리 없이."
나는 투덜거리며 유리창을 올렸다.
"좀 특이한 앤가봐. 근데 진짜 할아버지처럼 말을 하더라."
아내는 작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게. 일단 얼른 가보자."
잠시 후. 나는 작은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작은 집. 작은 마당이 있고, 구석에는 만들다 만 조각 같은 것들이 있는 집이었다. 사극에서 왕에게 미움을 사고 유배당한 사람들이 머무는 귀양지 같기도 했다.
"여기에... 아버지가 있다는 거지?"
나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방문이 두 개 있는 작은 집. 방에 아버지가 누워있을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채로.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아내는 차에 있게 했다. 어쨌든 시신을 보는 것이 아내와 아이에게는 해롭지 않을까 했기에.
나는 자꾸 막히는 숨을 억지로 틔우려는 듯, 이번에는 좀 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방문을 열었다.
------------------------------------------------
피드백 댓글 좋아요 환영합니다!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