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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소설을 보았다. 출간된 형태는 아니다. 일반적인 단편소설의 절반쯤 되는 분량의 소설이었다. 소설은 아주 잘 조직되었고, 아귀가 잘 맞았고, 특유의 분위기도 있었다. 시인이 쓴 소설 같았다. 시인이 소설을 쓰면 보통은 아주 유려한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작품이 어느 정도 성공했을 때의 경우다. 시인이 소설을 써서 망치는 경우는 대개 자의식 과잉으로 점철되어 있을 때이다. 앞서의 소설은 충분히 절제되어 있었고,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림 같다는 것은 촘촘한 서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소설이 반드시 서사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고루한 얘기지만, 철저히 의도적이지 않을 때는 그 생명력이 길지 않다. 이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 투의 장시에 가까워보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르의 파괴나, 장르의 결합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각 장르의 이해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장진 감독인데, 연극으로 시작해 영화판까지 갔던 그는 좋은 각본가이지만, 그의 영화가 요즘 영 형편없어지고 있는 것은 연극과 영화의 장르 구분이 특별한 의도없이 전혀 되지 않고 있어서라고 본다. 그의 모든 영화는 연극적 요소가 강하지만, 그 접점이 가장 성공했던 사례는 <아는 여자> 정도였던 것 같다. 연극은 연극답게, 영화는 영화답게, 시는 시답게, 소설은 소설답게. 그 장르 안에서 납득이 되어야만 그 수명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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