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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출근길 대란은 빗나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는데, 정거장 문이 닫히기 직전 한 사내가 아주 간신히 지하철에 탑승했다. 사실 몸이 거의 끼는 수준이었는데, 그는 간신히, 정말 간신히 탑승했다. 그러려니 하고 음악을 듣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 사내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었다. 키가 컸고, 단발의 머리 길이에 파마를 했으며, 수염을 길렀고, 코트에 부츠를 신고 있었다. 얼핏 일본의 배우 같아 보이기도 한 그는 소설가 정영수였다. 물론 그는 나를 모른다. 나는 그저 한국 소설 애독자이고, 곧 책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직까지는 비매품 말고는 저서가 없는 사람이고, 설령 저서가 있다고 해도 그가 나를 알아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지하철을 탄 것으로 봐서 회사에 늦은 것 같았고,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한 출판사의 편집자 일을 하고 있다고 본 기억이 났다. 나는 그의 소설을 두어 편 정도 읽어보았는데, 취향에 맞는 편이었고, 느낀 바를 간단히 적어보면 깜짝 놀랄만 한 서사는 아니지만, 다루는 주제가 늘 윤리적으로 민감한 편이었으며, 문장 자체가 굉장히 안정적이고 읽기 좋아서, 목소리가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그런 기분이 되곤 했다. 페미니즘과 퀴어가 중심 담론으로 오래 부상해 온 소설 문단에서 그는 여성 작가도 아니고, 퀴어 서사를 다루지도 않으면서 그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꽤 단단히 각인시킨 작가다. 우리는 함께 합정역에서 내렸다. 피로한 월요일 폭설 대란이라도 기대했던 나로서는 재밌는 목격이었다.


최정례 시인의 사망 기사를 접했다. 어떠한 인연도 없으므로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병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서 놀랐다. 사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처음에는 혹시나 비극적 선택을 한 것인가 하고 생각도 했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이 떠났다. 좋은 시인이 떠났다.


한 남자가 비등단자를 대상으로 한 문학상 수상작품을 그대로 도용해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5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문학상들의 권위 여부를 떠나서 정말 비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비등단자의 작품을 절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특히 그렇다. 등단하지 않은 일반인의 작품이니 마음껏 도용해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너무나 늦은 발견이기는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정말 적발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면 걸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걸까. 사태가 커지자 문학상 심사위원들에 대한 비난도 커지고 있다. 나는 지금처럼 저작권에 민감한 시대에 늦게라도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문의 표절 여부를 체크하는 카피킬러가 따로 있듯이, 이 사건을 발판 삼아 문학작품 역시 등단자 대상이든 아니든 심사 전 표절 여부를 먼저 체크했으면 한다. 지적 자산을 훔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 인식에 너무나 화가 난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지적 자산의 중요성을 알리려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철저한 검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표절에 대해서 말뿐이 아니라 인식 개선을 위해 강력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심지어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표절이 아니라 완벽한 도용 아닌가. 이 자가 정말 비겁한 것은, 이것이 문학을 사랑하는 자의 어긋난 판단 수준이 아니라 말그대로 단어 하나, 제목 정도를 바꾸는 수준의 완벽한 도적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학을 비롯해 지적 자산을 완전히 우습게 본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문단이 스스로를 위한 방어벽을 만들었으면 한다. 창작자들의 자존감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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