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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산책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비가 와서 산책을 안 할 구실이 생겼고, 일찍부터 움직였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비 예보 때문에 애초에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어서 비가 오길 바라다가 결국 하지 못했다. 아니 결국 하지 않았다.


영화 <차인표>를 보았다. 갑자기 왜 이런 영화가 기획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차인표 특유의 과장된 캐릭터를 활용하려면 진즉에 했었어야 했다. 지금은 다소 뜬금없는 데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넷플릭스에 떴을 때 흥미가 생기던 차였는데, 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겹침은 그게 어떤 장르든 늘 흥미로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를 너무 했는지 생각보다 지루했고, 실망스러웠다. 이 영화는 나름대로의 재난물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재난물의 장점을 크게 살리고 있지는 못하다. 코메디를 표방하지만, 영리한 코메디물도 아니다.

극 중의 차인표는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진정성 있고 정의감 넘치지만, 사실 융통성이 없고 눈치가 없어 주변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는 사람. 실제로 내 주변에도 없지 않다. 이런 면모의 사람은 사회를 이롭게 하는 데가 분명 있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거의 이롭지 않다. 이런 캐릭터는 그 면모가 극대화되었을 때 바로 이런 코메디 서사에서는 유용한 구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난감할 뿐이다. 심지어 그런 인물이 나에게 애정이 있다면 더욱 곤란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극 중 차인표의 매니저에 수습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입이 되어 혼났다. 내 상황에 대입해본다면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괴로워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특별할 것 없는 코메디 영화였지만 여러 인간상과 관계에 대해 나름대로 되짚어보는 시간은 되었다.


비가 오니 좋다. 비가 오니 나쁘지 않다, 라고 썼다가 이런 자신 없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좋다, 고 고쳤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무척 듣기 좋다. 물론 실내에서 시각이나 청각이나 후각 정도로만 느끼는 비를 좋아한다. 비를 맞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를 맞는 것도 좋아하기는 한다. 작정하고 젖을 준비로 온전히 촉각을 열어놓고 비를 맞는다면.

어릴적 옥상으로 나가 원없이 비를 맞으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난다. 그건 분명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많은 이유로 늘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비를 맞지 않기 위해 우산을 요리조리 대보면서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다. 참고로 나는 우산을 잘 쓰는 것이 너무 어렵다. 아주 적은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늘 신발은 그대로 젖어버리며, 고작 상체 정도나 사수하는 편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런 나의 고백을 듣고 신기해하며 자신은 절대 신발이 젖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태풍을 동반한 비라면 그도 방법 없이 젖고 말겠지만, 어쩐지 그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이것은 우산 쓰기의 재능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지하게 우산을 사용하는 방법도 어른들이 아이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치원에서 바늘시계를 보며 시간을 알아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듯이 말이다.

생각보다 어릴 때 당연히 배워야 하는 것들을 누군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러니까 그 정도의 사소한 일은 부러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고 어른들이 착각하는 바람에, 정말 사소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모르는 채로 자란 성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남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이지만 당사자는 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상한지를 모르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부분이 다 하나씩은 있을 텐데, 요즘은 내가 그런 부분이 없는지 자주 살핀다. 그리고 알게 되고 나서 의식적으로 잘못된 것은 고치려고도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다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배지 않는 이상 이상적인 삶의 태도를 잘 갖추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몸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부터 사람을 대하는 방법까지 생각보다 아주 많다.

어릴 때 차마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은 것, 혹은 가르쳐 주지 못한 것, 부모가 아니라도 학교나 여타 교육기관에서 혹여나 가르쳐주었지만, 산만해서 흘려보낸 것. 이런 것들이 많을 거라 예상한다. 요즘 나는 내가 나의 보호자라는 생각으로, 나를 돌보는 마음으로 나를 대하려고 한다.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이 별개 아니다. 내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책을 읽히고, 좋은 영화를 보여주고 다른 이의 좋은 점을 보았는데, 그게 배워볼 만 하면 그것을 연습해보기도 하고. 그런데도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아가 능숙해지기까지 한다면, 그때는 타인을 돌볼 여유가 좀 생기지 않을까. 고루한 얘기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싶다면, 우선 나와의 관계부터 점검해야 한다. 나는 좋은 연습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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